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 지쳤을 때 여행을 꿈꾸곤 한다. 그냥 떨치고 나서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아서다. 그러나 세상 일이 마음 먹었다고 다 할 수 있던가.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여러 곳을 다녔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여행지에 대한 기억을 펼쳐놓으려 한다. 새삼스런 설렘에 나 자신 다시 길 위로 나설지도 모르겠다.
마추픽추(Machu Picchu).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곳이다. 그냥 이름만으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곳. 2007년 전 세계인이 투표한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뽑혔다. 그래서일까. 마추픽추를 사진으로 보면 마치 블록 장난감을 세워놓은 듯 현실감이 없다. 페루 안데스 산맥 고지대 우루밤바(Urubamba) 계곡에 숨은 듯 자리 잡은 그곳에 직접 발을 내디뎠을 때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곳(해발 2430m)에 그 거대한 규모의 도시가 불쑥 앞에 나타나니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서 셔틀버스 운행
마추픽추에 가려면 먼저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로 가야 한다. 대부분 기차로 이곳에 와서 다시 셔틀버스를 20분 정도 타고 가는 여정이다. 이 작은 마을은 '뜨거운 물'이라는 이름처럼 42도의 온천수가 나오고 있어 마추픽추 관광을 한 다음 피곤한 몸을 풀 수 있다. 그러나 시설은 좋은 편이 아니어서 온천욕을 권할 만하지는 않다고 한다. 마을 입구 광장에는 관광객을 환영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버스 터미널이 있는 곳에 시장과 식당이 몰려 있다.
이와 달리 옛 잉카인이 다녔던 길로 마추픽추까지 걸어가는 잉카 트레일이 있다. 체력에 자신이 있고, 안데스 산맥의 다양한 풍경을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해볼 만하다. 2일에서 5일까지 다양한 코스가 있고, 한국에서 미리 예약 할 수 있다.
흔히 '잃어버린 공중 도시'라고 부르는 마추픽추는 언제 어떤 목적으로 세워진 것인지 정확한 사실은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잉카의 파차쿠텍(Pachacutec) 왕이 재위(1438–1471)하던 시기인 15세기 중반에 건설을 시작한 것으로 짐작된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를 멸망시킨 뒤 그때까지 잉카의 역사를 정리한 글에서도 언급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묻힌 채 있었다. 주위를 둘러싼 뾰족한 봉우리들이 외부세계와 격리시켜 놓은 탓이다. 어쨌든 잉카제국의 도시인 것을 분명하다. 이곳은 스페인이 다른 모든 도시를 파괴해 버렸기에 보기 힘든 잉카의 건축양식, 특히 거대한 돌을 접착제 없이 이어 붙인 잉카의 뛰어난 석조기술을 직접 볼 수 있어 유익하다.
계단식으로 조성된 경작지에 건물 200채 넘어
마추픽추는 케추아어로 '늙은(오래된) 봉우리'라는 뜻이며, 유적지는 그 봉우리와 '젊은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와이나픽추 사이에 위치한다. 유적지에는 계단식으로 조성된 경작지와 200채 이상의 건축물이 있는데, 대부분 늙은 봉우리 아래 펼쳐져 마추픽추라고 부른다. 흔히 보는 마추픽추 사진에서 우뚝 선 가장 큰 봉우리가 바로 와이나픽추다. 사람들은 와이나픽추가 퓨마의 모습을 하고 있고, 왼쪽 작은 봉우리 3개는 콘도르의 날개 펼치고 나는 형상이라며 사진에 덮쳐 그린 그림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곳도 쿠스코와 함께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이 찾는 바람에 훼손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어 2017년 7월부터 유네스코의 권고를 받아 하루 입장객을 6000명 남짓으로 제한하고 있다. 방문 시간도 오전 오후로 나눠 한번 입장하면 정해진 통로를 따라 4시간 정도만 머물 수 있다.

마추픽추 안에 있는 와이나픽추(Huaynapicchu, 해발 2682m)와 몬타냐마추픽추(Montana Machupicchu, 해발 3082m)는 올라가려면 별도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두 곳 모두 마추픽추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와이나픽추는 아침 7시와 10시에 200명씩 등반할 수 있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땐 등반 자체가 금지되기도 한다. 다들 올라가기 전에 이름을 적어놓고 정해진 시간 안에 돌아와야 한다. 와이나픽추는 상당히 가파른 산길을 2시간 이상 올라야 하기 때문에 쉽게 마음을 먹기 어렵다. 몬타냐마추픽추도 아침에 두 차례 입산이 허용된다. 와이나픽추보다 덜 가파르긴 하지만 더 높아 힘든 코스다.

미국 역사학자 하이럼 빙엄이 1911년 처음 발견
마추픽추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미국 역사학자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이다. 그가 페루에 온 것은 잉카의 마지막 근거지인 '빌카밤바(Vilcabamba)'를 찾기 위해서다. 잉카의 마지막 왕인 만코 잉카 유판키가 스페인에 맞서 항거하면서 자신의 거주지에 보물을 숨겨놓았다고 말했다. 이른바 '엘도라도'로 이야기다. 빙엄은 “높은 산 위에 거대한 건물”이 세워져 있다는 기록에 근거해 '빌카밤바'를 찾아나섰다가 1911년 현지 소년의 안내로 우연히 이곳을 발견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황금은 없었기에 그는 다른 곳을 찾기 위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뒤 유적지의 엄청난 가치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마추픽추에서 초기에 지어진 것은 인티와타나(Intihua-tana), 태양의 신전(Temple of Sun), 창문 세 개가 있는 방(Room of the three windows) 등을 꼽는다. 인티와타나는 큰 돌을 깎아서 만든 해시계로 일부 학자들은 달력 역할도 한 것으로 추측한다. 태양의 신전은 중앙 광장에 있는데, 자연석 큰 바위 위에 반원형 탑처럼 세운 것이다. 왕과 귀족, 사제만 드나들 수 있었고, 평민은 들어갈 수 없었다. 12월 22일 하지(남반구)가 되면 산 위에 있는 태양의 문에서 해가 떠올라 신전의 창을 통해 햇빛이 들어오는데 그 빛의 각도를 보고 건기와 우기를 가늠했다. '창문 세 개가 있는 방'도 역시 신전으로 창을 통해 내다보면 마추픽추를 둘러싼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콘도르의 신전이 있는데, 콘도르는 잉카제국에서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뜻하는 말이다. 잉카인은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부활한다는 전설을 믿고 있었기에 콘도르는 각별히 숭배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신전 안 바닥에는 콘도르의 머리 모양을 본 딴 돌이 있는데, 제단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사라진 제국의 흔적만 안고 있다. 언제쯤 그 영웅이 다시 나타날까.
다음으로 '망지기의 집'으로 알려진 초소가 있다. 이곳은 마추픽추 유적지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로 안전과 방어에 아주 중요한 건물이다. 그 위치 때문에 많은 관광객이 사진을 찍는데, 마추픽추를 대표하는 사진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찍은 것이다.
복원공사 계속 중…과거 '제국의 영광' 되살릴까
마추픽추를 찾을 때 가장 힘든 것은 날씨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변덕스럽게 바뀌기 때문에 대비를 잘해야 한다. 자칫하면 추워서 떨다가 몸살에 걸릴 수 있고, 아주 더운 한낮에는 더위를 먹을 수도 있다. 따라서 항상 긴 옷을 준비하고 다니는 것이 좋다. 그러나 가끔은 날씨 때문에 신비로운 경험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태양의 문(Sun Gate)을 다녀온 것이 기억에 남는다. 왕복 2시간 이상 걸려 좀 멀긴 하지만, 길이 넓어 비교적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아침 일찍 출발했을 때는 짙은 안개가 감싸고 눈길 둘 데를 주지 않았다. 그냥 발밑만 쳐다보면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긴장해서 걸었다. 도착한 뒤에도 안개는 쉬이 물러설 기미가 없었고, 오히려 사방을 뒤덮은 안개가 오롯이 태양의 문을 보호하고 있는 듯했다. 불현듯 이상한 나라로 들어선 느낌이 들면서 바로 옆에서 과거 잉카인이 불쑥 다가와 손을 내밀 것도 같다. 그러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안개를 걷어낸다. 그야말로 눈앞에 신천지가 전개되는 순간이다. 멀리 마추픽추의 건물들이 언뜻언뜻 모습을 보여줬다가 다시 사라지곤 한다. 그러더니 태양이 힘을 발휘하면서 안개는 맥을 못 추고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 아래 펼쳐진 마추픽추의 모습이 더욱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가는 길에 잉카의 옛길도 잠시 엿볼 수 있다. 폭이 겨우 30c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곳을 동물과 함께 갔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발바닥이 간질거리며 아찔했다. 지금은 너무 낡아서 안전 문제로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페루 정부는 현재도 마추픽추 복원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모습은 되살리더라도 이제 과거의 제국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전통악기 삼포냐(zampoña)로 연주하는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 철새는 날아가고)'의 선율이 그 어디서보다 더욱 구슬프게 들렸던 것은 유적지 곳곳에서 풀을 뜯는 라마들이 너무 무심해 보여 그랬을 것이다.
글·사진 남인복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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