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란의 토닥토닥] '갬성'이 중요한 세대…올가을 자녀의 감성지수 높이기

UPI뉴스 / 2019-09-23 11:37:20
▲ 젊은이들에겐 자기만의 컨셉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를 '갬성'으로 부른다. 호기심을 갖고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은 폭죽처럼 갬성을 터뜨리기 어렵다[shutterstock]


최근에 멋지다는 말 대신 '느낌 있다'라고 표현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감성 돋는다.' '나만의 갬성'이라는 말이 흔히 쓰인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인스타그램 등 자기표현수단이 글로벌화 되면서 감성적으로 호소하고 연출하는 힘이 중요해졌다. 감성이 먹히는 시대가 되었다. 감성 돋는 카페는 곧 젊은이들의 성지가 된다. 느낌적인 느낌이 오는 사진에 열광하고 너도나도 모방한다. 여행 중에도 풍경을 바라보기보다 셀카로 자기만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더 열심이다. 인스타그램 등에 자신의 삶을 연출해 간다. 젊은이들에겐 자기만의 컨셉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를 '갬성'으로 부른다. 한국트렌드연구소 김경훈 소장은 감성이 보편적인 정서이며 갬성은 각자에게 특화된 정서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부모에게 요즘 십대들의 감성을 이해하기는 어렵게 느껴진다. 톡 건드리면 튕겨내는 봉선화 씨앗처럼 성장기 자녀를 대하기는 더 조심스럽다. 그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시간과 이미지를 추구한다. 그러면서도 추세에 민감하다. 갬성이 각 개인의 감성인 듯하지만 서로 모방하는 면도 강하다. 독창적인 듯하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미지일 때가 많다. 아무래도 청소년은 또래에 동화되고 닮으려는 욕구도 있기 때문인 듯하다.

얼마 전 젊은이들의 갬성을 느껴볼 기회가 있었다. 바람이 기분 좋게 부는 날, 평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한강변으로 나갔다. 주변에 산책하는 이들은 30대부터 5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한강의 잠수교는 이마까지 올라오는 강물을 출렁거리며 맞고 있었다. 건너편 남산의 탑은 맑은 하늘 아래 선명하게 솟아 걸으면 곧 닿을 듯 몸체를 들어냈다.

"이런 날 자전거 빌려 타고 양수리까지 다녀오면 딱인데" / "등에 닿는 햇빛이 비타민 D를 주는 듯해." / "요즘 낮엔 선글라스와 선크림이 필수라네요. 햇빛이 강렬해서"


사람들은 나잇대에 어울리는 감성을 주고받고 있었다. 잔디밭 곁에 벤치를 보았다. 해사한 얼굴을 한 이십 대 여성이 하양 블라우스를 입고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책이 아니라 그림책이다. 일러스트레이터처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풀향기를 맡으며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뒤로 한 쌍의 젊은이가 작은 수레에 무언가를 싣고 온다. 근처에 파라솔 같은 텐트와 돗자리 등을 빌려주는 데가 있는 모양이다. 미니테이블도 얹혀 있다. 피크닉 장비가 구색 맞게 갖춰져 있다. 그 모습을 보니 한강변에서 기껏 양산과 땀 닦을 수건 외에는 상상하지 못한 듯해 스스로 멋쩍어졌다. 이 정도면 '컨셉 결핍증'이다. '무던한 게 제일'이라는 교복세대의 감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약간 씁쓸해졌다. 젊은이들이 자기만의 시간을 꾸리는 모습이 참신했다.

하물며 십대 청소년들은 얼마나 그 감성과 생각이 기발할까. 자녀 세대의 상큼하고 발랄한 느낌과 콘셉트를 훼방하지 않고 공감하려면 어떻게 할까. 라면에 치즈를 녹여 먹고 짜파게티에 트뤼프 오일을 뿌리는 입맛을 어떻게 뒤따라갈 수 있을까. 그런데 그 맛이 주는 감성도 사실 누군가 퍼뜨린 유행이다. 순간적으로 탄성이 나오게 하는 이미지 또한 많은 훈련과 탐색의 결과일 수 있다. 호기심을 갖고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은 폭죽처럼 갬성을 터뜨리기 어렵다. 개성적 콘셉트 또한 우연히 얻어진 결과는 아닐 듯하다.

전문가들은 감성지수가 마음의 지능지수라고 한다. 자기 감성만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관계 맺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마주치는 대상에 따라 적절히 관심을 표하는 능력도 포함된다. 자기 주변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 남다른 관찰을 할 수 있다. 생동감 있는 호기심, 타인에 대한 건강한 관심이 감성을 살찌운다.

교사에게도 학생의 독특한 감성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 중학교 삼학년 담임을 하면서 학생부 사안계를 담당하던 때였다. 담임을 맡은 반의 남학생이 학교에서 문제 되는 행동을 했던 친구들과 관련이 있어 고민하던 중이었다. 시험이 끝나는 어느 날이었다. 그 당시에는 학부형이 자녀의 반 친구들에게 시험 보느라 수고했다며 피자 등을 사주는 경우가 많았다. 학급에서 왁자지껄하게 피자를 나눠 먹는데 그 학생이 내게 물었다.

"선생님, 여기 남는 피클 제가 가져가면 안 될까요?" / "그래 다들 피클을 안 먹네. 가져가도 될 것 같아. 근데 피클은 왜?"/ "아, 네 저희 집 할머니가 이 피클을 좋아하셔서요. 할머니 생각이 나서"

반 친구들이 안 먹는 피클을 알뜰히 싸는 그 학생의 행동이 신선했다. 언젠가 그의 할머니가 봄이면 학교 근처에 있는 천변 언덕에서 쑥 뜯기를 좋아하신다고 한 기억이 났다. 섬세한 따스함이 돋보였다. 요즘 같은 핵가족시대에 보기 드문 마음이었다. 그 학생은 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잘 알고 있었다.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기에 단단한 내면의 힘을 보았다. 그래서 교무실로 돌아가 학생들의 사안을 다시 검토해 보았다. 학생들이 문제 행동을 하기는 했지만, 바탕이 착하고 유머 있는 아이들로 다시 보였다. 그 후 문제 된 사건은 원만히 해결되었다. 피자에 곁들인 피클을 보고 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린 그 학생의 '갬성' 덕분이었다.

청소년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생각하는 힘이 세진다. 블루베리를 먹으며 산지의 농부를 생각할 수 있다. 추운 겨울날 군부대 보초를 서는 군인을 떠올릴 수 있다. 주관적인 느낌은 얼마든지 확장되고 내적 성장의 길로 인도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감성을 높이는 방법을 숙제처럼 자녀에게 강요하면 또 다른 스트레스를 주는 격이 된다. 감성은 열린 마음을 지니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살 때 발달하기 때문이다.

지금 학교에서 '갬성'을 추구하는 세대인 학생들의 표정이 별로 다양하지 않다. 사람의 얼굴 근육은 수십 개라는데 의무감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무표정일 때가 많다. 감성이 활짝 꽃피우는 순간은 기쁨과 자발적인 의욕이 넘칠 때가 아닐까. 24시간을 입시 준비에 몰방하라는 분위기에서 어떻게 타인을 감동하게 할만한 개성이 나오겠는가.


어린아이들, 청년들, 십대 특유의 열정 어린 표현을 장려해야 한다. 그들이 맘껏 감성을 키우려면 자기만의 일정을 짤 자유가 있어야 한다. 밤새 음악을 듣고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도 아침에 학교에 거뜬히 갈 수 있는 십대시절이다. 그 좋은 삶의 시기를 오직 문제집과 참고서에 갇혀 지내게 할 수는 없다. '갬성'을 추구하는 청소년들에게 부모가 적극 밀어주고 긍정해 줄 부분이다. 부모는 다만 자녀가 마음껏 상상하고 느끼게끔 멍석만 깔아주면 될 듯하다. 아예 자녀를 어떻게 성공시켜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내려놓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게 자녀가 성적이나 가정의 체면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꿈을 추구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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