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표적 공습으로 이란 군부 최고 실세였던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가 폭사하면서 중동 지역에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2018년 5월 미국의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 이후 팽팽해진 미국과 이란 간의 긴장 상태는 이제 정치·경제 영역을 넘어 전쟁 발발 가능성을 전제해야 할 만큼 최악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이 지난해 12월29일 '이란의 대리군'으로 불리는 이라크의 친이란 민병대를 공격한 데 이어 이란 군부의 최고 실력자를 표적삼아 정밀 공습에 나서자 전면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지난 3일(현지시간) 단행한 공습이 향후 이란의 공격으로부터 미군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조치라고 정당화했지만, 이란은 즉각 보복을 다짐하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이너마이트를 불쏘시개 상자에 던져 넣었다"고 비유했다.
실제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긴급 성명을 통해 "솔레이마니가 흘린 순교의 피를 손에 묻힌 범죄자들에게 가혹한 보복이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솔레이마니가 사실상 지휘하던 이라크 내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하시드 알사비·PMF)는 대미 항전을 선언했다.
이에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관은 "이라크와 중동의 긴장이 높아짐에 따라 모든 미국 국적자는 이라크를 즉시 떠나야 한다"며 긴급 소개령을 내렸다.
◆ 임계점에 다다른 미국과 이란의 악연과 갈등
양국 관계는 지난해 5월부터 유조선 피습, 미 무인정찰기 피격,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 폭격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임계점에 다다랐다.
급기야 지난달 27일 이라크 미군 주둔 기지가 로켓포 공격을 받아 미국인 1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은 이라크 내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 카타이브-헤즈볼라의 소행이라고 단정하고 이틀 뒤 이 조직의 군사시설 5곳을 폭격해 25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시아파 민병대는 지난달 31일과 이달 1일 이라크 주재 미 대사관을 습격해 불을 지르는 등 보복에 나섰다. 그러자 이번엔 미국이 지난 3일 이란 군부의 최고 권력자이자 상징인 솔레이마니 사령관과 카타이브-헤즈볼라 창립자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까지 정밀 타격해 살해한 것이다.
이와 관련, AP통신은 "이들의 죽음은 중동 지역의 잠재적인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며 "이란과 이란이 지지하는 중동 세력으로부터 무자비한 보복이 뒤따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솔레이마니와 알무한디스 표적 살해는 알카에다의 빈 라덴이나 이슬람국가(IS)의 알바그다디의 죽음보다 더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솔레이마니는 이란의 국가 체제 유지와 연결된 인물일 뿐 아니라 중동 지역에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미쳐온 인물이어서 중동 주둔 미군과 시설은 한층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사망 장소가 이란이 아닌 이라크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이란 내부뿐 아니라 이라크와 시리아·예멘·레바논·팔레스타인 등에 이르는 '시아파 벨트'를 오가며 친이란 무장조직들의 관리 통제와 작전을 지휘해온 인물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이란이 실제로 무력 충돌에 이르게 된다면 미국은 이란 본토가 아닌 이라크와 시리아에 있는 이란 혁명수비대 시설과 병력을 폭격할 공산이 크다는 예측이 나온다.
이란과의 전면전 부담을 피할 수 있고, 이라크와 시리아에선 무력 행위가 빈발하는 곳이어서 미국의 군사작전에 대한 비판을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번 미군의 솔레이마니 표적 살해는 중동 지역 전체에 광범위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 군사 충돌 벌어질 경우 국지전 아닌 중동 전역 비화 우려
이란은 그 동안 중동 각지에 구축해온 친이란 무장조직 네트워크를 활용해 미국과 그 우방국들을 타격하는 작전을 구사할 수 있다. 레바논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공격, 예멘 반군의 사우디아라비아 공격,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의 이라크 주둔 미군 공격 등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이란은 또 미국과의 긴장이 커질 때마다 위협해온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미국 및 그 우방국들의 상선 억류·공격도 전개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은 국지전이 아니라 중동 전 지역의 안보 불안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최근 일련의 잇단 충돌 과정에서 미국과 이란 양측 모두 물러서거나 타협하는 모양새를 취할 수 없는 진퇴양난 입장에 처해 있다는 점에 있다.
이란은 국가의 영웅으로 추앙돼온 군부 최고 지도자가 '최악의 사탄'으로 생각하는 미국의 표적 공습으로 폭사한 상황에 대해 엄포만 하고 넘어갈 수 없는 처지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긴급성명을 통해 가혹하게 보복하겠다고 경고한 데 이어 이란 혁명수비대의 호세인 살라미 총사령관은 "이란의 군사력은 외부 세력의 위협을 퇴치할 만큼 강력하다.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이에 맞서 이란에 대한 무력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점을 예고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직접 나서서 "게임이 바뀌었다"며 "이란의 추가 도발 조짐이 보이고 위험하다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앞서 시아파 민병대 폭격을 '방어적 대응'이라고 했던 것과 달리 이란에 대한 군사 대응 기준을 한 단계 더 높여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공언한 것이다.
중동에서의 군사력 사용을 자제하던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바뀌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이슬람국가(IS)'의 수괴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에 이어 이번 공습을 승인한 것을 보면 그가 미국의 군사력 사용에 점점 자신감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미국 중동연구원의 찰스 리스터 선임연구원은 3일 트위터를 통해 "전쟁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벌어지느냐가 문제일 뿐 "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KPI뉴스 / 장성룡 기자 js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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