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코치로 스타투수 없이 한화 2위 올려
한화 이글스의 돌풍이 무섭다. 사막에서 예고없이 휘몰아 치는 회오리 바람같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진격이다. 코칭스탭과 선수도 자신들의 변화를 믿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한화를 이토록 변하게 했을까.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 한용덕 감독의 선수들에 대한 믿음. 선수들의 희생과 자신감 회복. 예전에 비해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화 벤치는 매일매일이 잔칫집 분위기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한화 돌풍의 밑바탕은 투수력 변화에 있다. 한화의 팀 평균타율은 리그 하위에 머물고 있다. 그래도 꾿꾿하게 2위를 지키고 있다. 한화에는 걸출한 대형투수가 없다. 지난해에 비해 명성으로 따지자면 훨씬 부족하다. 그럼에도 한화 투수진은 구름에 달 가듯이 잘 흘러가고 있다.
한화 투수진 변화의 중심에는 송진우 코치가 있다. 송진우가 누구인가. 최고령 승리투수. 최고령 선발승 등 수많은 기록을 세웠던 스타플레이어 출신 아닌가. 송진우의 별명은 찔딱이다. 징글징글 맞게 타자들을 괴롭혀서 얻어진 별명이다. 무너질듯 하면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았던 승부사다.
이처럼 화려한 기록의 소유자 송진우에게도 남 모를 아픔이 있다. 송진우의 왼팔은 굽어지지 않는다. 송진우는 왼팔이 굽어지지 않아 장애인 등급을 신청하려 했다. 하지만 생활에 큰 불편이 없어 포기했다.
송진우의 굽은 팔은 세광고 시절부터 무리했던 혹사의 결과물이다. 증평 초등학교 5학년때 야구를 시작한 송진우는 언제나 팀의 에이스였다. 투수만이 아니었다. 공격에서는 4번 타자로 중심에 섰다. 세광고 2학년때는 황금사자기 우승의 주역이었다. 송진우는 결승까지 혼자 완투를 했다며 씩 웃는다. 영광 뒤에는 아픔이 있는 법. 성장기의 무리한 투구는 송진우를 수술대에 오르게 했다. 동국대 2학년 때였다. 뼛조각 제거 수술이었다.
주위에서는 수술을 말렸다. 당시에는 매우 위험한 수술이었다. 선수생활을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할 수 밖에 없었다. 통증이 너무 심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늘이 도운걸까. 수술은 잘됐다. 7개월 쉬고 나니 통증이 없어졌다. 오히려 스피드가 더 좋아졌다. 최고 시속 142Km까지 속도가 나왔다. 당시 최고 스피드 투수로 인정받던 고려대 박동희가 148Km를 던졌던 시절이다.
스피드까지 좋아진 송진우에게는 거칠 게 없었다. 몸 안사리고 마구 던지며 그라운드를 호령했다. 승수가 쌓이고 연봉도 오르고 살 맛이 났다. 그러는 사이 송진우의 왼팔은 무리한 근육 사용으로 조금씩 오그라 들었다. 그래도 팬들의 함성에 피곤한 줄 모르고 계속 던졌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송진우는 장애인 아닌 장애인이 됐다.
송진우는 자신의 굽은 팔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자신의 청춘을 바친 훈장이라고 자부한다. 송진우는 모든 투수들이 자신과 같은 장애는 다 갖고 있다며 직업병으로 가볍게 생각한다.
송진우의 이런 투철한 직업의식은 후배들을 지도하는데 소중한 자산이 됐다. 송진우는 자신의 아픈 경험을 살려 부상선수들 지도에 세심한 신경을 쏟는다. 송진우는 투수지도의 최우선을 컨디션 조절과 부상방지에 두고 있다.
송진우는 부상선수들에게 "서두르지 마라. 조급해 하지 마라. 완전할 때까지 참아라"며 안정시키고 있다. 송진우의 이런 지도 방식은 아픔을 참고 던졌던 과거를 돌아보며 내뱉는 한마디에 짙게 묻어난다.
"수술을 해보니까 아팠을 때보다는 좋아졌지만 정상적인 팔 보다는 못합니다"
송진우의 한마디 한마디는 한화 투수진이 신인과 노장의 조화를 이루며 독수리 날개 짓으로 돌풍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KPI뉴스 / 김병윤 기자 bykim7161@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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