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가상각비는 요금에 반영…소비자는 설치·사용 이중 부담
순이익 초과 배당까지…수익은 대기업·외국계 펀드로 흘러가
도시가스는 생활 필수품이다. 현대인의 일상을 떠받치는 공공 인프라다. 그런데 고지서 요금의 이면을 속속들이 아는 이는 많지 않다. KPI뉴스가 가스 요금이 어떻게 결정되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추적했다.
도시가스 배관은 누구의 것일까.
동네 골목 아래 묻힌 배관은 겉으로 보기엔 공공 인프라다. 실제로 설치비도 상당 부분 세금과 주민 부담금에서 나온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조금을 대고, 가스를 쓰려는 주민은 시설분담금과 인입공사비를 낸다.
그런데 배관에서 나오는 돈은 어디로 갈까. 주민도, 지방자치단체도 아니다. 대기업 지주사와 외국계 펀드다.
KPI뉴스가 전국 도시가스 회사의 감사보고서와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도시가스 사업자들은 벌어들인 순이익 대부분을 배당으로 챙기고 있었다. 일부 회사는 순이익보다 더 많은 돈을 주주에게 나눠줬다. 설치비는 공공이 부담하고, 수익은 민간 주주가 가져가는 구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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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2023년 강원도 삼척시 도시가스 공급시설 설치비 분담 내역. [삼척시 제공] |
세금과 주민 부담으로 깔린 배관
5일 각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 지급 내역을 취합한 결과, 강원 지역 4개 시·군에서만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총 95억 원의 보조금이 도시가스 배관 설치에 투입됐다. 수령 사업자는 강원도시가스와 명성파워그린이다. 지역별로는 태백시 27억 원, 홍천군 14억 원, 삼척시 24억 원, 평창군 30억 원이었다. 일부 사업은 전체 배관 설치비의 절반을 지자체 보조금으로 충당했다.
세금만 들어간 것이 아니다. 가스를 새로 공급받는 주민도 비용을 낸다. 도시가스 신규 설치 과정에서 부과되는 이른바 '자부담'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도시가스 인입을 진행하는데 인입공사비 230만 원에 시설분담금 210만 원 청구서를 받았다. 타당한가", "시설분담금 157만 원을 입금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적정한 금액인지 궁금하다"는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민 입장에서는 가스를 쓰기 위해 먼저 돈을 내야 한다. 지자체도 보조금을 투입한다. 이렇게 깔린 배관은 도시가스 회사의 회계장부에 자산으로 잡힌다.
설치할 때 한 번, 사용할 때 또 한 번
이게 다가 아니다. 배관 설치비 일부를 세금과 주민이 부담했는데, 배관 유지·상각 비용은 다시 도시가스 요금에 반영된다. 주민은 배관을 깔 때 한 번 부담하고, 이후 가스를 쓸 때 또 한 번 비용을 부담하는 셈이다. 한 광역자치단체 도시가스 담당자는 "가스 공급비용 산정기준에 규정된 감가상각비를 요금에 반영하고 있다"며 "결국 주민이 가스배관의 감가상각비를 부담하게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도시가스 회사 입장에서는 배관이 핵심 자산이다. 초기 투자로 배관망을 깔고, 이후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받는다. 안정적인 지역 독점 사업 구조다. 그런데 그 핵심 자산을 만드는 과정에서 공공 재원과 주민 부담금이 들어가고, 이후 비용도 요금에 반영한다. 그렇다면 배관으로 발생한 이익은 일부라도 다시 지역사회로 환원돼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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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당성향이 높은 도시가스 공급사업자 현황. [각 사업자 사업보고서 및 감사보고서 분석] |
순이익 2512억 원, 배당 2511억 원
현실은 반대였다. 서울·경기 북동부 일대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코원에너지서비스는 지난해 2512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 이 가운데 2511억 원을 배당했다. 배당성향이 사실상 100%다.
순이익보다 많은 돈을 배당한 곳도 있었다. 영남에너지서비스는 당기순이익 313억 원을 냈지만 배당금은 354억 원이었다. 배당성향 113%다. 전북에너지서비스는 순이익 69억 원에 배당금 85억 원으로 배당성향이 123%였다. 부산도시가스도 순이익 326억 원보다 많은 343억 원을 배당했다. 벌어들인 돈뿐 아니라 쌓아둔 이익잉여금까지 끌어다 배당한 것이다.
강원도시가스도 지난해 순이익 76억원 중 64억원을 배당했다. 배당성향은 84%다. 같은 해 강원도에는 소매공급비용 16.08% 인상을 신청했다. 번 돈 대부분을 주주에게 배당해놓곤 비용이 늘어 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논리였다.
돈은 누가 챙겼나
배당금의 흐름을 따라가면 도시가스 산업의 민낯이 드러난다. 코원에너지서비스, 강원도시가스, 영남에너지서비스, 전북에너지서비스, 부산도시가스는 모두 이엔에스시티가스의 종속기업이다. 이엔에스시티가스는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다. 지배구조를 따라 올라가면 도시가스에서 나온 배당금은 SK그룹 계열 상단으로 모인다. 소액주주는 없다. 지역 주민이 낸 가스요금에서 만들어진 이익은 시장에 넓게 환원되지 않고 지배구조 위쪽으로 집중된다.
SK 계열만의 문제도 아니다. 서울 강남·서초·송파와 경기 일부 지역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예스코는 LS그룹 계열 인베니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예스코의 배당성향은 2023년 122%, 2024년 113%였다. 2년 연속 순이익을 초과해 배당했다.
외국계 자본도 도시가스 수익을 가져간다. 경남 일대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경남에너지는 지난해 순이익 249억 원 중 186억 원을 배당했다. 배당성향은 75%다. 경남에너지의 최상위 지배기업은 케이만제도에 등록된 사모펀드 프로스타캐피탈이다. 프로스타캐피탈은 2017년 경남에너지를 인수했다.
배당이 아니어도 빠져나간다. 주주에게 돈이 흘러가는 방식은 배당만이 아니다. 경주·포항 일대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서라벌도시가스는 지난해 신종자본증권 이익배분으로 49억원을 지출했다. 순이익 64억원의 76%에 해당한다. 신종자본증권은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일반적인 배당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투자자에게 이익이 배분되는 통로다. 서라벌도시가스의 지배구조 상단에는 호주 맥쿼리그룹이 설립한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 MKIF가 있다.
광주의 해양에너지도 같은 방식으로 돈이 빠져나갔다. 해양에너지는 지난해 순이익 189억 원을 냈는데 신종자본증권 이익배분으로 198억 원을 지급했다. 순이익을 초과하는 금액이다. 해양에너지도 MKIF가 지배하는 회사다.
공식 배당으로 빠져나가든, 신종자본증권 이익배분으로 빠져나가든 결과는 같다. 지역 독점 인프라에서 발생한 수익이 지배구조 상단의 자본으로 이동한다.
공공이 깔고, 민간이 가져가는 구조
도시가스 사업은 일반 제조업과 다르다. 지역별 공급권을 기반으로 한 독점적 인프라 사업이다. 배관망 없이는 경쟁이 어렵고, 주민은 특정 사업자를 선택할 수 없다. 이런 산업에서는 공공성이 강하게 작동해야 한다. 특히 배관 설치 과정에 지자체 보조금과 주민 분담금이 들어갔다면, 그 자산에서 발생한 수익의 배분 구조도 공공적 감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구조에서는 비용 부담과 이익 귀속이 분리돼 있다. 배관 설치비는 세금과 주민이 나눠 낸다. 감가상각비와 유지비는 요금에 반영된다. 그리고 순이익은 배당과 이익배분을 통해 대기업 지주사와 외국계 펀드로 흘러간다.
주민은 설치할 때 부담하고, 사용할 때 부담하고, 요금 인상 때 다시 부담한다. 반면 주주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배당으로 회수한다. 홍현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이나 지역사회가 이미 일정 부분 비용을 부담한 자산에 대해 민간 도시가스사들이 지속적으로 수익을 얻는 구조가 형성된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중 부담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도시가스 배관은 땅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배관을 따라 돈은 분명하게 흐르고 있다. 아래로는 주민의 부담이 모이고, 위로는 배당금이 올라간다. 도시가스 요금 고지서에 적히지 않는 또 하나의 비용이다.
KPI뉴스 / 유충현·한상진·배지수 기자 babybu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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