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 지리산 유람기 '유두류록' 번역서 나왔다

박유제 / 2023-11-28 14:27:38
창원 '뜻있는도서출판' 발간…"쉽고 편한 해설"
26일 독자들과 하동 남명길 걷기행사도 열어

조선의 지식인들은 왜 지리산에 갔을까. 유학자들에게 지리산은 온갖 꽃이 피고 청학이 날아오르는, 답답한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이상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인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는 공허하다고 생각하는 남명 조식에게 지리산은 현실 밖의 신선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기이한 경치를 감상하는 곳만도 아니었다. 조식은 지리산을 유람하면서도 거경(居敬)·행의(行義)를 강조한 유학자로서의 신념을 잃지 않았다.

 

▲ 남명 조식의 지리산 유람기 '유두류록' 번역서 표지 [뜻있는도서출판 제공]

 

조식은 지리산을 유람하며 자신이 책에서 보았던 것을 마음으로 직접 느끼고, 몸으로 직접 실천해 보고자 했다. 그리고 '유두류록'을 통해 자신이 체득한 지리산을 이야기한다.

 

조식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유학자 이황(李滉)은 조식의 '유두류록'을 읽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명승을 두루 찾아다니며 구경한 것 외에도 일에 따라 뜻을 붙여 놓았습니다. 분개하고 격앙하는 말이 많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들도록 합니다. (중략) 명철(明哲)한 현자들의 다행과 불행에 대한 이야기는 진실로 일천 년 영웅들에 대한 탄식을 자아낼 만합니다.”

하지만 조식의 '유두류록'은 번역 자체가 어렵기로 유명하다. 몇 편의 한글 번역문이 나와 있지만, 이 번역문조차 읽기 어려울 정도다. 또 한문으로 쓰인 많은 전고(典故)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기본적인 문맥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그런데 경남 창원에 있는 지역출판사 '뜻있는도서출판'이 '유두류록' 전고의 원문과 기본적인 의미 등에 대해서까지 세세하게 풀어 독자가 보다 쉽고 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번역서를 출간했다. 

 

뜻있는도서출판 이지순 대표는 "이번에 발간한 유두류록은 번역서가 아니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일반적인 번역서라 하기에는 지나친 점이 있다. 유두류록을 구구절절 소상하게 풀이하고 또 풀이한 책"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책 속에는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이 우리집에 있는 나의 물건을 갑자기 빼앗아가 자신의 소유로 삼는데도 이를 알지 못합니다. 이는 우리가 흐리멍덩한 꿈의 세계에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라거나 '나라가 이제 막 망해갈 때는 임금이 현자를 좋아하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아!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라는 글이 있다. 그만큼 원문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독자에게 쉽고 편하게 의미를 전달하려고 애썼다.

 

이 같은 번역서가 원문의 의미를 왜곡하거나 오류를 낳을 수 있을 만큼 위험하지 않느냐는 우려에 대해 이지순 대표는 "의도와는 다르게 지루하고 장황해질 수도 있지만, 현재의 독자들에게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이런 위험은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유두류록'을 발간한 뜻있는도서출판은 지난 26일 독자들과 함께 하동 남명길 따라 걷기 행사를 개최했다.

 

▲ '유두류록' 발간을 기념해 마련된 하동 남명길 걷기 행사 [뜻있는도서출판 제공]

 

남명 조식 선생은…


1501년 경상도 삼가현(현재의 합천군 삼가면)의 외가에서 태어났고, 1572년 지리산 덕산동(현재의 산청군 시천면)의 산천재(山天齋)에서 일생을 마친 조선의 유학자다. 성리학 이론보다는 실천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황과 같은 시대를 살았는데, 당대의 학문적 위상이나 이후의 역사에 미친 영향은 이황 이상이었다.

여남은 번 이상 벼슬을 제수 받았지만 단 한번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간신들이 권력을 잡고 얼토당토않은 정치를 펼치는 때에 벼슬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555년 명종에게 '을묘사직소'로 일컬어지는 상소를 올렸다. 이 상소에서 “전하의 나랏일은 이미 잘못되었다”고 말하며 당대 조정의 정치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1558년 네 명의 벗들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고 '유두류록'을 썼다. 이 유람기에서 “우리는 모두 길 잃은 사람들”이라고 썼다. 경(敬)과 의(義), 쇄소응대(灑掃應對)를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KPI뉴스 / 박유제 기자 pyj8582@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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