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저작권, 인공지능 디스토피아 막을 보검일까

KPI뉴스 / 2025-07-31 14:37:26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직업군(群) 가운데 예술가는 늘 마지막 줄에 들어갔다. 흔히 정형화되고 반복적인 지식 노동을 AI 실업의 1번 주자로 꼽곤 했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금융 분석가 등 고소득 화이트칼라들은 공포에 떨었다.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의 분석 업무를 대신하는 세계 최초의 금융 AI 벤처 '켄쇼'를 뉴욕타임스 기자가 2016년 취재하고 작성한 기사는 당대에 화제가 됐다.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두 스타 교수 앤드루 맥아피와 에릭 브린욜프슨이 베스트셀러 '기계와의 경쟁', '제2의 기계 시대'를 쓰던 2010년대 초만 해도 그랬다.

무슨 직업이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논쟁에서 인간의 창의성이 요구되는 문화예술 분야야말로 최후의 보루라고 너도나도 입을 모았다. 그런데 2022년 챗GPT가 생성형 AI 시대를 열었다. 졸지에 글, 그림, 음악이 기계의 생산품이 됐다. 재미삼아 AI로 시를 쓰고, 상상화를 그리고, 짧은 테마송을 작곡하던 사람들이 이윽고 프로페셔널 예술가에게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헐리웃 작가와 배우 노동조합이 AI 스크립트와 AI 영상으로 싸게 영화를 만들려던 제작자협회에 항의해 수개월간 파업을 벌였다. 바야흐로 예술로 먹고살던 직업 창작자들의 수난 시대가 열린 것이다. 

 

▲ 저작권, 인공지능 관련 이미지 [챗GPT 생성]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의원이 주최하고 범창작자정책협의체와 한국방송협회가 공동 주관한 'AI 시대, 창작산업계 권리자 보호와 산업 발전의 조화 방안: AI와 창작산업계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의 정책 세미나가 열렸다. 음악저작권협회, 음악실연자연합회, 음반산업협회, 연예제작자협회, 방송실연자권리협회, 방송작가협회, 사진작가협회, 미술협회, 영화감독조합, 안무저작권협회, 디지털콘텐츠창작자협회 등 다양한 창작 분야의 이해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국회 이학영 부의장, 김교흥 문화체육관광위원장도 현장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이날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AI 시대 인간 창작의 보호 필요성과 수단'이란 발표를 통해 텍스트데이터마이닝(TDM) 면책조항을 담은 저작권법 개정안과 공정이용(fair use) 법리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TDM은 AI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인터넷에서 타인의 저작물을 수집(crawling)하는 행위이다. 이를 AI 학습의 필수 과정으로 인정해 저작권 침해 책임에서 빼주자는 게 현재 국회에 계류된 저작권법 개정안의 골자다. TDM 면책은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의 산업진흥에 초점을 둔 정책이다. 반면, 창작자들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저작권을 포기해야 해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공정이용은 최근 미국 법원이 개인의 저작권보다 공중(public)의 콘텐츠 향유(享有) 권리를 중시해 빅테크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림으로써 부각된 영미법계의 논리다.

남 교수는 탁란종(托卵種)인 뱁새와 뻐꾸기의 예를 들며 "어미 뱁새가 품어 부화하고 정성스레 먹여 키운 뻐꾸기가 어미 뱁새의 다음 세대인 알과 새끼를 죽여도 어미 새는 그 일을 반복한다"며 "인간(저자)의 희생을 통해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갖게 된 인공지능이 미래세대 인류의 위협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에 인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탁란종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라고 비유를 들었다. 그는 결론에서 "정부가 AI 산업계의 일방적 목소리만 듣고 있다"며, 지나 네프 캠브리지대 기술·민주주의 센터장이 남긴 '문제의 해결책은 기술적일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기도 해야 한다'는 주장을 인용했다. 남 교수는 "저작권은 인공지능 시대가 가져올 디스토피아를 막아내는 뜻밖의 보검일 수 있다"며 "빅테크 집중 현상을 방지하는 인류 희망의 출구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최승재 세종대 교수는 '인공지능과 저작권'이란 제목으로 빅테크에게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 사용내역을 공개시키자고 주장했다. 특허법학회, 과학기술법학회 부회장인 최 교수는 최근 유행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지브리풍(風) 사진 변환의 경우 스타일을 모방한 것으로 저작권법상 처벌이 어렵지만, 한국에서는 부정경쟁방지법으로 규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오픈AI 챗GPT가 미국 여자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를 본떴다는 의혹에 대해 "분명히 쓰지 말라고 했는데도 이걸 학습해서 썼다면 퍼블리시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이어 미국 오픈AI 대 뉴욕타임스, 스태빌리티 AI 대 게티이미지 등 소송 사례를 들면서 AI의 무단 학습에 대한 중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결론으로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이 강한 글로벌 경쟁력을 보여주며 차세대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다"며 "콘텐츠 강국이 되려면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저작물들이 무가치하게 보이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산업진흥과 저작권 보호의 균형을 정부가 잘 잡도록 권유했다. 싱가포르는 '합법적 접근'이란 원칙을 세워 불법 취득한 자료를 인공지능 학습에 이용하는 행위는 TDM 면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최 교수는 콘텐츠 강국과 저작권 보호 선진국의 양대 목표를 달성하려면 인공지능 학습자료를 공개토록 해야 한다고 말을 맺었다.

마지막 패널토론에서 최진훈 MBC 법무팀장은 "저작권 보호를 도외시한 AI의 발전은 인간의 창작을 위축시키고, 저작권과 관련된 산업 자체가 붕괴될 우려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며 "이윤을 추구하는 거대 사기업의 선의에만 미래의 인류문화를 온전히 맡긴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악보 생성형 AI '주스'의 김준호 대표는 "산업계는 더 이상 프리 라이더가 되지 말아야 한다"며 "상생을 위한 핵심가치는 합법적·합리적 이용"이라고 역설했다. 김 대표는 "이제 성능이 아니라 책임을 설계해야 할 때"라며 "중소 창작자 보호 장치가 내재화된 입법이 이뤄져야한다"고 말했다. 이윤정 영화감독은 "창작자가 규칙설계의 주체로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며 "개별 창작자가 아니라 집단적 권리행사를 위한 협의체, 즉 신탁단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감독은 "신탁업체 정책도 과거의 통제·관리·축소 지향에서 지원·확대·자립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정책 세미나는 창작산업계에 속한 창작자단체와 기업, 정책 당국자 등이 현행 법제도의 문제를 투명하게 직시하고 함께 해결해나갈 지혜로운 합의의 가능성을 탐색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리고 정치권도 급속한 AI 보급의 부작용 중 하나인 저작권 침해에 대해 현실적 논의 장을 발 빠르게 마련해줘 박수를 받을 만하다. 모쪼록 한국이 제조업 강국에 이어 창작 콘텐츠 강국으로 우뚝 설 때까지 이런 고민과 노력이 거듭되길 바란다.
 
▲ 노성열 논설위원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5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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