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한 김병기 의원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입장문을 낸 것을 계기로 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 시절에 횡행했던 ’연좌제’라는 용어가 신문지면에 등장했다.
“제 아들이 2014년에 국정원 임용시험에서 탈락한 사건은 당시에 국정원에서 아버지 때문에 탈락한 신판 연좌제라며 직원들 사이에서 회자된 유명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대다수의 직원들이 해도 너무했다고 비난했는데, 한겨레 신문이 저의 이런 아픈 가정사를 의혹 수준에서 보도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 생각합니다.”
김 의원은 국가정보원을 감독하는 국회 정보위의 집권당 간사이다. 김 의원은 입장문에서 “한겨레 신문의 보도 내용은 국정원의 개혁에 저항하는 적폐세력이 강고함을 방증한다”면서 두 가지를 주장했다.
“첫째, 국정원은 어느 기관보다 정밀하게 체력검정, 다단계 면접(신체검사 포함) 등을 거쳐 합격한 사람만 신원조회를 받게 된다. 그런데 최종 면접까지 합격하고서야 받는 국정원 신원조회에서 현직 기무사 장교가 탈락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지 반문하고 싶다.
둘째, 아들은 2017년에 국정원에 합격하였다. 신문 보도대로라면 국정원의 2014년과 2017년의 신원조사 중 하나는 잘못된 것이다. 국정원에 이에 대한 조사를 요청한다.”
국정원 공채는 ‘서류전형→필기평가→체력검정→면접전형 뒤 신원조사’를 거쳐 합격이 확정되는데, 보수 정권의 국정원이 자신에 대한 보복으로 아들을 탈락시켰다는 게 김 의원의 주장이다. 맨 마지막 단계에서 탈락되었으니 김 의원으로서는 그런 피해의식을 가질 법하다.
김병기 의원 아들 국정원 공채 탈락은 신판 연좌제?
김 의원은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에 인사팀장(일반 부처의 계장)으로서 서동만 기조실장이 주도한 국정원 개혁 T/F팀의 일원이었다. 이후 인사처장(일반 부처의 과장)으로 승진했으나, 이명박 정부 출범후 원세훈 원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과거 인사팀장 시절에 김만복 원장의 지시를 받아 수행한 ‘공전자 기록’(국가공공기관의 전자기록) 변조가 문제가 되어 2009년에 해임되었다. 이후 그는 해임처분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해 2014년 승소 판결을 받았다.
기무부대 장교 출신인 김 의원 아들은 아버지가 승소 판결을 받은 해인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연거푸 세 번 국정원 신입공채에 응시해 세 번 떨어졌다. 그런데 2016년 하반기에 시행한 경력공채에 응시해 ‘2년 이상 경력자’로 합격했다. 당시 국정원은 다소 이례적으로 ‘학사 이상 학위 소지자로 전-현직 군 장교, 경찰 공무원 중 정보-수사 분야 업무 2년 이상 경력자’ 공고를 냈고, 김 의원 아들은 기무부대 근무 경력으로 합격한 것이다.
그런데 김 의원은 2016년 총선에 당선되어 초선임에도 국회 정보위 민주당 간사를 맡아 피감기관인 국정원에 자신의 아들이 2014년 첫 응시 당시 국정원 신원조사에서 탈락한 이유를 대라고 요구했다. 김 의원은 자신이 국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아들을 신원조사에서 탈락시켰다고 생각한 것이다. 김 의원은 입장문에서도 그런 점을 분명히 했다.
“제 아들이 2014년에 국정원 임용시험에서 탈락한 사건은 당시에 국정원에서 아버지 때문에 탈락한 신판 연좌제라며 직원들 사이에서 회자된 유명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해 대다수의 직원들이 해도 너무했다고 비난했는데, 한겨레 신문이 이런 아픈 가정사를 의혹 수준에서 보도한 것은 매우 유감이다.”
결국 핵심은 김 의원의 아들이 2014년 국정원 신입공채에서 탈락한 것이 법령으로 규정된 정당한 신원조사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김 의원 주장대로 ‘신판 연좌제’가 적용되었는지를 가리는 것이다. 참고로 범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지게 하고 처벌하는 제도인 ‘연좌제’는 박정희 시대의 유물이다. 제5공화국 헌법부터는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신설해 연좌제를 금지하였다.
국정원 신원조회는 사돈네 8촌까지 다 들여다본다
지난 정부의 원장 재임 기간을 보면 △남재준(13. 3~14. 5) △이병기(14. 7~15. 2) △이병호(15. 3~17. 5) 순이다. 세 사람 모두 특수활동비 전용에 따른 국고 손실 혐의로 감옥에 가 있다. 세 원장의 지시를 받아 예산을 전용한 이헌수 기조실장(13. 4~17. 6)은 국고 손실 방조 혐의로 역시 수감되어 있다. 이 사건을 잘 아는 이병기 원장과 이헌수 기조실장이 수감되어 있어 실체적 진실을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김 의원 아들이 탈락한 것을 두고 “당시에 국정원에서 아버지 때문에 탈락한 신판 연좌제라며 직원들 사이에서 회자된 유명한 사건”이라는 주장은 검증할 수 있다. 복수의 국정원 직원들에 따르면,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정보기관은 보안을 위해 ‘차단의 원칙’이 적용된다. 다른 부서에서 하는 일은 알 수가 없다. 더욱이 2014년 김 의원은 의원 신분이 아닌 일반인이었다. 직원 대부분이 그의 아들이 국정원에 응시한 사실 자체를 모르는데 낙방한 것이 회자될 리는 더더욱 없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국가정보기관’이다. 국군 기무사와 정보사, 그리고 경찰청 보안국은 국정원의 기획·조정 및 정보예산의 감독을 받는 ‘부문정보기관’이다. 대공·방첩 및 대테러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은 북한 간첩과 외국 스파이의 침투를 막기 위해 엄격한 신원조사를 거쳐 직원을 뽑는다. 특히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은 국가안보와 직결된 기관이기 때문에 신원조사가 가장 엄격하다. 친가와 외가는 물론, 기혼자일 경우 처가까지, 한 마디로 사돈네 8촌까지 다 들여다보기 때문에 일반 공무원보다 신원조사 탈락률이 높다.
김 의원의 아들은 기무부대에 근무했기 때문에 국정원은 부문정보기관인 기무사에 신원조사를 물론 평판 조회까지 시행했다. 지난해 대령으로 전역한 기무사 출신 C씨는 11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김병기 의원 아들이 기무부대 근무 평점이 안좋고 사생활에도 문제가 있어 평판 조회에서 낙제점을 받은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을 지낸 B씨도 김 의원 아들이 신원조사에서 사생활 문제가 제기되어 정당한 심사를 거쳐 탈락되었는데, 김 의원이 ‘채용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내용을 인사기록에 남겨 달라’며 여러 차례 시정을 요구해 이헌수 기조실장이 힘들어했다고 밝혔다. B씨는 사생활 문제로 탈락했기 때문에 이헌수 실장이나 국정원측도 김 의원에게 사실대로 탈락 사유를 말하지 못한 것으로 들었다고 덧붙였다.
국정원, 전용 검색 단말기 60여대로 연간 100만 건 신원조회
정부의 각 부처는 국회에서 만든 ‘정부조직법’에 따라 만들어지고 기능을 부여 받는다. 정부조직법에 보안업무를 주임무로 하는 행정기관은 없다.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정원은 정부조직법에 따라 만들어진 정부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의 보안조사권도 법률에 의해 부여된 권한이 아니다. 간첩 침투를 막는다는 구실로 대통령령(令)으로 만든 ‘보안업무 조정권’을 중앙정보부에 넘김으로써 비롯된 것이다.
중앙정보부의 보안업무 수행에 필요한 사항을 정한 ‘보안업무규정’은 군사정권 시절인 1964년에 제정된 것이다. 몇 차례 개정을 거친 현행 ‘보안업무규정’(시행 2017. 7. 26, 대통령령 제28211호)에 따르면, 국정원장은 비밀보호, 신원조사, 보안조사 업무를 수행한다.
신원조사(제33조) 규정을 보면, 국가정보원장은 국가보안을 위하여 국가에 대한 ‘충성심·성실성 및 신뢰성’을 조사하기 위하여 신원조사를 한다고 돼 있다. 신원조사의 대상은 △공무원 임용 예정자 △비밀취급 인가 예정자 △여권법에 따른 여권이나 선원법에 따른 선원수첩 등 신분증서 또는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사증(査證) 등을 발급받으려는 사람(입국하는 교포 포함) △국가보안시설·보호장비를 관리하는 기관의 장(해당 국가보안시설의 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소속 직원 포함) △임명시 정부의 승인이나 동의가 필요한 공공기관의 임직원 △그밖에 다른 법령에서 정하는 사람이나 각급기관의 장이 국가보안상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이다.
모든 해외여행자와 입국 해외교포까지 신원조사 대상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전국민이 국정원 신원조사의 대상이다. 보안업무규정에 의거해 국정원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조사해 여권이나 선원수첩 발급을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정보부 시절에 연좌제가 있을 때는 검사나 판사들도 해외연수를 나가려면 정보부의 눈치를 봐야 했다. 해외여행을 하려는 자가 여권을 발급받으려면 당시 외무부가 중앙정보부에 의뢰한 신원조회를 거쳐야 하는데, 신원조회 서류에 정보부 대공수사국 보안과의 ‘중-통’(중앙정보부 통보) 불가(不可) 빨간도장이 찍히면 여권을 발급 받을 수가 없었다.
연좌제는 폐지되었지만 국정원은 여전히 신원조사를 담당한다. 국정원은 현재 국가 안보 관련 수사와 신원조사 등을 위해 전용 검색 단말기 60여대를 통해 법무부 출입국기록, 경찰청 수배-범죄경력-공안사범 자료를 조회하고 있다.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신원조회 장비 보유 및 최근 3년간(2013~2015년) 조회현황’(대외비)에 따르면, 3년간 신원조사를 위한 조회 건수는 무려 2,888,521건이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국정원의 신원조사 전용 검색 단말기를 통해서 연평균 100만 건 정도 조회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은 또한 국가안보 관련 수사뿐만 아니라 및 공직자 재산등록-심사 등의 목적으로 전자정부법의 ‘행정정보공유’ 제도에 따라 안전행정부 통합전산망을 통해서 주민등록 등초본, 토지등기사항증명서 등 12종의 행정정보를 열람-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국정원은 국가안보수사 목적으로 해마다 평균 2만건에 가까운 행정정보(주민등록 등초본)를 열람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국정원이 2015년 10월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국가안보수사 목적의 주민등록 등초본 열람 현황’(대외비)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열람-이용 건수는 △2011년 19,705건 △2012년 18,646건 △2013년 18,691건 △2014년 19,430건이었다.
2015년 법원 경력 판사 신원조사 때 사상검증 의혹 불거지기도
2015년 5월에는 법원에서 뽑는 경력 판사 지원자들을 국가정보원이 비밀리에 접촉해서 사실상 면접을 벌여 온 사실이 SBS에 보도돼 논란이 일었다. 더욱이 면접에서 세월호 사건과 노사관계 같은 민감한 사회현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기도 해, 법조계는 삼권분립에 어긋날 뿐 아니라 사상 검증을 하려 한 것 아니냐며 강력히 반발했다.
국정원은 규정이 있으니 문제될 것 없다는 반응이지만, 군사정권 시절에 제정된 보안업무규정의 신원조사는 목적이 불명확하고, 대상은 너무 광범위하다. 즉, 한 개인의 충성심과 신뢰성을 조사하는 기준이 뭔지도 불명확하고, 사실상 전국민을 대상으로 신원조사를 하도록 한 점에서 광범위하다. 국정원의 자의적 신원조사와 대상자에 대한 사생활 침해, 그리고 사찰 우려까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설령 신원조사가 국가 보안을 위해 필요하더라도 그 대상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김병기 의원은 자신에 대한 ‘갑질’ 의혹이 불거지자 입장문을 내고 “국정원의 2014년과 2017년(합격 당시)의 신원조사 중 하나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정원에 이에 대한 조사를 공개 요청했다. 국정원을 감독하는 정보위의 집권당 간사로서 그가 할 일은 자신의 아들을 콕 집어 신원조사에서 탈락한 사유를 대라고 할 것이 아니라, 국정원의 전용 검색 단말기를 통해 연평균 100만 건이나 조회 당하는 일반 국민의 사생활을 보호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KPI뉴스 / 김당 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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