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스토리, 도구는 바뀌어도 본질은 같다"
"AI NFT 플랫폼 개발 중…6월 오픈이 목표"
최동열(75) 화백은 요즘 붓을 잡지 않는다. 대신 키보드를 두드린다. 작업공간이 캔버스에서 노트북 컴퓨터로 바뀐 지 꽤 됐다. 인공지능(AI)과 대체불가능토큰(NFT·Non-fungible token)이 새 지평을 열어줬다.
최 화백은 AI와 함께 작품활동을 한다. 생성형 AI에게 여러 화풍을 학습시키고, 떠오르는 키워드로 프롬프트를 입력한다. 생성된 그림을 확인하고, 프롬프트에 키워드를 추가한다. 이 과정을 반복해 그림 수천 장을 하루 이틀 사이에 완성한다. 그중 100점을 선정해 NFT 플랫폼에 업로드한다.
| ▲ 최동열 화백이 지난 6일 서울 자양동 웨이브아이 사무실에서 K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배지수 기자] |
" AI, 우연을 일으키는 도구 "
최 화백은 강한 색채와 이야기로 삶을 그려온 원로작가다. '한국의 고갱'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오랜 시간 회화 작업을 이어온 그가 최근 AI를 활용한 작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시작은 NFT였다. NFT 플랫폼 '오픈씨'와 협업해 아프리카, 유럽 등지 작가의 순수예술 작품을 NFT로 판매했다. 그러던 중 NFT 시장 성장세가 주춤해지자 새로운 방안을 모색했다. 예술가로서 늘 새로움을 추구해온 그는, AI야말로 NFT 시장의 돌파구라고 판단했다.
처음 AI로 작품을 만든 후, 그는 AI가 '세렌디피티(우연)'를 만드는 도구라고 느꼈다. AI를 이용해 수많은 아이디어를 합치다 보면 작가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작품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AI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려면 한 스타일을 고집해선 안 된다. 여러 작가의 화풍을 섞어보고, 다양한 키워드를 합쳐봐야 한다.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무엇이 나올까'라는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
최근 그는 게이샤 사무라이가 개모차(개와 유모차의 합성어)를 끌고다니는 작품을 생성했다.
일본의 기생을 뜻하는 '게이샤'와 일본 무사인 '사무라이'라는 생소한 키워드를 합쳐 초안을 만들고, 사무라이가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전국을 방랑하는 영화인 '아들을 동반한 검객(Lone Wolf and Cub)'에 영감을 받아 '유모차'라는 키워드를 추가했다. 유모차는 최근 등장한 개념인 '개모차(개와 유모차의 합성어)'로 확장됐다.
최 화백은 "과거에는 직접 경험한 것만이 내 것이었고, 경험을 늘리기 위해 실크로드, 정글 등 세계 각지를 유랑했다"며 "이젠 AI를 통해 익숙해진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얻고, 수많은 작가들의 화풍과 아이디어를 융합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 ▲ 게이샤 사무라이가 개모차를 끄는 그림. [배지수 기자] |
" 기존 것을 고수할수록 AI에 먼저 대체될 것 "
이렇게 만들어진 수천 점 중 NFT를 통해 판매될 백 점을 선별한다. 선별 기준은 상업성 70퍼센트, 순수예술성 30퍼센트다. 선이 뭉개지지 않고 완성도가 있는 그림, 색채가 다양해 트렌디한 그림, 위트 있는 그림 등이 대표적이다.
예술성과 대중성은 상반되는 개념처럼 보이지만, 최 화백의 생각은 다르다. 예술은 본래 대중과 함께 만들어져 왔고, 대중에게 사랑받을 때 가치를 얻는다.
NFT를 택한 것도 대중과 즉시 호흡할 수 있는 '즉시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회화는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내기까지 1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NFT는 그림이 완성되는 즉시 판매할 수 있다. 어떤 그림이 대중에게 호응을 얻는지 빠르게 분석할 수 있다.
최 화백은 "결국 예술가는 자신의 그림을 팔기 위한 사업가가 돼야 한다"며 "AI 시대에는 새로움 없는 기존의 것을 고수하는 예술가일수록 먼저 대체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철학을 다음 세대에게 직접 전하기 위해 중학생 대상 AI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예술사와 작가들을 가르치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AI 작품을 생성한 뒤 직접 NFT로 판매해보는 커리큘럼을 개발할 예정이다.
최 화백은 "직접 팔아봐야 대중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자신의 작품이 대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테스트할 수 있다"며 "단순히 AI로 작품을 생성하는 기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닌, AI 시대에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 ▲ 최동열 화백이 '재즈'를 키워드로 생성한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배지수 기자] |
"예술은 아름다움, 아름다움은 스토리에서 온다"
원로작가가 AI를 선택한 것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늘 도전과 자유로움으로 가득했던 최 화백의 인생을 생각한다면, AI 활용은 그가 늘 해왔던 도전의 하나일 뿐이다.
최 화백은 젊은시절 한국외대 베트남어과에 입학했지만, 1년 반 만에 그만두고 해병대에 자원했다. 베트남에서 온 친구가 들려준 첩보대원에 흥미를 느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수많은 고문이 자행되는 걸 지켜보며, 그 잔혹한 비인간성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전쟁은 예술의 영감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예술이 전쟁의 아픔을 해소하는 분출구가 됐다. 그는 "예술을 하지 않았다면 스스로 어떻게 망가졌을지 가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후 미국으로 가 뉴올리언스에서 독학으로 미술을 시작했다. 실크로드, 티베트 등 세계 각지를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남미 밀림 등지에서 스스로 고립을 선택해 작품에만 몰두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글로벌 아트 콘텐츠 전문 기업 '웨이브아이'를 설립했다. 글로벌 NFT 플랫폼 '오렌지해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현재는 오렌지해어를 통해 AI NFT 플랫폼 개발을 추진 중이다. 올해 6월 오픈이 목표다.
끝으로 그에게 예술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예술은 아름다움이고, 아름다움은 '스토리'가 있을 때 만들어진다"며 "도구가 바뀌었다 해도 그 본질은 같기에, 앞으로도 내가 가진 경험과 AI를 활용해 스토리 있는 작품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KPI뉴스 / 배지수 기자 didyou@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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