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겨울을 건너가는 따스한 선물 같은 소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3-12-08 17:53:32
새 소설 '겨울을 지나가다' 펴낸 소설가 조해진
죽은 엄마 부재 견디는 딸의 힘든 애도와 사랑
동지, 대한, 우수 거치는 과정에 따스하게 담아
"부재하면서 존재하는 것을 이번 겨울 배웠다"

바야흐로 밤이 가장 어둡고 긴 동지가 목전이다. 캄캄한 절기를 지나면 혹독한 추위가 맹위를 떨칠 테고, 묵묵히 고개를 묻고 견디다 보면 입춘을 지나 푸른 싹이 빛을 보이는 때가 오기는 올 것이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이 계절을 이번에는 어떻게 지나갈까. 조해진 소설 '겨울을 지나가다'(작가정신)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이들에게 건네는 따스한 선물이다. 

 

▲혹독한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을 온기로 드러낸 소설가 조해진. [작가정신 제공]

 

투병중이던 엄마가 떠났다, '나 이제 그만 하고 싶어'라는 말을 남기고. 정연은 하던 일을 접고 시골로 내려와 간병를 하다가 엄마를 보냈다. 엄마의 부재를 어떻게 견뎌야 할까. 정연의 애도 방식은 그냥 그 부재를 극복하지 않고 껴안는 것이었다. 엄마가 입던 옷을 태우는 대신 자신이 입고, 술을 마시다 졸리면 겨우 자고, 깨면 다시 마시고, 슬퍼할 때까지 슬퍼하다가 조금씩 정신을 차린 경우다. 소설은 '동지(冬至)' '대한(大寒)' '우수(雨水)' 3부로 전개되거니와, 긴 겨울로 진입해 혹독한 추위를 거쳐 봄에 이르는 과정이 정연의 애도와 희미한 사랑으로 이어진다.

-한 사람의 부재로 쌓여가는 마음이 집이 된다면 그 집의 내부는 너무도 많은 방과 복잡한 복도와 수많은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리라. 수납공간마다 물건들이 가득하고 물건들 사이 거울은 폐허의 땅을 형상화한 것 같은 먼지로 얼룩진 곳, 암담하도록 캄캄한 곳과 폭력적일 만큼 환한 곳이 섞여 있고 창 밖의 풍경엔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는 그런 집…….

엄마가 떠난 마음의 집은 폐허처럼 버려진 공간일 수밖에 없다. 그 집을 차츰 어떻게 정리하고 다시 사람 사는 공간으로 만들어갈 것인지, 그 과정은 제대로 애도를 완성하고 삶으로 복귀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정연은 엄마가 운영하던 칼국수집에서 남은 반죽과 육수로 엄마의 솜씨를 흉내내본다.

그렇게 만든 칼국수를 목공소 '숨'을 운영하는 영준에게 나누어 준다. 영준 또한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아픔을 겪고 공간을 바꿔 안개가 외계의 신호처럼 깔리곤 하는 J읍에 정착한 경우다. 영준은 정연 엄마에게서, 암 투병중에도 누군가에게 따스한 칼국수를 만들어 먹이던 그녀에게서, 온기를 받았다. 죽은 엄마를 대신해 정연이 힘겹게 일어나 동지와 대한을 거쳐 우수(雨水)의 '빛'을 찾으려 한다.

'빛'과 '숨'은 조해진 소설의 상징적인 키워드라 할 만하다. 세 번째, 네 번째 소설집 표제가 각각 '빛의 호위' '환한 숨'이었다. 빛에서 숨으로 이어지는, 어둠 속 고통을 헤쳐나가는 여정의 이정표들이었다.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서로 빛이 되고, 그 빛이 모두의 '숨'으로 이어지고 섞이기를 희원하는 작가의 바람이다. 이번 소설에서 '숨'은 거창한 의미로 확장하지 않는 대신 영준이 좋아하는 목공의 소재인 나무의 물성과 연관된다. 그 숨은 우수라는 절기에 이르러 빛과 만난다. 정연과 영준은 그렇게 서로에게 빛이 되는 과정을 향해 미약하지만 은근한 온기로 나아간다.

-존재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 사라진 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녹은 눈과 얼음은 기화하여 구름의 일부로 소급될 것이고 구름은 다시 비로 내려雨水 부지런히 순환하는 지구라는 거대한 기차에 도달할 터였다. 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 이번 겨울에 나는 그것을 배웠다.

 

조해진 소설에서 '죽음'은 늘 따라다니는 배경이었다. 그는 죽음이라는 것이 영원한 끝이라기보다는 삶과 등을 맞대고 있는 단어여서, 슬프기보다 더 살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문학은 사람의 생각 속에 있는 근원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주제라고도 했다. 전화로 만난 조해진은 이번 소설은 이전의 죽음과 결이 다르다고 말했다.

 

▲조해진은 "슬픔의 정체성은 결핍"이라고 썼다. [작가정신 제공]

 

"이번에는 죽음을 통과하는 느낌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겨울처럼 엄마의 죽음을 통과하면서 제가 쓴 소설 중에서 제일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재로서 현존하는 방식, 그 부재가 단절이나 절망만 주는 것이 아니라 부재하지만 다르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그런 의미로 썼기 때문에 따뜻했던 것 같아요."

-집으로 걸어가는데 바람 끝에 둥글고 나른한 온기가 배어 있는 게 느껴지긴 했다. 겨울에서 봄 사이의 국경을 지나가는 기차 안의 승객이 된 것만 같았다. 기차는 느리게, 그러나 쉬는 일 없이 규칙적으로 달릴 것이고 겨울 나무와 봄 나무가 섞여 있는 기차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주머니 안을 뒤적이면…….

'겨울에서 봄 사이의 국경을 지나가는 기차 안의 승객'이라는 문장만으로도 온기는 느껍다. 조해진은 봄으로 가는 국경선 기차에서 주머니를 뒤적이면 '시곗바늘은 없지만 타이머는 내장된, 그러나 그 타이머가 언제 멈추는지는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시계'가 만져질 것이라고 썼다.

"삶이 시간의 흐름이라고 했을 때 기차가 많이 연상 되고, 또 시간이 흘러가긴 하지만 우리가 생애 어느 지점을 살고 있는지 모르잖아요. 언제 죽을지도 알 수 없고, 그래서 그런 시곗바늘 없는 시계를 갖고 기차를 탄 승객 같은 거지요. 이번에는 선물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역사나 시대, 그동안 많이 써 온 이런 거와 약간 동떨어진 보편적인 얘기를 선택했으니까 누구에게나 위로가 될 수 있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소설 속 정연은 '슬픔이 만들어지는 계절을 지나가면서, 슬픔으로 짜여졌지만 정작 그 슬픔이 결핍된 옷을 입은 채, 그리고 그 결핍이 이번 슬픔의 필연적인 정체성'이란 걸 가까스로 깨달았다. 슬픔의 정체성이 '결핍'이라는 것인데, 그 부재와 상실을 온전히 껴안고 봄을 향해 나아갈 궁극적인 힘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조해진은 '겨울에서 봄 사이의 국경을 지나가는 기차 안의 승객'들을 위무하는 소설을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엄마의 죽음은 아무리 슬퍼해도 그 슬픔은 늘 결핍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슬퍼하기만 한다고 해서 엄마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그 애도 자체가 스스로 충분하다고 느낄 수도 없잖아요.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고, 그게 또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슬픔을 애도하는, 위로하는, 겪었거나 겪을 수 있는, 저도 언젠가 겪게 될 수 있는 슬픔을 미리 위로하는 그런 의미로 썼어요. 저도 언젠가는 이 소설에 빚을 많이 질 것 같아요."

조해진은 엄마의 세목을 많이 가져와 이번 소설에 활용했다고 했다. 엄마가 부재하는 슬픈 꿈을 꾸고 이번 소설을 시작했다는 그는 정작 엄마에게는 아직 이 소설을 말하지 못했고, 주말에 만나면 알리겠다고 했다. 소설 속 엄마 '명순'처럼 그의 엄마도 식당을 운영하며 많은 이들에게 따스한 밥을 먹인 적 있다.

동지에서 시작해 대한을 거쳐 우수에 이르는 소설 끝에서 조해진은 다시 입동으로 돌아와 '작가의 말'을 썼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겨울과 봄, 그 사이, 바늘 없는 시계를 움켜쥔 이들에게 전하는 말.

-겨울은 통로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겨울은 춥고 때때로 우리의 마음을 황량하게 하지만, 그래서 아주 차갑고 길쭉한 통로가 연상되지만, 그 통로 끝은 어둡지 않으니까요. 눈과 얼음이 녹아 기화하여 비로 내리면 세상은 다시 순환과 반복이라는 레일 위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니까요. 아이들은 걸음마를 배울 테고요. …나의 어머니에게 감사합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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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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