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5개 마을 신앙 지도 한눈에…관내 반세기 자료 총망라
"지역 연구자들과의 협업 모델 구축해 큰 의의"
작은 땅덩어리지만 우리나라 전역은 지역마다 고유한 전통과 신앙이 뚜렷하다. 그런 점에서 TV나 고궁에서 다양한 제례와 전통행사를 자주 접하더라도 전통 신앙에 대해서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닌' 상태에 머무르기 쉽다. 이런 가운데 국립민속박물관이 최근 강원도 전역의 마을신앙을 처음으로 집대성한 단독 보고서를 내놓아 주목받고 있다. 이번 보고서에는 97개 마을의 제의를 직접 기록한 '조사 내용' 등이 포함돼 강원 지역 공동체 신앙의 구조와 변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강원도 마을은 어떤 신들이 지켰을까
강원도의 마을신앙은 산줄기와 바다가 교차하는 지형만큼이나 서로 다른 구조를 지닌다. 영서와 영동을 가르는 신앙의 차이는 두 권으로 구성된 조사보고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흐름이다.
| ▲ 횡성군 둔내면 삽교1리 서낭제 [국립민속박물관] |
산간 분지와 계곡을 따라 마을이 자리한 영서에서는 산신과 성황신을 중심으로 제의가 이어져 왔다. 춘천 서면 일대에서는 서낭제와 산신제가 모두 확인되는데, 신목·바위·당집 등 자연물을 신체로 삼는 방식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한 마을에서 두 제의가 병존하는 점도 특징이다.
반면 동해와 맞닿은 영동 지역의 마을신앙은 생활환경과 종교적 실천이 밀접하게 결합한다. 강릉·속초·고성 등 해안 마을의 성황제에서는 풍어와 안전 조업, 관광객의 무사 기원을 함께 비는 사례가 많다. 제의를 주관하는 주체는 주로 어촌계가 중심을 이룬다. 강릉 주문진읍의 성황제와 풍어굿은 대표적 사례다.
| ▲ 삼척시 근덕면 교곡리 대서낭고사 [국립민속박물관] |
영동 일부 지역에서는 성황신을 '남성황·여성황'으로 구분해 두 개의 성황림을 조성하고 별도의 제의를 치르는 독특한 전통도 이어진다. 고성 죽왕면 문암1리가 대표적인 사례로, 남녀 신격을 구분하지 않는 영서 지역과 대비된다.
강원권에서는 자연신 이외의 독특한 신격도 확인된다. 영월과 정선 일대에서는 조선 단종을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사례가 조사됐다. 역사적 비극의 기억이 공동체의 신앙 체계로 편입된 사례로 지역의 서사가 신격화된 특수한 경우다.
태백산권은 또 다른 양상이다. 이 지역에서는 개별 마을의 산신보다 태백산신을 최고 산신으로 받드는 위계가 형성됐다. 삼척·태백 일대의 산맥 제의와 태백산 대성황당제는 모두 태백산을 향해 집결하는 구조로 나타난다. 산악 지형이 신앙 체계를 구조화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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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천시 동산면 밭치리 장승제 [국립민속박물관] |
두 보고서를 종합하면 신체(神體, 신이 머무는 매개물)의 차이도 분명하다. 영서는 느티나무·벚나무·소나무 등 오래된 나무를 중심으로 신이 좌정한다고 믿었다. 영동에서는 성황바위·대나무 숲·해안 암석 등을 신체로 삼았다. 특히 강릉 소돌서낭제의 '성황신바위'는 바다와 신앙이 맞닿는 독특한 장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승 여부에서도 환경 차이가 드러난다. 영서 산간의 여러 마을은 고령화와 인구 이동으로 전통 제의의 단절이 늘고 있는 반면 영동 해안 마을은 관광·어업 경제와 맞물려 성황제·풍어굿 등이 꾸준히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속초 대포동의 한개 성황제와 용왕제는 여전히 주민 참여가 활발한 대표 사례다.
두 권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최근 당집(마을신을 모시는 작은 사당)이 옛것보다 크게 재건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신체와 위패만 모실 만큼 작았지만 이제는 제관과 제상을 들일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확장돼 공동체 의례 공간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마을신앙이 단순한 전통 유지 차원을 넘어 공동체 결속을 강화하는 장치로 재해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125개 마을의 신앙 지도를 한눈에…반세기 자료 총망라
강원도 전역의 마을신앙을 한데 묶은 이번 보고서는 기존의 개별 시군 단위 조사에서 벗어나 18개 시군, 2125개 마을의 전승 현황을 통합한 첫 작업이다. 시군별 4~12개 마을을 선정해 제의 전통과 변화를 심층 기록했다. 746개 마을의 전승 현황은 신규 조사 또는 재정리한 결과다. 1960년대부터 2006년까지 축적된 1377건의 자료까지 포함돼 사실상 강원 마을신앙 60년을 통합한 셈이다. 보고서는 영서·영동을 '강원1'과 '강원2'로 구분해 지역별 신앙 구조의 차이를 명확히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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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민속박물관이 강원도 전역의 마을신앙을 처음으로 집대성한 단독 보고서. [국립민속박물관] |
이번 조사가 특히 의미를 갖는 이유는 현지 연구자 중심의 조사 체계란 점이다. 조사 인력 110명 중 40%인 43명이 강원 지역 연구자로 이들은 7개월 동안 도 전역을 직접 답사하며 '전승현황표'를 완성했다. 각 시군 조사에 지역 연구자가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이런 방식은 해석의 편차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이번 조사가 충청·전라·제주·경상권에 이어 수행된 사업이며 2026년에는 서울·경기권 조사도 예정돼 있다. 이번 보고서는 지역 공동체 신앙의 기반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지역 연구자들과의 협업 모델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했다.
해당 보고서 전문은 박물관 누리집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KPI뉴스 / 제이슨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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