34년만에 드러난 이춘재의 '살인의 추억'…"처벌은 불가"

김영석 기자 / 2020-07-02 13:25:25
욕구 해소와 불만 표출 위해 연쇄 살인
경찰 등 당시 수사, 부실·강압 밝혀져

건국 이래 최악의 장기미제사건으로 남았던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일명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첫 사건 발생 34년 만이다. 

이춘재는 재수사에 나선 경찰에 기존 연쇄살인사건 왜 다른 범행도 여럿 자백했으나 처벌은 '불가'다. 모두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배용주 경기남부경찰청장은 2일 오전 10시 경기남부경찰청 5층 대강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이춘재가 벌인 살인사건 14건과 강간 등 34건의 성범죄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춘재가 저지른 살인 사건은 1994년 처제 살인을 포함, 모두 15건이다.

▲ 배용주 경기남부경찰청장이 2일 오전 경기남부경찰청 5층 대강당에서 이춘재 관련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영석 기자]


배 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춘재의 잔혹한 범행으로 희생되신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분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춘재가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가학적 형태의 연쇄범행을 한 것임을 확인해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배 청장은 이어 "살인 누명이 씌워져 억울한 옥살이를 한 8차 사건과 관련해 수사 참여 경찰관 및 검사 등 8명을 직권남용 감금 등 혐의로 입건하고, 원활한 재심 진행을 위해 지난 2월 6일 우선 송치했다"며 "9차인 초등생 김모양 살해사건 수사 참여 경찰관 2명은 사체은닉 및 증거인멸 등 혐의로 입건해 검찰에 송치한다"고 덧붙였다.

배 청장이 언급한 9건의 강간사건은 이춘재가 자백한 34건의 성범죄 가운데 범죄혐의가 소명된 사건이다.

이춘재의 가학적 연쇄살인 사건 개요

▲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현황 [경기남부경찰청 제공]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은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불리던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저지른 10차례의 살인사건과 지난해 화성사건의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가 수감중인 교도소에서 자백한 4건의 추가 살인사건 등 15건의 살인사건을 말한다. 15건의 살인사건은 모두 성폭행 후 목졸라 살해한 희대의 엽기적 성범죄 사건이다.

전국 부녀자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 9월 15일 화성시 태안읍 목초지에서 발견된 71세(당시) 여성을 시작으로, 1991년 4월3일 동탄면 반송리 야산에서 발견된 69세 여성까지 10차례에 걸쳐 당시 태안읍사무소 반경 3km 내 4개 읍·면에서 13∼71세 여성 10명을 상대로 벌인 연쇄 성폭행 살인 사건을 말한다.

살해에는 대부분 스타킹이나 양말 등 피해자의 옷가지가 이용되고 성폭행당한 여성의 특정 부위가 심하게 훼손되거나 이물질이 삽입된 채 목이 졸려 숨졌다. 범인은 버스정류장에서 귀가하는 피해자 집 사이로 연결된 논밭길이나 오솔길 등에 숨어 있다가 범행했는데, 당시 주변이 논밭이어서 인적이 드물었던 점을 이용했다.

3차 사건까지 단독 사건으로 수사하던 경찰은 4차 사건부터 범행수법의 연관성이 확인돼 연쇄살인 사건으로 전환됐고 대대적인 범인 검거 작업이 시작됐다.

역대 수사기록 갈아 치운 화성연쇄 살인사건 

당시 이 사건 수사에 동원된 경찰 연인원은 205만여 명으로 국내 단일사건 가운데 최다였고, 수사 대상자는 2만1280명, 지문대조는 4만116명에 이르렀다. 당시 경찰은 성폭행 피해를 가까스로 면한 여성과 용의자를 태운 버스운전사 등의 진술로 미뤄 범인이 20대 중반, 키 165∼170cm의 보통 체격 남성으로 특정했다. 하지만 경찰은 화성사건의 모방범죄라며 윤모(52) 씨를 범인으로 특정한 8차 사건을 제외하고는 범인 검거에 실패하며 그동안 건국 이래 최대의 미스터리로 사건을 불렸다.

경찰은 2006년 4월2일 10차 사건의 공소시효(15년)가 만료된 후에도 관련 제보를 접수하고 보관된 증거를 분석하는 등 수사를 계속해 왔다. 이 과정에서 1996년 화성사건을 소재로한 연극 '날 보러 와요'와 2003년에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이 개봉되면서 전 국민의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자백 이끌어낸 과학수사 

▲ 경기남부경찰청 제공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데다 수사에 'DNA 분석'이라는 첨단 과학수사 기법이 도입되면서 경찰은 지난해 7월 15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해자 증거물 일부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감정을 의뢰했고, 3건(5, 7, 9차)의 "DNA와 일치하는 대상자가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경찰은 이에 같은 해 9월 19일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를 용의자로 특정한다"고 발표했다. 5차(1987년 1월), 7차(1988년 9월), 9차(1990년 11월) 사건 가운데 9차 사건에 증거물인 피해 여성의 속옷에서 나온 DNA가 이춘재의 DNA와 일치한 것이 특정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춘재는 1994년 청주에서 처제(당시 20세)를 유인해 성폭행하고 살해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1995년 10월부터 26년째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춘재는 지난해 9월 24~27일 부산교도소에서 이뤄진 4~7차 대면조사에서 화성살인사건 10건을 비롯해 14건의 살인과 34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이춘재는 2009년 여성 10명을 살해한 강호순에게서 자백을 끌어낸 공은경(41·여) 경위를 비롯한 경찰 프로파일러들과 지난해 9월 부산교도소에서 네 번째 면담을 갖던 중 범행 전체를 자백했다.

부메랑 돼 경찰에 돌아온 9차 사건

이춘재가 윤모 씨가 범인으로 특정돼 이미 20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온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밝히면서 파란이 일기 시작했다. 8차 사건은 1988년 9월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의 한 가정집에서 당시 13세였던 여중생이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경찰은 이듬해인 1989년 7월 이 사건의 용의자로 화성에 살던 윤모(당시 22세) 씨를 붙잡아 구속했다.

이춘재가 8차 사건을 자신의 범행으로 자백하자 이미 범인으로 몰려 형을 살고 나온 윤 씨는 "경찰의 '잠 안 재우기' 등 고문과 강압에 의해 거짓 자백을 했고, 1, 2심 재판에서 이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한 뒤 지난해 11월 수원지법에 재심을 청구해 현재 재심이 진행 중이다. 이번 사건을 진행한 경찰은 물론 검찰도 법원에 윤 씨의 무죄추정 수사결과와 의견을 낸 상황이어서 윤 씨는 재심에서 무죄선고가 확실시된다.

▲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 동안 수감생활을 한 윤모(52) 씨가 2019년 11월 13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관에서 화성8차 사건 재심청구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 때문에 당시 8차 사건을 수사한 경찰과 사건을 지휘한 검사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고, 수사에 나선 경찰은 "당시 수사경찰이 화성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윤모 씨를 지목해 구속영장 발부 없이 3일간 부당하게 구금했다"고 인정했다. 또 "조사 과정에서 폭행 및 가혹행위로 인한 허위자백, 허위 진술서 작성 강요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초등학생 실종·살해 사건과 관련해서도 경찰이 실종된 피해자의 유류품을 발견했으나 유족에게 알리지 않고, 피해자의 유골 일부를 발견하고도 은닉한 혐의가 상당하다고 인정했다.

경찰은 특히 화성사건 당시 이춘재에 대해 용의자로 3번이나 수사가 진행됐으나 혈액형, 족적 등에 대한 오판 등으로 인해 용의선상에서 배제한 부실수사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결국 경찰은 최대 미제사건의 범인을 밝히고도 부실 강압수사와 인권유린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형사처벌 피해가는 이춘재와 경찰

경찰은 연쇄 성폭행 살인사건이 이춘재에 의한 엽기적 범행임을 밝히고 8, 9차의 수사과정에서 수사관들의 비위사실을 밝혔지만 정작 이들 모두 형사처벌은 받지 않는다. 이 사건의 마지막 범행은 1991년으로 당시 살인사건 공소시효가 15년인 점을 감안할 때 2006년 4월 2일 공소시효가 끝났다.

배 청장은 "검찰에 송치된 수사 참여 경찰관과 검사는 공소시효가 완성돼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송치돼 처벌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KPI뉴스 / 김영석 기자 lovetupa@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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