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익 캐스터 "한국 축구 중흥 위해 10년 만에 복귀했죠"

김병윤 / 2019-03-08 20:57:46
한·일전 “후지산 무너졌습니다” 명언
온 국민을 웃기고 울린 ‘전설의 중계’
▲ 송재익 캐스터 [프로축구연맹]


“후지산이 무너졌습니다.” 1997년 9월 28일 일본 도쿄에서 벌어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3차전. 한·일전 축구 경기에 명언을 남긴 캐스터가 있다. 송재익 캐스터이다.

 

올해 78살이다. 팔순을 바라본다. 1970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1998년 정년 퇴직 했다. 퇴사 후 프리랜서로 SBS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중계를 했다. 그리고 68살에 마이크를 놓았다. 아나운서 생활 40년을 끝냈다.

 

올드 팬들의 기억 속에 멀어졌던 송재익 캐스터. 그가 돌아왔다. 10년 만에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나 아직 살아 있다고. 100세 인생에 새로운 길을 비쳐 주겠다고. 남은 인생 축구 중흥을 위해 쏟아붓겠다고.

 

송재익 캐스터의 놀이마당은 어디일까. 한국프로축구연맹. K리그가 판을 깔아줬다. 2019 K리그는 중계 일부를 프로축구연맹이 직접 제작한다. 누구도 상상 못했던 대변혁이다. 그동안은 외부 제작사의 농간에 놀아났다. 이제 제자리로 돌아섰다. 축구의 상품 가치를 찾는 첫 걸음을 어렵게 내딛었다. 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 이하 직원들 고생 많았다.

 

아직은 미약하다. 2019시즌은 K리그2만 중계한다. 기다려 보자. 2020년에는 프로축구연맹이 제대로 된 중계를 선보일 것이다. K리그1도 중계를 할 예정이다. 그 자리에 78살의 송재익 캐스터가 돌아왔다. 남들은 말한다. 노땅이라고. 그냥 웃자. 할 말이 있다. 썩어도 준치라고. 늙은 말이 길을 잘 찾는다고.

 

5G시대에 말장난 하냐고 하면 입을 닫자. 일단 들어 보시라고 여유를 보이자. 아나운서를 ‘언어운사’라 한다. 말을 직업으로 하는 인생이라. 아나운서는 말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신중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감동을 줘야 한다. 이런 요소를 갖춘 캐스터가 있다. 송재익 캐스터이다. 프로축구연맹과 함께 인생 3모작을 펼치는 송재익 캐스터를 만나본다.

10년 만에 마이크를 잡았다. 복귀 소감은


지난 2일 광양 전용구장에서 중계를 했다. 담담했다. 운동장이 낮 설지 않았다. 광양경기장은 예전에도 여러 번 갔었다. 오히려 친근했다. 해설하는 강신우 위원도 여러 번 만나 친근감이 있어 좋았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나도 깜짝 놀랐다. 팬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사실 중계하기 전까지 약간 긴장했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마이크를 잡으니 옛날 톤이 나왔다. 2002년 월드컵 중계할 때 톤이 나오는 걸 느꼈다. 다행히 그날 경기내용도 좋았다. 전남과 아산이 수준높은 팀이라 박진감이 있었다. 예전의 톤을 찾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모든 사람들이 도와줘서 무사히 중계를 끝낸 거였다. 운도 따랐다. 함께 해준 스태프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이제 말할 수 있다. 첫 방송 반응이 안 좋았으면 그만두려 했다.

복귀한다 했을 때 주변의 반대는 없었나


▲ 3월 5일 송재익 캐스터가 UPI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아내가 노파심에서 반대를 했다. 요즘은 옛날과 방송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SNS를 통해 모든 정보가 전달된다. 아내가 혹시라도 악플이 달릴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도 젊음을 마이크와 살았는데 뭐가 두려울 게 있는가. 악플이 달린다면 그것도 발전하는 계기로 삼으면 된다.


주변 친구들은 놀랐다. 솔직히 많이들 부러워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생은 60살부터라고 했다. 지금은 100살 시대다. 인생은 80살부터라 하지 않는가. 나에게는 너무 큰 행복이고 행운이 찾아왔다. 큰 책임감을 느낀다. 내가 잘해야 후배 아나운서들이 퇴직 후에도 자신들의 영역을 찾으리라 본다. 많은 질책과 성원을 부탁한다.

과거에 비해 중계스타일의 변화를 느끼는가


요즘은 TV시대라 경기장면을 화면이 보여준다. 우선 겸손하게 중계를 해야 한다. 말수를 줄여야 한다. 톤도 낮춰야 한다. 인터넷 발달로 뒷얘기가 많다. 중계에 대한 평가가 곧바로 널리 퍼진다. 캐스터 입장에서는 아주 큰 부담이다. 그래도 캐스터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헤쳐 나가야 한다. 노력해야 한다.

 

우스운 얘기를 하겠다. 예전에 한·일전 중계를 할 때였다. 한국이 일본을 이겼다. 그때 후지산이 무너졌다고 멘트를 했다. 후배 캐스터가 나름대로 고민해서 멘트를 했다. 터키전 때였다. 후지산에 빗대 터키탕을 인용했다. 방송국 전화기가 어땠을까는 상상에 맡기겠다. 이제는 시청자를 무섭게 생각하며 중계를 해야 한다.

캐스터와 해설자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좋은 질문이다. 예를 하나 들겠다. 불이 나면 불이야 하고 외쳐주는 사람이 캐스터다. 해설자가 불이야 소리칠 이유가 없다. 해설자는 화재 원인을 설명해주면 된다. 방화인지. 누전인지.발화 지점은 어디인지를 알려주면 된다.

 

해설자는 말이 많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캐스터와 해설자가 경쟁하려 하면 안 된다. 두 사람은 일심동체의 정신으로 중계를 해야 한다. 서로 목소리를 높이려 하면 중계는 엉망이 된다.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시청자가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술·담배를 전혀 안 한다. 주변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한다. 나는 평생 몸에 밴 습관이라 아무렇지도 않다. 나름대로 사는 재미가 있다. 아내와 함께 여행을 다닌다. 은퇴 후 캠핑카를 사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도 오버를 안 한다. 아나운서 생활하면서 이해 관계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자연히 일과 가정밖에 모르고 살았다. 요즘은 걷기운동에 빠졌다. 일주일에 2번은 1만5000보를 걷는다. 매일 평균 7000~8000걸음은 걷는 것 같다.

 

이번에 프로축구연맹에서 미약한 나를 불러준 것도 체력이 뒷받침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로 방송 담당자가 한 번 보자 했다. 처음에는 이유를 몰랐는데 나중에 눈치를 챘다. 나의 목소리와 건강상태를 점검하려 했던 거였다. 경력보다 중요한 것이 체력이라는 걸 직접 느꼈다.(웃음)

중계방송을 앞두고 준비는 어떻게 하는가


▲ 송재익 캐스터, 강신우 해설위원 [프로축구연맹]


자료준비는 많이 한다. 그거는 모든 캐스터의 기본이다. 자료를 준비할 때 선수들의 특성 등을 해설자와 맞추는 거다. 예를 들어 어떤 선수가 10남매의 막내라 하자. 캐스터가 해설자에게 저 선수 형제가 많지요 하고 묻는다. 이때 해설자가 10남매의 막내선수입니다 하고 받아주는 거다. 그래서 캐스터와 해설자의 호흡이 중요한 거다.

 

나는 자료에 의존해서 중계는 안 한다. 가장 잘하는 중계는 자료를 활용하지 않는 거다. 현장감을 살려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경기장에 일찍 간다. 최소 3시간 전에 경기장에 도착한다. 경기장이 눈에 익어야 편안하게 중계를 할 수 있다. 나는 40년 방송생활 하면서 방송사고가 한 번도 없었다. 운이 좋았다. 중계하기 전에는 사우나에 가서 몸을 씻는다. 넥타이를 매고 중계 준비를 한다. 나만의 징크스이고 마음가짐이다.

후배 아나운서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방송은 멋있게 하면 안 된다. 경기장에서는 선수가 주인공이다. 캐스터는 묘사만 하면 된다. 


멋진 경기를 해주는 선수가 제일 고맙다. 그 선수의 땀방울이 세상 무엇보다 아름답다. 성스럽다. 그런 선수들이 있기에 캐스터가 존재하는 거다. 캐스터는 다시 말하지만 겸손해야 한다. 


대담 프로도 마찬가지다. 아나운서가 주인공이 되면 안 된다. 출연자가 주인공이다. 이번에 마이크를 다시 잡으며 느낀 것이 있다. 내 스스로를 돌아 봤다. 내가 전생에 축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하고. 2002년 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렸다. MBC 퇴사 후 월드컵으로 인해 10년을 더 중계했다. 이제는 고마움을 갚아야 된다. 그래서 방송국이 아닌 프로축구연맹 소속으로 일을 하게 된 것 같다. 여력이 다할 때까지 한국축구 발전을 위해 뛰라고 책임을 준 것으로 생각한다.

 

후배들도 꾸준히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해 주었으면 한다. 스포츠 캐스터들은 자기만의 주종목을 확실히 만들었으면 한다. 아나운서는 방송의 꽃이다. 뉴스·대담·예능·교양 여러 분야에서 자신만의 특징을 뽐낼 수 있다. 이제 방송 환경이 변했다. 수많은 채널이 생겼다. 퇴직 후에도 여러 곳에서 방송할 여건이 만들어져 있다.

 

장수는 지장, 덕장, 용장으로 나뉜다. 장수 중의 최고는 운장이라고 느낀다. 운 좋은 사람에는 이길 자가 없다. 운은 그냥 오지 않는다. 노력하고 준비하는 사람에게만 온다. 거짓말처럼 찾아온다. 아나운서는 평범해야 한다. 곧잘 사는 집 둘째 아들 정도가 돼야 한다. 그 말은 아나운서가 편해야 듣는 사람이 편하다는 뜻이다. 유명해지려고 나서면 안 된다. 주인공들을 뒤에서 빛이 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면 나중에 스스로 빛이 나게 돼 있다.

 

KPI뉴스 / 김병윤 기자 bykim7161@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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