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정권따라 입장 바뀌는 '빚 탕감 공방'

유충현 기자 / 2025-07-09 17:16:19
야당 일때 '도덕적 해이'… 여당 되면 '국가의 역할'
시혜성 정치이벤트 벗어나 제도화된 시스템 마련해야

이재명 정부의 '배드뱅크' 정책이 논란을 부르고 있다.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 원 이하 채무를 탕감하는 것이 골자인데, 찬반이 뜨겁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충청 타운홀미팅에서 "신용불량자가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면 오히려 손실"이라며 "차라리 탕감하는 게 모두에게 좋다"고 말했다.

 

이 정책은 포용성을 지향한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런 애스모글루 MIT 교수도 포용적 제도를 주문했다. 그는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포용적 제도와 수탈적 제도의 차이가 국가 간 번영 격차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강조한 것은 포용성만이 아니다. '제도의 일관성'도 국가 발전의 핵심 요소라고 평가했다. 예외가 반복되면 원칙은 무너진다.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한다는 사회적 신뢰의 규칙이 흔들리면 성실하게 빚을 갚은 이들이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 왜 하필 7년이고 왜 5000만 원 이하인지 기준도 불명확하다. 야당이 반대하는 것도 일리가 있으나 여당일 땐 찬성했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충청에서 듣다, 충청 타운홀 미팅'에서 참석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신뢰 기준'이 정권에 따라,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바뀌는 건 심각한 문제다. 채무탕감은 윤석열 정부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22년 "국가가 취약차주를 안아야 한다"며 '125조 원+α' 규모의 채무지원 프로그램을 꺼냈다. 

 

당시 정책을 총괄했던 경제부총리는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이었다. 지금은 새 정부의 배드뱅크 정책을 가장 강하게 비판하는 인물이다. 여당 시절 국민의힘 의원들은 "일종의 복지정책일 수도 있고 방역정책적 측면, 즉 더 큰 것을 막기 위해 미리 역할을 하는 것"(윤창현 전 의원)이라고 옹호했다. 이렇게 말하는 국민의힘 의원은 이제 없다.

 

더불어민주당도 정권 교체 후 입장을 달리했다. 야당일 땐 윤석열 정부의 채무감면과 관련해 부정적 측면을 부각했다. "공정에 민감한 청년세대가 불공정하다고 비난한다"(소병철 전 의원),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아이디어"(오기형 의원), "도덕적 해이 문제가 논란이 될 수 있다"(황운하 의원, 현 조국혁신당) 등이다. 그러나 여당이 된 민주당 의원들은 배드뱅크를 적극 지지하며 부정적인 측면을 전혀 거론하지 않고 있다. 

 

▲ 서울 시내 한 음식점의 닫힌 문에 납세고지서 안내문과 대출 전단지가 붙어 있다. [뉴시스]

 

채무감면 정책은 역대 정권마다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신용회복기금,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기금, 문재인 정부의 장기소액연체자 지원, 윤석열 정부의 새출발기금 등이다. 이름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비슷했다. 그때마다 여당은 '국가의 역할'을, 야당은 '도덕적 해이'를 내세우며 찬반으로 대립하는 상황이 되풀이됐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엘리트들이 이익을 위해 제도를 자의적으로 조작할 때 국가가 퇴보한다고 경고했다. 정치권의 무원칙과 무일관성이 이 경고를 떠올리게 한다. 

 

전문가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뒤바뀌는 논리가 아니라 일관된 원칙으로 운영할 수 있는 행정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 이벤트성 채무 탕감'에서 벗어나 제도화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이군희 서강대 교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기울일 때다.

 

 

KPI뉴스 / 유충현 기자 babybu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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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충현 /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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