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의 최대 인종 갈등…리더십 심판대에
드러난 미국의 민낯에 세계 지도국 위상 흔들 세계 최강대국 미국.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슈퍼파워 아메리카가 최근 50여 년 만에 가장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슈퍼파워란 이름을 먼저 무색하게 만든 건 코로나 바이러스.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냄으로써 세계인의 조롱거리가 됐다. 미국은 전 세계 감염자 숫자의 29%, 사망자의 28%로 최대 피해국의 오명을 뒤집어썼다.
미국이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거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설마 미국이…' 하던 사람들도 미국이 더 이상 슈퍼파워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보건행정 책임자들은 사안의 심각성을 진즉 파악하지 못했고, 비상상황에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코로나로 인해 탈진 상태에 빠진 미국에 카운터펀치를 날린 건 조지 플로이드 피살 사건. 지난달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시에서 흑인 용의자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에 의해 목이 졸려 죽어가는 과정이 담긴 비디오가 공개되면서 촉발된 시위는 미 전역은 물론 파리, 런던 등 전세계로 확산돼 나갔다.
시위와 진압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리더십의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시위는 인종차별 종식을 넘어 자유와 평등, 정의, 인간의 존엄성 등 헌법적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대규모 인권 운동으로 확산돼 가고 있다.
시위대는 한걸음 더 나아가 트럼프 퇴진까지 외치고 있어 오는 11월 선거의 판세를 좌우할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국이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 피살 이후 최대 인종 갈등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킹 목사의 죽음 이후에도 마이애미, LA폭동 등 경찰에 의한 흑인, 또는 소수민족 차별,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 사건이 계속돼 왔지만 공권력의 강압적인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수갑을 채우고도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 채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8분 46초간 목이 짓눌려 죽어가는 장면이 주는 충격과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기세다. 지난 4일 플로이드 추모제에 참석한 흑인인권운동가 알 샤프턴 목사는 "우리의 목에서 무릎을 치워라"며 백인들의 각성과 흑인들의 단합을 촉구했다.
사태를 키운 건 위기관리에 실패한 트럼프 행정부와 미네소타 주정부. 처음부터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약속을 했었더라면 이렇게 들불처럼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주 검찰은 사건 초기 가해자 데릭 쇼빈에게 3급 살인 혐의를 적용, 처벌하는 시늉만 했다. 그러다 시위가 거세지자 2급 살인으로 혐의를 한 단계 올렸다. 나머지 3명의 경관도 포함시켰다. 누가 봐도 등 떠밀려 가는 조치였다.
불붙은 시위대에 기름을 부은 건 트럼프 대통령. 시위가 거칠어지자 이들을 '폭도(Thugs)'로 규정하고 "약탈이 시작되면 발포할 수 있다(When looting starts, shooting starts"라는 트윗을 날린 게 도화선이 됐다. 1967년 월터 헤들리 마이애미 경찰국장이 당시 흑인 폭력 시위대를 향해 던진 경고 메시지를 그대로 써먹은 것. 메시지는 시위 군중들을 흥분시켰고, 방화와 약탈 등 폭력시위로 양상이 번졌다. 군중들은 대통령이 인종차별을 근절하라는 요구에 귀를 기울여 주기는커넝 진압대상으로 간주한 데 대해 더 화가 난 것이다.
군대 동원 여부를 놓고 벌인 국방장관과의 정면충돌은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에 치명타를 안겼다. 선거를 앞두고 마음이 조급해진 트럼프는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에게 군대 동원령을 내렸다. 그러나, 에스퍼 장관은 이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군대 동원은 가장 위급하고 심각한 상황에서 해야 하는 데, 지금은 그런 상황은 아니다"라는 게 마크 에스퍼 장관의 거부 이유다.
군 통수권자인 트럼프 대통령은 장관을 맹비난했지만 이미 령은 땅바닥에 떨어졌다. 흑인 인권단체, 변호사, 민권옹호단체들은 트럼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버락 오바마, 조지 부시 전 대통령조차도 시위대를 옹호하고 나섰다.
지난 주말 시위 규모가 크게 확산되면서 정부와 주요 도시는 시위대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가장 먼저 태도를 바꾼 건 트럼프 대통령. 그는 지난 7일 방위군을 철수시키라고 지시했다. 그는 트위터에 "시위 참가자 숫자가 예상보다 적었다"며 "이제 완전 통제 가능한 상태가 됐다"고 올렸다. 실제 주말 시위참가자는 훨씬 많았는데도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꾸려다 보니 그렇게 둘러댄 것.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 조직을 변경하거나 예산 축소, 과잉단속 금지 등 조치를 약속하는 도시가 늘어나고 있다. 9명의 미니애폴리스 시의원들은 시위 군중 앞에서 시 경찰행정을 대폭 개선, 인종차별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알론드라 카노 시의회 공공안전위원장은"이 서약은 우리가 지향하는 바를 가장 강력하고 확실하게 보여주는 신호"라고 말했다.
뉴욕시는 경찰 예산을 줄이고 사회보장 서비스 예산을 늘릴 방침이다. 빌 드 블라지오 뉴욕시장은 "60억 달러에 달하는 경찰 예산을 삭감해 청소년,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확충해 나갈 것" 이라고 밝혔다. 보스턴 시도 비슷한 방침을 내놓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해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하는 분위기이지만 경찰의 과잉단속은 여전하다. 취업과 교육, 의료서비스 등 일상 속에서의 차별과 폭력도 현재 진행형이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코로나 대처 과정을 지켜보는 미국인들은 불안하다. 이 두 가지 현안을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에 미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KPI뉴스 / 공완섭 재미언론인 wanseob.kong@gmail.com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