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조애리, 한국 현대미술 '혁신의 아이콘' 되다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 2023-09-27 15:11:08

2012년 어느 날, 세계의 심장으로 불리는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 광장이 일순간 ‘흑백 숲’으로 바뀌었다. 광장 일대 7개 블록 50여 개의 스크린에 펼쳐진 나무숲은 인류 문명이기의 최첨단을 달리는 한 도시를 잔잔히 흔들어 놓았다. 이 작품은 한국 작가 조애리(Elly Cho)가 선보인 ‘시각의/적 운동학-미술의 상태(Visual Kinematics: A State of Art)’ 시리즈 중 하나다. 아마도 디지털 아트(비디오) 분야에서 한국 현대미술 작가로서 백남준 이후 세계인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끈 순간이었을 것이다.

 

▲ 조애리 작가(Elly Cho), [Sims Green@SayArt.net(세이아트) 제공]

 

‘디지털 혹은 비주얼아티스트 조애리'로 불리지만 그를 부르는 또 다른 호칭이 있다. 그는 지난 5월 한국 감독으론 처음으로 프랑스 칸 예술영화제(AVIFF)에 초청받아 자신의 영화 ‘일식, 소리가 알린다’를 무대에 올렸다. 그렇게 그는 국제적인 영화감독이 됐다.

 

하지만 이런 여러 거창한 수식어는 사실 세상이 그에게 덧씌워놓은 가면에 불과하다. 그는 “저는 화가예요. 그저 제가 하던 일을 다양한 방식으로 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최근 현대미술의 새로운 사조로 불릴만한 ‘오토매틱 드로잉(Automatic-Drawing)’을 실험대에 올리고 있는 조 작가의 혁신적인 예술세계를 들어봤다.

조 작가의 말처럼 그의 예술 바탕은 단연 드로잉이나 페인팅이다. 작가는 엄마 무릎 위 응석 부릴 5살 무렵부터 무턱대고 그림을 그렸고 그 자체가 좋았다고 한다. 낙서라 불릴지 몰라도 이런 드로잉들은 어린 화가에겐 나름 예술혼 발현이자 여행이었다. 

 

“당시 제가 하는 행동 중에 제일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예술가가 될 거라고 부모님께 얘기했죠. 사실 다른 건 모두 싫었어요.” 집안 자체도 예술에 홀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보석 관련 사업가이자 골동품 수집가였던 부친과 환경디자인을 전공한 어머니는 늘 애정 어린 눈으로 어린 화가의 놀이를 지켜봤다. 

 

부친이 사업을 벌이던 제주도에 자주 따라나선 것도 자연의 신비를 경험하고 유대감을 쌓을 좋은 기회였다. 뮤지엄 만큼이나 집안을 그득 채운 미술품들은 종일 어린 화가의 감각을 일깨우고 훈수했다. “어릴 때도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미술 외에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조 작가는 스스로 ‘아트홀릭(Art-holic)’이라고 했다. 

 

▲ 조애리(Elly Cho) 작품, Evolving No.4, Acrylic on canvas, 74x92cm, 2023 [작가 제공]

 

조 작가는 영국과 미국 등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당시 그는 영국과 독일에서 동시에 전시회를 열며 글로벌 미술계에 첫발을 디뎠다. 이로 인해 그는 유럽 유수의 예술 관련 단체에서 다양한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잡지에서 본 기사에 홀려 이탈리아로 향했다. 당시 그곳에서 그는 예일대학교 파인아트 교수가 진행하던 ‘썸머스쿨’에서 또 다른 미술공부를 할 수 있었다.

 

로마 북쪽 도시의 풍광은 그를 휘감았다. 당시 그곳에서 마주친 언덕과 밭은 잠자던 예술 본능을 요동치게 했다. 매일 쉬지 않고 풍경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 가운데 밭과 언덕이 만나는 선에 그는 주목했다. “대상을 선과 면을 중심으로 보다 보니 자연스레 추상화로 흘러갔다”는 얘기다. 매와 같은 눈으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쌓아둔 당시 기억은 현재 그의 독특한 추상화 토대가 됐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을 모두 ‘추상화’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오히려 구상과 추상이 병존하는 ‘그 무엇’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 조애리(Elly Cho) 작품. Echo 2, Acrylic on canvas, 120x93cm [작가 제공]

 

예술사에서 특별한 발상은 언제나 천재의 몫이다. 그는 언제부턴가 사진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진 위에 그려진 그의 유화는 완벽한 재현물인 ‘사진의 픽셀’을 일순간 해체한다. 그는 상징하는 대상물에 그려 넣고 선을 반복해 그린다. 이런 과정은 본질을 따르는 또 다른 차원의 추상화로 거듭난다. 조 작가는 “이런 선과 상징물 간의 상호작용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런 추상 이미지는 새로운 메시지가 돼 관객을 유혹한다. 특히 캔버스를 메아리치는 가늘고 굵은 선들의 움직임은 한국의 전통 춤사위 같다. 어느 순간 선들은 대상을 중심으로 국악의 ‘자진모리’ 장단처럼 가쁘게 휘몰아치더니 서로 엉키다가 응집된 에너지는 한순간 용트림처럼 메아리친다. 이 순간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다. 관객의 세포는 깨어나고 작품과 일체가 돼 하나인지 둘인지 모를 무아를 경험하게 한다. 

 

▲ 조애리(Elly Cho), Undulating No.1, 2023, Acrylic on canvas , 260 x130cm [작가 제공]

 

그는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말년에 그렸던 ‘수련 연작’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현대미술사에 있어 추상화의 시초로 불리기도 한다. ‘수련드로잉’은 수련과 연못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는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정확하게 무엇을 그린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조 작가의 그림도 사실 모네처럼 구체적 구상을 파악하기 힘든 구석이 있다. 또 모네처럼 강렬한 색채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엔 모네와 다른 ‘또 다른 무엇’이 도도히 흐른다.

조 작가는 자신의 예술 범주를 한정하지 않는다. 영화나 디지털 아트도 그에겐 어차피 똑같은 예술의 발현이다. 이런 다양한 변화는 삶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됐다. 그는 정체기를 맞으면 스스로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예술의 길을 열었다. 드로잉, 페인팅, 무비, 일렉트로닉아트, 비디오아트, 미디어아트, 영화, 퍼포먼스 등과 같은 그가 시도하는 여러 장르도 그런 면에서 그에겐 그저 같은 예술의 선상이다.

방식은 달라도 그는 줄곧 한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갑작스러운 동생의 죽음이나 가족 같던 강아지의 납치로 겪은 그의 고통스러운 개인사가 그녀의 심연에 새긴 외침이다. “모두가 하나야! 서로 보호해야 해”라는 범우주적 감정이다.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서 보여준 숲의 향연도 이런 그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그가 최근 기후 변화와 같이 자연 생태계를 위협하는 것에 대한 메시지를 작품에 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조애리(Elly Cho), Ethereal No.1, 2, acrylic and oil on wood board ,120cm diameter , 2023 [작가 제공]

 

다양한 방식이라도 그의 모든 예술혼은 손끝에서 시작한다. 드로잉이다. 머릿속 생각을 드로잉으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드로잉과 페인팅은 모든 예술 활동의 기본이죠. 저는 드로잉을 할 때 이 작품이 어디로 갈지 확고한 생각이 떠올라요. 드로잉은 때론 그림이 되기도 하고 때론 퍼포먼스가 되죠. 더러는 비디오아트나 영화로 탄생하기도 해요.” 말하자면 그에게 드로잉은 ‘잉태’이고 나머지 과정은 ‘출산이나 성장’에 해당하는 셈이다.

최근 조 작가는 또 다른 혁신에 나섰다. ‘오토매틱 드로잉’이다. 그는 인공지능(AI)의 능력을 작품 제작에 활용한다. 그렇다고 섣부른 상상이나 예단은 금물이다. 대개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해 뭐든 해낼 거라고 이해하거나 오해한다. 자율주행차라는 말은 평상어가 됐고 더러 외신 보도에 나오는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 작곡을 하는 인공지능은 화젯거리도 아니다. 이 때문에 예술 범주조차 인공지능에 내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그의 ‘오토매틱 드로잉’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는 철저히 인공지능의 제한적인 능력을 ‘미술 방법론’에 혁신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20세기 실험주의 현대 미술가들이 펼친 혁신적인 사고나 행동처럼 그의 실험은 전통적이거나 일반적인 사고의 범주를 넘어서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이런 실험을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에 관련한 자신의 작품에 적용했다. 

 

구체적 방식은 이렇다. 작가는 기후 변화나 환경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를 인공지능에 제공하고 인공지능은 이런 인풋을 바탕으로 변화할 수 있는 환경상태를 이미지로 출력한다. 물론 모든 반복되는 과정과 결과물은 조 작가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부차적인 산술적 수행만을 인공지능이 하는 것이다. 막바지에 다다르면 작가는 이런 모든 이미지를 캔버스 위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직접 그려낸다. 애초 나무였던 것이 나중엔 무엇인지 모를 추상 오브제로 변하는 이유다. 

 

복잡한 프로세스처럼 보이지만 그의 손을 거친 최종 결과물은 언뜻 ‘낙서’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발적으로 보이는 이 작품은 그가 꼼꼼히 계획을 세워 연출한 창조물이다. 묘한 것은 관객이 작품을 응시하고 있으면 ‘낙서’처럼 보이던 그림 속에서 어느 순간 ‘무질서 속의 질서’를 만나게 된다. 이런 찰나는 관객의 숨을 멈추게 하고 때론 질식과 같은 황홀경을 느끼게 한다. 그의 작품은 그렇게 초견과 다르게 시간이 지나며 강한 중독성을 발휘하는 것이 특징이다.  

▲ 조애리(Elly Cho), Echo 2, Acrylic on canvas, 120x93cm [작가 제공]

 

이런 그의 혁신적인 예술 행위도 그저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건 아니다. 그는 2018년 인공지능 관련 MIT 자격증을 취득하며 ‘오토매틱 드로잉’을 철저히 준비했다. 조 작가의 작품 방식을 보면 사람의 선택에 따라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는 오히려 기우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가 현재 시도하는 이런 혁신적인 방법론은 언젠가 세계 미술사의 새로운 장르나 방법론의 기초나 장르로 기록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을 계획한다. 계획하는 것 자체가 좋다. 목표를 위해서다. 목표가 정해지면 쉬지 않고 달린다. 때론 비현실적으로 많은 계획을 세워서 문제다. 그러다 보니 작품에 몰두하면 화장실 가는 것이나 먹는 것 같은 생리적 현상도 잊는다. 몸을 망친다고 주변에서 걱정하지만 이것이 나의 삶이고 운명이다.”

조애리 작가의 개인전은 10월8~11월8일까지 서울 인사동 관훈갤러리에서 진행된다. 전시 타이틀은 ‘초월의 메아리’다. 그의 50여 작품이 한곳에 모인다. 그의 예술 여정은 언제나 초월적 메시지나 방법론이 메아리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개인전은 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좋은 기회다.

개인전을 준비하는 조 작가는 런던의 슬레드스쿨(Slade School of Fine Art)에서 BA 및 MFA를, 콜럼비아대학(Columbia University)에서 미술 교육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또 그는 티씨 콜럼비아대학(TC, Columbia University)에서 공로 메달을, 런던 써니아트상 (Sunny Art Prize), 칸 세계 예술영화제와 베를린 단편 영화제에서 최우수 실험 영화상, 뉴욕 국제 영화제에서 최우수 안무 영화상, 무성 영화상, 실험 영화상, 감독상, 파리 Beyond the Curve 영화제에서 최우수 댄스 영화상과 감독상, 그리고 베를린 ARFF영화제에서 최우수 실험 영화상 등을 받으며 국제적인 명성을 갖춘 아티스트로 떠올랐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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