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충격적인 말을 전해 들었다. 이름만 이야기하면 누구나 알만한 국내 유수의 대기업 총수가 "한국의 산업기술 경쟁력에서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이미 중국에 모두 추월당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 겸 토로했다는 것이다.
아직도 중국을 제조 강국 한국의 수출시장 내지 싸구려 제품의 구매 장터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은 한참이나 철 지난 인식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미국, 유럽, 일본만 추격 상대로 생각해온 우리나라 정책 입안자와 기업인들은 중국의 무서운 급부상에 깜짝 놀라며 두려움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국은 단순히 한국보다 싼 물건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세계의 공장을 넘어 전기 자동차·자율주행차와 배터리, 드론 등 우주항공, 인공지능(AI)과 양자통신 같은 첨단 제조업에서 미국과 나란히 경쟁하는 벤치마킹 대상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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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픈AI 'ChatGPT'로 생성한 한국과 중국의 산업 기술 경쟁력 비교 이미지. [ChatGPT 생성] |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 같은 유형(有形)의 산업 경쟁력이 일취월장했을 뿐 아니라, 무형의 지식재산(IP, Intellectual Property) 시장도 선진국 수준으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올 5월 나온 중국의 2024년 IP 보호현황 백서에 따르면 전국 법원은 한 해 동안 45만 건의 지식재산 민사소송 1심을, 검찰도 7636건의 지식재산 침해 및 체포 사건을 접수했다. 우리 경찰에 해당하는 공안의 3만7000건 지식재산 침해 및 위조 상품 형사사건까지 포함하면 당국의 IP 보호 의지가 강력함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의 지식재산 보호 만족도는 82.36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과거처럼 한국의 짝퉁 제품이나 대량 유통해 뒷돈을 벌던 왕서방 정도로 여기면 큰일 난다. 딥시크 같은 과학 IP 기업과 히트게임 '검은 신화 오공'을 탄생시킨 문화예술 IP 벤처들이 우리나라에 특허와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걸어올 날이 머지않았다.
IP는 과학기술, 문화예술의 독창적 아이디어로 창업해 돈을 버는 지식산업, 창의력 산업을 말한다. 바이오 실험실에서 개발한 특허로 코로나 때 떼돈을 번 모더나, 영화 비디오와 CD 배달을 온라인 플랫폼으로 바꿔 세계적 기업이 된 넷플릭스가 대표적인 IP 창업의 사례이다. 이렇게 과학자와 예술가 재벌을 줄줄이 탄생시키는 나라는 국내 산업의 자연스러운 구조조정과 함께, 글로벌 경쟁력이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면서 신·구경제 시스템의 선순환을 달성하게 된다. IP 산업이 21세기의 총아로 떠오르는 배경이다. S&P500에 포함된 기업의 전체 자산에서 무형자산(IP)의 비중은 1975년 17%에서 2020년 90%로 커졌다. 사실상 이제 지식이 곧 상품과 서비스, 인프라로 기능하는 시대라는 뜻이다.
미국의 지식재산 산업은 GDP의 41%, 고용의 44%를 차지할 정도로 핵심 분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저작권 무역수지가 전년대비 29% 증가한 33억6000만 달러의 흑자를 냈다. 2023년 기준 한국 게임 산업은 세계시장 점유율 7.8%로 글로벌 4위를 달린다. 이렇게 문화예술 분야의 콘텐츠 산업 매출을 합치면 세계 7위 규모다. 산업재산권인 특허도 출원 기준 등록건수가 세계 4위에 달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나라 지도층은 지식재산이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어떻게 키워야하는지 비전이 크게 부족하다. 500만 지식재산인을 대표하는 46개 지식재산단체들의 모임인 지식재산단체총연합회(이하 지총)가 지난 16일 차기 대통령 후보들에게 'AI 시대, K-지식재산 세계 3대 강국 도약'을 기치로 내건 정책 건의서를 전달한 이유다. 이 자리에는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원회 의장과 국민의힘 장동혁 선거대책위원회 상황실장이 참석해 지식재산단체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공약에 적극 반영할 것을 약속했다.
지총은 IP로 100만 일자리 창출과 100억 달러 수출 흑자 달성, AI 시대 1인 1 IP 시대를 열고 100만 IP 인재도 양성하겠다는 구호 아래 3대 전략과 관련 과제를 제시했다. 여기에는 △1조 IP 펀드로 청년 스타트업 육성 △권역별 지역 특허청과 지식재산 테마파크 설립 △무역수지 흑자 확대를 위한 IP 법제도 정비 등이 포함됐다. 부처별로 흩어진 거버넌스를 강화하기 위해 대통령실 지식재산수석 또는 비서관 신설도 건의했다. 현재 특허는 산업통상자원부 특허청, 저작권은 문화체육관광부로 이원화돼 일관된 정책 집행이 어려운 상태다.
모쪼록 이번 지식재산업계의 목소리가 차기 정부에 충실하게 전달돼 획기적인 정책 개선이 이뤄졌으면 한다. 우리나라는 전통 제조업에 비해 무형의 아이디어에 기반한 IP 산업의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3만 달러 중진국 함정을 건너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1명의 창의적 인재가 100만 명을 먹여 살리는 아이디어 산업의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 한국인의 우수한 두뇌와 풍부한 감성이 미래 세대를 부양하는 가장 강력한 자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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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성열 논설위원 |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 분야를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5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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