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불법승계는 무죄"라는 거대한 모순

류순열 기자 / 2024-02-06 18:24:43

2015년 봄(5)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논란이 달아올랐다. 제일모직 1주와 삼성물산 3주를 바꾸는 합병비율이 문제였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에서 소액주주들에 이르기까지 삼성물산 주주들은 "합병 비율이 불공정하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제일모직은 고평가, 삼성물산은 저평가됐다는 거였다.

 

논란속에 그 해 여름(7) 합병은 성사됐다. 삼성물산 주총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대주주(11.9%)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진 결과였다. 국민연금은 제일모직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지분 46.3% 가치를 66000억원으로 추산하고, 합병비율에 찬성했다. 그러나 당시 세계 최대 의결권자문사 ISS는 삼바 가치를 15200억원으로 평가하고 적정 합병비율로 10.95를 제시했다. 편차가 커도 너무 컸다.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4%를 갖고 있을 뿐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다. 삼성물산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될수록 이 부회장의 합병 혜택은 커지는 구조였다. '최소 비용'으로 그룹 지배력을 '최대화'하는 방법은 자명했다.

 

통합 삼성물산은 새로운 삼성그룹 지주회사격인데, 이 부회장은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 최대주주(16.54%)로 올라섰다. 경영권 승계의 완성이었다. 통합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4.06%, 삼성생명 19.34%, 삼바 43.4%를 보유,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자리잡았다.

 

모든 건 이 과정, 즉 이재용 체제 구축과 관련해 벌어진 일이다. 이 부회장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연루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논란도, 삼바 분식회계(회계사기)의혹도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모두 이재용 경영권 승계과 관련된, 물고 물리는 연쇄적 사건들이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부터 이상했다.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게 산정된 비율이라서 세계 최고 의결권자문기관 ISS, 국민연금 의결권 자문기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도 합병 반대를 권고한 터에 왜 찬성표를 던졌나.

 

왜 그랬는지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정유라의 승마,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을 압박하면서 반대급부로 삼성에 제공한 게 '민연금 찬성표'였다. 행동대장 역할을 한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의 수첩은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다. 해당 수첩은 20142016년 작성한 63권 분량으로, 박 대통령이 그에게 내린 지시를 받아적은 내용이 담겼다.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박 대통령에게 한 '민원'이나 박 대통령이 안 수석에게 최 씨를 도와주라고 한 내용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이렇게 청와대 '오더'를 받고 국민연금에 찬성을 압박한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500여일 옥살이를 해야 했다.

 

삼바 가치 평가도 의문이었다. 삼바가 회계장부에서 콜옵션을 고의로 누락해 합병 과정에서 가치를 부풀렸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삼바는 2012년 미국 바이오젠과 바이오시밀러 연구·개발을 위한 합작법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했는데, 바이오젠은 합작 당시부터 에피스 지분을 '50% - 1'(49.99%)'까지 살 수 있는 콜옵션을 보유했다.

 

콜옵션은 주식을 미리 정해놓은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로, 주가가 오르면 이익이 커진다. 삼바로서는 부채다. 그런데 삼바는 이 같은 콜옵션 계약 내용을 2012~2014년에는 공시하지 않았다. 부채를 감춘 것이다.

 

그러다 2015년 갑자기 에피스를 종속회사(단독지배회사)에서 지분률이 더 낮은 관계회사(공동지배회사)로 변경했다. 미국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커져 단독 지배력을 상실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금융당국(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은 이를 고의 분식회계로 결론지었다. 당시 에피스에 대한 삼바의 지배력이 달라졌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거였다. 실제 바이오젠은 20157월 이후 콜옵션 행사 연기를 통보했다.

 

당시 이 같은 회계처리 변경으로 에피스 지분 평가액이 장부가에서 시장가로 바뀌면서 매년 수백억 원 적자를 내던 삼바는 19000억원 흑자 회사로 깜짝 반전했다. 에피스 지분의 장부가는 3300억 원이었지만 시장가로는 48000억 원이었다. 단 번에 회계상 45000억 원의 투자이익이 생겨난 것이다.

 

종속회사나 관계회사는 지분 보유목적이 단순 투자가 아니라 경영 참여이므로 지분평가를 시장가가 아니라 장부가로 하는 게 회계 원칙이다. 이 경우 계속 움직이는 시장가격이 아니라 순자산가치가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배력 변경으로 종속회사가 관계회사가 되거나, 관계회사가 종속회사가 될 경우는 당해년도에 한해 지분가치를 시장가로 인식한다. 기존주식을 매각했다가 전체를 재매입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 복잡한 듯 단순한 일이 왜 벌어진 건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의 '사후 합리화'가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중론이었다. 김은정 참여연대 경제노동팀장은 당시 "합병의 마무리 작업이 결국에는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라고 지적했다. "합병 과정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이뤄졌고 이런 과정이 알려지는 것을 무마하려는 대응들이 조직적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도 "삼바 분식회계는 이재용 부회장 경영권 승계의 큰 그림에서 이미 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에서부터 반영이 된 것이고, 차후 현실을 맞추는 작업으로 이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2018년 증선위 감리위원이던 이한상 고려대 교수도 "명명백백 고의에 의한 분식회계"라고 SNS를 통해 밝혔다. "320시간 이상 리서치를 했다. 감리위를 3번 거치면서 10시간 이상씩 회의 하느라 진이 빠졌었는데 마무리가 돼 감회가 남다르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렇듯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삼바 분식회계는 '이재용 경영권 승계'를 매개로 연결돼 있다. 그런데 1심 재판에서 이 모든게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2(재판장 박정제)는 지난 5일 부당합병,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 "공소 사실에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19개 범죄 혐의 모두에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7년간의 사법리스크에서 일단 벗어났다. 그러나 거대한 모순이 생기고 말았다. 이 회장도, 삼성 미래전략실 임원들도 모두 무죄라면 남는 의문이 한둘이 아니다. 이재용은 왜 최순실(최서원)의 딸 정유라에게 말을 사준 것인가. 안종범 경제수석은 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합병 찬성 압력을 넣은 것인가. 문형표 장관은 왜 유죄 판결을 받고 옥살이를 한 것인가. 삼성물산은 왜 엘리엇에 724억 원을 비밀리에 지급한 것인가. 

 

합병비율이 불공정했음은 이미 대법원도 인정한 사실이다. 대법원은 2022년 4월 합병 당시 삼성물산 주요 주주였던 일성신약이 삼성물산 가치가 낮게 평가됐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일성신약 손을 들어줬다.   

 

수사한 이들이 답해야 한다. 공명심에 불타 무리한 수사, 허술한 기소를 밀어붙인 건가.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대통령), 3차장은 한동훈(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주임부장은 이복현(금감원장). 기소 당시 검찰총장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이성윤, 주임부장은 이복현이다.

 

2015년 당시 삼성물산 주주로 합병 부당성을 알리며 반대운동을 펼쳤던 50대 최모 씨는 6"세상이 정상이 아니질 않나. 그런 세태에 순응하는 판결이 아닌가 싶다"며 "이재용 경영권 승계를 위해 주주들만 죽어나간 것"이라고 탄식했다.

 

▲ 류순열 편집인

 

KPI뉴스 / 류순열 편집인 ryoos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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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 /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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