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APEC 정상회의와 통상협상·인공지능 해법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 2025-10-13 11:32:32
APEC 정상회의 韓의장국 개최···국제 리더십 발휘 및 정책 과제 해결 계기
한·미 통상협상 타결 위한 전략적 접근, 개방·포용적 무역 규범 선언 필요
AI 주도 거버넌스축 형성···기술력·제도 신뢰 바탕 AI 허브국 비전 제시해야

한국이 20년 만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정상회의 의장국을 맡으면서 이달 경주에서 개최되는 APEC 정상회의에 국내외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윤정인 기획재정부 APEC 재무·구조개혁장관회의 추진단장은 경주 APEC 정상회의를 한국이 만드는 혁신과 번영의 무대로 소개하고 인공지능, 인구구조 변화, 디지털 전환 등 선도 의제를 중심으로 회원국 간 협력을 강화하고 지속가능한 경제 공동체 구축을 주도할 계획임을 밝혔다. 의장국으로서 도출할 정상회의 선언문(Declaration)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도 관심사다.

APEC을 통해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 과제는 무역 통상,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기술과 디지털 정책, 인구구조 변화 대응, 에너지, 포용적 성장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다. 한국은 경주 APEC 논의를 기반으로 APEC 경제정책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APEC 회원국들이 더 효과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정합성 있는 방향으로 역내 협력을 강화해 나가는 데 경주 APEC이 적극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은 APEC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의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동시에 한국이 직면한 핵심 정책 과제를 해결하는 계기로 경주 APEC을 연결시키는 전략이 긴요한 시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가지 정책 과제에 대해 우선 살펴보고자 한다.

 

▲ APEC 관련 이미지 [챗GPT 생성]

 

첫째,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한·미 통상 협상 전략이다.

APEC은 비구속적 협의체이므로 FTA 수정 등 법적 구속력 있는 통상 협정은 체결할 수 없다. 그렇지만 각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비공식 회담(sideline meeting) 등을 통해 정치적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은 가능하다. 한·미 간 교착된 협상 등 양자 간 통상 문제를 조정할 수 있는 비공식적, 정치적 계기가 될 개연성도 충분히 있는 것이다.

특히 경주 APEC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이 모두 참석하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정책 기조와 한국의 공급망 안정 및 첨단산업 협력 전략이 맞물려 있다. 따라서 정상 간 회담에서 협상 재개 또는 잠정 타결 방향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등 정치적 선언 수준의 성과는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하겠다.

아울러 정상 간 담판을 통한 패키지 타결을 시도하는 등 전략적 접근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정상 간 패키지 접근법에는 공동 태스크포스(TF), 한·미 경제안정 대화(Economic Stability Dialogue) 상설화 방안 등이 제안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상회의 선언문(경주 선언)에 개방적, 포용적 무역 규범 원칙 등을 포함함으로써 한·미 간 타협의 명분을 선제적으로 확보할 수도 있다.

한·미 양자 협상만으로는 정치적 부담 등이 있을 수 있지만 APEC의 프레임워크에서는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질서 복원이라는 다자적 명분을 확보하며 접근이 보다 용이하게 된다. APEC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규범을 조정하는 논리로 제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것이다. 정상회의 선언문에 무역 규범 등에 관한 상호 신뢰 기반의 협력 확대 문구가 들어간다면 이는 한·미 통상 협상 재가동의 경제외교적 신호로 작동할 수 있다.

경주 APEC 자체가 협상 타결의 장이 되기는 어렵지만 정상 간 정치적 신호를 통한 협상 재가동의 돌파구를 마련할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다음과 같은 실행 전략을 강구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정상회담 의제 사전 조율 단계에서 한·미 통상 협상 관련 문구를 포함하고 정상회의 선언문 초안에 무역 및 산업 협력 원칙 등을 명시하며 정상회담 후 공동 언론브리핑이나 양해각서(MOU)를 통해 재협상 개시를 공식화하는 것이다.

둘째, 인공지능(AI) 생태계 스퍼트 전략이다.

미·중이 주도권을 다투는 인공지능 생태계에서 한국이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스퍼트가 절실한 시점에 인공지능을 주요 의제로 다루는 경주 APEC이 열리기에 의장국인 한국의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

미·중의 인공지능 기술 패권경쟁 속에서 경주 APEC은 역설적으로 한국이 중립적, 조정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로 평가될 수 있다. 한국이 APEC 프레임워크에서 인공지능 국제 협력의 허브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실행 전략이 강구되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현재 미·중 경쟁 구도에서 인공지능 글로벌 거버넌스의 공백이 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인공지능의 안전과 검증을 중시하는 규제 체계를 추구하려는 반면 중국은 국가 통제형 인공지능 생태계를 확대하고 있다. 국제 사회에는 아직 조화된 규범과 표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아시아 중심의 다자적 합의 또한 미진한 실정이다. APEC이 디지털 이슈에서 비구속적 협력을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반도체, 소프트웨어, 데이터 등 기술력과 제도적 신뢰 등을 바탕으로 균형 있는 중재자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한국의 전략적 목표는 의장국으로서 인공지능 의제를 주도하는 경주 APEC을 계기로 인공지능 협력 허브국 비전을 제시하여 국제적 신뢰를 확보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정상회의 선언문에 인공지능 협력에 관한 문구를 포함하도록 해야 한다. 관련 태스크포스 출범을 추진할 수 있고 민관 협력 강화를 통한 시너지가 요청된다. APEC 프레임워크에서 인공지능 규범 중재국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제고해야 한다. 경주 APEC이 본격화하는 인공지능 시대의 규범, 기술, 인재를 아우르는 새로운 거버넌스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국은 기술력과 제도 신뢰, 외교적 균형 등으로 인공지능 생태계의 한 축을 형성할 수 있다.

경주 APEC을 준비하는 윤정인 단장은 이번 정상회의가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을 드높임과 아울러 연결, 혁신, 번영을 통해 지속가능한 내일을 함께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바로 그 과정에서 한·미 통상 협상과 인공지능 생태계 전략을 포함한 우리의 당면 정책 과제를 적시성 있게 다루고 통찰력 있는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 익어가는 수확의 계절과 함께 다가오는 경주 APEC과 그 이후 함께 만들어 가는 성과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 저서: 우리 시대의 금융경제 읽기(박영사, 2025년) △ 현재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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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균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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