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6부작 첫 방송에 "슬픈 위로, 박장대소, 절대 공감"

사회 초년생이 첫 직장을 그만두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년 2개월. 10명 중 6명이 회사를 그만둔다. 비정규직 다반사에 88만원 세대가 넘쳐나며 2030 청춘들에게는 ‘헬(hell·지옥) 조선’이라 불린다는 대한민국 직장세계에서 살아남기. 한 회사를 오래 다니지 못 하고 회사 다니기가 '죽노동'이라는 젊은이들, 과연 ‘헝그리 정신’을 잃어버린 그들만이 문제인 걸까.
직장인들이 회사 가기 싫은 이유를 KBS2 오피스 모큐멘터리 ‘회사 가기 싫어’가 파헤쳤다.
12일 방송된 1회를 보면, 직장인들의 삶과 애환을 생생히 재연한 드라마에 실제 대기업 사원들 인터뷰와 회사 대표, 대학교수 등 전문가의 인터뷰와 분석이 더해졌다. 모조품,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로 보일 정도로 애잔한 직장 현실이 세밀하게 묘사됐다.
‘경력 후려치기’로 시작되는 이직의 전말
‘회사 가기 싫어’가 던진 화두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
많은 직장인이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오후, 한 남자가 족구공을 들고 사무실에 들어선다. 회사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권 대리. 그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을 패러디해 “대한민국 회사 다 족구 하라고 해!”라며 분노를 표출한다. 그는 이른바 ‘족구왕’으로 불리며 온라인의 명성을 얻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산다.
‘족구왕’의 후임으로 김기리 대리(김기리 분)가 경력직으로 입사한다. 큐브엔터테인먼트 마케팅팀에서 일했지만 계약직이었고 업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경력 후려치기’를 당한다. 회사 측은 “경력의 70%만 인정해 준다”며 연봉을 깎았고 김기리 대리는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직급 내에도 퍼진 ‘갑질 사슬 구조’
김 대리의 본격적 회사 생활은 그때부터였다. 팀원들을 만나며 업무 파악에 나섰다. 사내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박상욱 과장(김중돈 분)은 인사평가를 운운하며 사원 이유진(소주연 분)에게 막말을 퍼부었고, 양선영 과장(김국희 분)은 입으로만 일하며 후배들의 업무에 간섭했다. 사원들은 내키지 않아도 "네"라고 답하며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다.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이병훈은 “같은 직급 내에서도 지나치게 우열을 따지게 되는 것들이 직장문화에 나타난다. 수평적이라기보다 수직적 위계가 현실을 차지하다 보니 ‘갑질 사슬 구조’ 같은 구성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하향식 인사평가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대한민국 절반의 회사들은 승진, 성과급 등 인사점수를 상사 재량으로 평가한다. 그마저도 대한민국 회사의 62.7%가 사원들에게 ‘통보’만 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문제들을 막기 위해 서로를 평가하는 다면평가제를 도입하기도 한다고.
사노비들의 “예이”-영어의 “옙”과 ‘넵’의 관계
흥미로운 분석도 등장했다. 최근 메신저를 통해 업무지시를 하는 상사가 늘어난 추세에 맞춰 후배의 대답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 상사가 지시를 내렸을 때 사원들은 "넵"이라고 일관하는데, ‘회사 가기 싫어’는 이 ‘넵’의 기원을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브랜드 디자이너 박창선은 “‘네’라는 대답을 놔두고 ‘넵’을 쓰는 것은 단답형으로만 대답할 수 없는 을의 입장이 역사를 통해 발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사노비들은 ‘네’, ‘예’라고 할 수 없었고 ‘예이’, ‘네이’ 등 대답을 길게 빼는 형식을 취했다. 이 같은 대답이 복종 의미에 귀여움을 더한 형태로 발전해 ‘넵’이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경희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학부 이택광 교수는 “‘넵’은 한국말에 없던 말이다. ‘예스’(Yes)를 강하게 표현하게 위해 ’옙‘(Yep)이라고 하는데, 이 표기법이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넵‘이 만들어진 것 같다. ’넵‘은 '네'보다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내가 원하지 않지만 강하게 동의해야 하는 문제에 '넵'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회식, 그 씁쓸한 반강제적 업무연장
업무의 연장선에서 완벽한 위계질서 하에 이뤄지는 씁쓸한 회식문화도 그려졌다. 장성호 이사(지춘성 분)는 새로 들어온 김기리 대리에게 메뉴 선택권을 주지만 형식적 행동이었을 뿐 다들 장 이사가 좋아하는 메뉴로 눈치껏 선택하고야 만다. 자율적 참석이라고 말했지만 이 역시 반강제적 모임이었다.
회사 내 갑질 사슬은 회식자리까지 이어졌다. 사실상 업무의 연속이었던 것. 회식자리 배치 공식이 존재했고 서열 1위가 주도하는 대로 회식은 진행되어야 했다. 상사가 건배사를 하라면 해야 했고. 노래를 하라면 해야 했다. 따르지 않을 경우 상사는 부하 직원의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조차 서슴지 않았다.
“고민 많이 해서 만든 프로그램” 시청자 호평
‘회사 가기 싫어’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보고, 듣고, 경험해 보았을 일들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세세하게 그려 눈길을 끌었다. 상사의 어불성설 지시에 당하는 후배들의 모습부터 순진했던 신입사원들에게도 꼼수가 생기는 방법, 직장 내 서열문화 등이 여과 없이 담겨 보는 이들의 공감과 안타까움을 샀다.
첫 회를 본 시청자들은 “정말 공감이 된다. 실효성 없는 수평적 관계를 위한 호칭 통일부터 커피 소분, 회식자리 좌석배치까지. 어쩜 이리 비슷한지. 진짜 회사 가기 싫다. 그럼에도 또 다 그렇게 사는 구나. 나만 이렇게 사는 건 아니구나 하는 슬픈 위로를 받는다”(아이디 wind****), “간만에 박장대소하고 봤다. 다큐도 더해진 걸 보고 고민 많이 해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아이디 saha****), “직장인들 절대 공감!”(아이디 2bri****) 등의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선희 PD “더 나은 노동환경 고민의 출발점 됐으면”
‘회사 가기 싫어’를 연출한 이선희 PD는 프로그램 기획 의도에 대해 “어렵게만 느껴지는 노동문제가 실은 우리 삶의 본질이라는 점을 쉽고 친숙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참신한 접근법으로 모큐멘터리 형식의 ‘오피스물’이 최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다양한 장르를 결합한 신선한 시도에 대해서는 “시사의 ‘정보성’과 다큐의 ‘사실성’, 예능의 ‘흥미요소’를 화학적으로 결합하기 위해 예능PD인 저뿐 아니라 시사다큐PD, 개그콘서트 및 시사프로그램 작가들이 의기투합하면서 이례적으로 공동 작업한 것이 최대 강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프로그램의 모든 캐릭터와 에피소드는 실제 직장인들을 인터뷰해 구성한 것”이라며 “시청자들이 ‘웃픈’ 현실에 공감하는 걸 뛰어넘어 더 나은 근무여건과 노동환경을 위한 고민의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6부작 ‘회사 가기 싫어’, 19일 밤 11시10분 2회차 방송
회사와 사원, 고용주와 피고용자 간의 문제는 물론이고 선후배 및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직장 내 서열관계를 예리하게 짚어낸 ‘회사 가기 싫어’가 2회에서는 어떤 문제점들을 조명할지 궁금하다.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세상에 드러내 그 문제점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해 보는 공감 스토리텔링,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시트콤 형식으로 재미있게 그려낸 ‘회사 가기 싫어’는 6부작으로 기획됐으며, 매주 수요일 밤 오후 11시10분 시청자를 찾아간다.
KPI뉴스 / 홍종선 기자 dunasta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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