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영월 상동고 야구부…'폐교 위기에서 감동 드라마 쓰다'

전혁수 / 2024-03-21 11:03:12
지역·야구계 전방위 지원…인구 소멸 위기 자연스레 극복
'AG 금메달' 백재호 감독 "혜택 받은 만큼 환원하고 싶어 "
주민들, 게이트볼장→실내야구장 개조…선수들 하교 도와
2024 고교야구 주말리그 첫 참가…17일 강원고 상대 첫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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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서울에서 차로 4시간을 내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이곳은 전형적인 폐광 산골마을이다. 상동읍은 지난 2월 기준 1027명이 모여 사는 전국에서 가장 작은 읍(邑)이다.

 

광산업이 번창했던 예전엔 상동은 수만 명이 모여 살던 도회지였다. 하지만 1994년 텅스텐 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인구가 빠르게 줄기 시작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차마 이곳을 떠나지 못한 노인들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상동이 몰락하면서 1953년 문을 연 상동고도 폐교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3월 기준 전교생은 단 세 명뿐이었다. 그마저도 모두 3학년이라 이대로면 올해 폐교는 불가피했다.

 

동문회는 개교 70년을 넘긴 추억이 깃든 모교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살릴 방법을 찾았다. 대안으로 나온 것이 야구부 설립이었다. 지난해 야구부가 신설됐고 초대 감독으로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 영입됐다.


▲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전경. [사진=전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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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일고 시절 야구선수 백재호는 타격과 수비력을 겸비한 '멀티플레이어'였다. 청소년대표를 거쳐 국가대표(동국대 재학 시절)가 되는 엘리트 코스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백재호는 1997년 한화이글스를 통해 프로에 들어온 뒤 12년 간 주전 내야수로 뛰면서 1007경기를 소화하고 타율 0.245 68홈런 306타점을 기록했다.

 

1998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땄고 이듬해에는 한화이글스 소속으로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다.

 

2009년 유니폼을 벗고는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한화이글스 2군 수비코치로 시작해 2012년 SK와이번스 2군 수비코치로 옮긴 뒤에는 1군 수비코치, 2군 타격코치 등을 맡았다. 신세계그룹으로 주인이 바뀐 뒤에는 2021년 11월까지 SSG랜더스 퓨처스팀(2군)에서 일했다. 모교인 신일고와 인천 제물포고에서 코치 생활을 했다.

 

그가 상동고 야구부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데는 은사였던 양승호 전 롯데자이언츠 감독 제안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강원도 영월의 작은 고등학교로 내려오기로 마음먹는 일이 쉬운 게 아니다. 그간 쌓은 경력만으로도 대도시 고등학교, 대학, 프로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왜 상동고 감독을 맡았느냐'는 질문에 백 감독은 21일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고 운동선수로서 많은 혜택을 받았기에 그만큼 사회에 환원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작은 폐광 마을 고등학교에 야구팀이 생긴다는 소식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상동고는 고랭지에 자리잡고 있어 날씨가 춥다. 운동장도 좁다.

 

▲ 지난해 6월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상동고등학교에 야구부 학생들의 첫 등교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전혁수 기자]

 

상동도 야구부가 만들어지자 지난해 6월부터 새로운 얼굴들이 학교에 모습을 보였다. 오로지 야구 한번 멋지게 하고 싶다는 일념 하에 전국 각지에서 1학년생 14명이 대거 전학을 온 것이다. 아이들에 학부모까지 상동읍에 주민등록을 하면서 지역 인구는 드디어 1000명을 넘겼다.

노인만 가득하던 마을에 10대 소년들이 몰려들자 지역사회도 발 벗고 나섰다. 상동초·중·고 총동문회와 이장협의회는 거금 4000여만 원을 쾌척했다. 이 중 2000여만 원을 들여 빈집을 리모델링해 선수들에게 숙소로 제공했다.

주민들은 선수들이 마음 놓고 야간 훈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게이트볼장을 실내연습장으로 개조했다. 자율방범대가 나서 매일 밤 9시 지역을 순찰하고 야구부 학생들의 하교도 돕고 있다.

한 지역 주민은 "학생들이 등교할 때는 스쿨버스를 이용하지만 야구부 훈련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갈 때는 6~7km가량 떨어져 있는 숙소까지 마땅히 이용할 교통편이 없어 그전까지는 백 감독과 상동고 교사들이 하교를 도맡았다"고 설명했다.

관할 지자체인 영월군도 팔을 걷어붙였다. 유니폼과 야구용품 등을 지원했고 전세버스 비용 지원도 약속한 상태다.

 

▲ 지난해 7월 게이트볼장을 개조한 실내 야구 연습장에서 상동고 야구부 백재호 감독(왼쪽)과 선수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백재호 감독 제공]

 

상동고가 쓰고 있는 기적의 드라마는 계속되고 있다. '불세출의 투수' 故(고) 최동원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최동원기념사업회'는 지난해 10월 상동고에게 '불굴의 영웅상'을 수여했다. 사업회는 지난 2020년부터 최동원이 그랬던 것처럼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딛고 일어선 단체나 개인에게 이 상을 주고 있다. 사업회 관계자는 "영월에서 꿈을 키우는 선수들과 지도자들은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달 29일 자율형 공립고로 전환된 상동고는 야구부를 전략적으로 육성하면서 야구 이외에도 체육 관련 분야에 종사할 수 있는 진로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교육부는 5년간 상동고에 매년 2억 원의 추가 예산을 지원할 예정이다.

팀 외형에도 큰 변화가 왔다. 올해 신입생 15명이 들어와 선수도 29명으로 늘어났다.

그랬기에 지난 16일 열린 2024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전반기 경기는 여러 면에서 야구계 큰 관심을 모았다. 첫 공식 경기에서 상동고는 전국대회 우승후보로 꼽히는 강릉고를 맞아 2점을 얻었으나 16점을 내줘 7회 콜드게임으로 패했다.

첫 공식 경기여서 그런지 실책이 발목을 잡았다. 1회 3점, 2회 9점, 4회 2점 모두 실책에서 비롯됐다. 4회말 안타 2개와 몸에 맞는 공 1개, 땅볼을 엮어 2점을 뽑아낸 것에 의미를 둬야했다.

경기 내내 선수들에게 "괜찮다. 너희들이 보여줄 수 있는 거 다 보여주고 오라"고 독려하던 백 감독은 경기 후 "선수들이 첫 경기라 너무 긴장했던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상동고는 이튿날 강원고를 상대로 접전 끝에 8대7로 이겨 창단 첫 승을 거뒀다. 안타는 6개에 그쳤지만 11개의 사사구를 얻어낸 것이 승리로 이어졌다.

▲ 지난 16일 강원도 횡성군 횡성베이스볼센터에서 열린 고교야구 주말리그 전반기 경기에 참가한 영월군 상동고 선수들이 강릉고와 첫 경기를 치른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전혁수 기자]

 

9회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는 순간 상동고 덕아웃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백 감독은 "선수들과 교사, 동문들, 그리고 영월군 관계자들이 하나 돼 만든 값진 승리"라고 소감을 전했다.

무너져가는 폐광지역, 폐교 위기에서 탈출한 지 1년도 안 돼 첫 승이라는 기적을 일궈낸 상동고 신화는 이제 시작이다.

 

KPI뉴스 / 강원도 영월군=전혁수 기자 jhs@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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