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만에 입법 문턱까지 온 '실손청구 간소화'…민주당·의료계 반대에 좌초하나

황현욱 / 2023-09-14 15:56:32
국회 법사위, 13일 '실손청구 간소화법' 계류…18일 재논의
"보험사, 정보 축적해 이익 낼 수 있어" VS "정보 오남용 가능성 없어"
전문가 "개정안으로 소비자는 손쉽게 보험금 청구 가능" 법 통과 촉구

14년 만에 국회 정무위원회를 넘은, 실손의료보험금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실손청구 간소화법)'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법사위 의원들은 추가 논의를 진행해 최종 결정하겠다고 주장했지만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의료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좌초 위기다. 

14일 국회와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국회 법사위는 전일 전체회의를 열고 '실손청구 간소화법' 법안을 일단 계류시키기로 했다.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법사위 전체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이날 회의에서 박 의원은 "의료법 제21조2항과 약사법 제30조3항에서 의료 관련 정보를 열람·제공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정안은 단순히 '의료법·약사법에도 불구하고'라는 문구만 있어 법의 취지가 충돌할 여지가 있다"며 2소위로 보내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등 강하게 반대했다.

박 의원은 또 "보험사들이 전자적으로 가공된 정보를 많이 축적하고, 이를 이용해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정보가 제대로 보호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이 말하는 의료법 제21조2항과 약사법 제30조3항에는 의사·약사가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환자에 대한 진료 기록 혹은 조제기록부를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을 내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미 유사 입법례도 존재한다"며 박 의원 주장에 반대 의견을 표했다. 그는 "정신건강복지법에도 예외 조항이 있으며 보건복지부의 '진료기록 열람 및 사본 발급 업무 지침'에서도 타법 규정에서 의료법 제21조를 적용 배제하는 경우를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법을 우선 적용하지 않는다는 법제처 해당 사례도 있고, 보건복지부와 법사위 수석전문위원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실무 담당자인 신진창 금융위 금융산업국장은 "이 개정안은 그간 환자가 종이로 내던 서류를 전자적으로 전송할 권리를 환자에게 주고, 병원과 약국은 환자 요구에 응해야 할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라면서 "환자는 자기가 직접 종이 서류를 보험사에 내도 되고 병원에 전자로 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현재와 달라지는 것은 병원과 약국이 환자 요구에 응해야할 의무가 생기는 것뿐이라는 설명이다. 

신 국장은 "의료계는 정보 오남용하거나 잘못 쓰일까봐 우려하는데, 환자 실손보험 청구내역을 전자로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며 "비밀누설 조항으로 오남용을 막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전체적으로 이 법이 통과하는 것은 법적 문제도 없고 현실적 문제도 없으며 지난 14년간 논의됐고, 정무위가 합의해서 의결한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실손청구 간소화법은 보험 계약자가 병·의원 등 의료기관을 이용 후 실손보험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전송대행기관(중계기관)을 통해 보험사에 제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이 시행될 경우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는 종이 서류를 챙겨 사진을 찍어 앱을 통해 전송하거나, 팩스를 이용해 보험사에 보내야 하는 불편이 줄어든다.

 

▲중계기관 방식의 청구전산시스템 운영 단계. [보험연구원 제공]

 

또한 정보 오남용 우려를 방지하기 위해 중계기관이 환자의 진료 정보를 보험사 전송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보관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이 법은 여야의 대선 공통 공약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해 정책대안 공모를 냈고 '실손보험 간소화'가 우선 정책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대선후보 시절 금융 공약 1호로 '디지털 대전환'을 내세우며 '실손보험 간소화'를 약속했다. 당시 이 대표는 "실손보험 청구 포기의 원인이 체계의 불합리성"이라면서 "종이 서류의 발급과 행정 처리는 병원과 보험사 모두에게 불편과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손보험은 지난해 말 기준 3997만 명이 가입해 '제2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린다. 금융소비자들은 보험금 청구 절차의 간소화를 원한다. 

 

지난해 보험연구원이 실시한 '2022 보험소비자 행태조사'에서도 소비자의 57.1%는 보험금 청구·지급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편리하고 다양한 보험금 신청·접수 방법'을 꼽고 있다.

 

▲실손보험금 미청구 금액 추이. [그래픽=황현욱 기자]

 

실손보험금 청구 절차가 번거롭다 보니 받아야 하는 보험금이 소액이면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이에 따라 '휴면 실손보험금'은 해마다 증가세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2021년과 지난해에 청구되지 않은 실손보험금은 각각 2559억 원과 2512억 원에 달했으며, 올해에는 3211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윤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금 실손보험금 청구가 종이로 이뤄지면서 축구장 크기만큼의 사무실에 종이 서류가 모여있는 상황"이라면서 "전산화로 청구한다고 정보를 오남용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윤 의원은 "중계기관이 정보를 전달하는 식으로만 하고 정보를 오남용하지 말라는 게 개정안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회에서 민주당(169석)이 다수당이라 민주당에서 반대하면 법이 통과되기 어렵다. 

 

의료계와 일부 시민단체에서도 반대의사를 표하고 있다. 의료계는 환자의 진료 정보가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반발한다. 더 나아가 보험사가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고액 보험료 지급을 거부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참여연대는 전일 '법사위는 의료민영화 발판 되는 보험업법 개정안 처리를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민간보험사의 숙원사업이던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가 이뤄진다면 보험사들은 전자 형태로 집적된 정보를 상업적으로 활용해 환자를 골라내고, 다른 한 편 자신의 사업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보험상품을 개발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보험 가입 거절, 보험료 상승, 보험금 지급 거부 등의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윤 의원은 의료민영화의 발판이라는 주장에 대해 "전혀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간 종이로 내는 정보를 온라인으로 제출하는 것뿐이라며 의료민영화 운운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다"고 밝혔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도 "일부 시민단체에서 실손청구 간소화법이 의료민영화의 출발이라고 말을 하는데, 의료민영화와 어떤면에서 연관이 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안이라는 것은 소비자가 편한 상황에서 하나씩 개선해나가는 게 바람직하고, 소비자 편의성 제고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도 "모든 법안은 국민의 편익에 도움이 되는게 우선"이라면서 "실손청구 간소화가 되면 편익이 국민들에게 돌아온다"고 말했다. 이어 "실손청구 간소화는 지난 14년간 의료계의 반대로 진척이 안 됐다"며 "이번이야말로 통과할 기회"라고 강조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도 "종이로 받던, 데이터로 전송받던 보험사는 결국 받는 정보가 똑같은데 의료 정보를 왜 보험사가 활용할 거란 얘기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해 했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도 "실손청구 간소화 법안이 통과되면, 기존에 안 들어왔던 청구 건이 들어오면서 오히려 보험금 지출이 늘어날 거"이라고 진단했다. 실손청구 간소화가 보험사에 이익이란 얘기는 근거없다는 주장이다.

 

KPI뉴스 / 황현욱 기자 wook9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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