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매직이 무너졌다

김병윤 / 2018-08-30 09:20:46
아시안게임 4강으로 역대 최고 성적
작전미스로 현지 언론에 뭇매
11월 스즈키컵에서 좋은 성적내야

박항서 매직이 무너졌다. 학범슨 김학범 감독에게. 지난 1월부터 몰아친 박항서 감독의 진군은 일단 멈췄다. 그래도 잘했다. 베트남 축구의 현실로는 최고의 성적을 이뤘다. 베트남 축구 사상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4강에 올랐다. 오는 9월1일 아랍에미리트와의 경기에서 이기면 동메달을 목에 건다. 대단한 성적이다. 어느 누가 이런 결과를 예상했겠는가. 어쩌면 앞으로도 이루지 못할 만큼 좋은 성적이다.

▲ 29일(현지시각) 오후 인도네시아 치비농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대한민국과 베트남의 경기. 베트남 박항서 감독이 취재진이 몰리자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뉴시스]

 

박 감독은 그래서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박 감독의 속내는 한국을 이기고 결승에 오르는 것일 수도 있었다.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어느 감독이 우승을 원하지 않겠는가. 박 감독의 조국이 대한민국일지라도 경기장에서는 이겨야만 할 경쟁국이다. 한국을 이기고 싶었던 박 감독의 바람은 사실 무리였다. 한국 팀의 전력은 베트남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베트남이 그동안 상대했던 팀들과 노는 물이 다르다.

박 감독은 그동안 예상 밖의 승리와 좋은 성적으로 호평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작전을 펼쳤다며 매스컴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베트남은 예선에서 21세 이하 선수들로만 구성된 일본에 1대0으로 이겼다. 모든 언론이 베트남의 승리를 이변이라 써 내려갔다. 일본축구계는 오히려 담담했다. 그들의 목표는 2020년 도쿄올림픽이었다. 어린 선수들로 실전경험을 쌓는데 더 큰 관심을 쏟았을 뿐이다.

박 감독은 이미 본선진출이 확정된 일본전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승리에 대한 집착에 와일드카드로 선발된 주전 미드필더 ‘도 홍 융’을 무리하게 출전시키다 부상으로 중도귀국 시켰다. 눈앞의 승리에 빠져 높은 고지를 못 본 것이다. 베트남 언론은 융의 부상에 안타까움을 나타내며 분노했다. 박 감독의 작전실수를 강도 높게 질타했다.

베트남은 16강전에서 바레인과 고전 끝에 1대0으로 힘겹게 이겼다. 바레인전도 전반 42분 사나드 아흐메드가 퇴장으로 빠진 뒤 10명을 상대로 어려운 경기를 펼쳤다. 후반 경기종료 2분을 남기고서야 가까스로 골을 빼냈다. ‘도 홍 융’이 있었다면 본선에서 더 쉬운 경기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도 홍 융’의 결장을 시리아와 한국전에서 고전한 요인으로 꼽고 있다. 베트남 언론은 바레인 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윙 꽁 푸엉’의 교체시기에 대해서도 너무 늦게 투입했다며 박 감독의 작전에 불만을 표시했다. 베트남 언론의 이런 지적은 박 감독의 장래가 결코 장밋빛만은 아닐 거라는 우려를 보여준다.

박 감독이 누리고 있는 현재의 사랑은 앞으로도 좋은 경기력과 성적이 뒤따라야 한다는 전제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박 감독은 아시안게임을 끝내면 진정한 지도력을 보여줘야 할 시험대에 오른다. 베트남의 황금세대인 23세 이하 선수들은 이번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성인무대에서 뛰어야 한다. 지금까지 박항서 매직의 호평을 받았던 23세 이하 선수들만의 무대와는 수준이 다르다.

베트남 23세 이하 대표 팀에는 ‘쯔엉’을 비롯한 여러 선수가 성인 대표 팀에서도 활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팀은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손흥민 조현우 2명과 황희찬, 20살의 이승우가 지난 러시아월드컵 국가대표 팀에서 활약했다. 그래도 한국 팀은 베트남을 여유 있게 눌렀다, 김학범 감독은 아시안게임 출국 전 인터뷰에서 “솔직히 베트남축구는 신경 안 쓴다. 야구로 치면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어쩜 루키리그의 차이가 아니냐. 너무 언론에서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왜 우리가 수준이 틀린 베트남 축구에 신경을 써야하느냐”며 자존심 상한 모습을 보였다.

김학범 감독의 이런 지적은 박항서 감독이 곱씹어 봐야 할 문제이다. 전문가들은 베트남 성인축구 대표팀과 23세 이하 대표 팀의 수준 차이가 별로 없다고 평가한다. 이런 선수들이 성인무대에서 한국, 일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시아권 강호들과 상대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이다. 유럽과 남미 등 세계무대와의 차이는 굳이 말 할 필요가 없다.

▲ 29일(현지시각) 오후 인도네시아 치비농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대한민국과 베트남의 경기. 베트남 박항서 감독이 대한민국 손흥민을 격려하고 있다. [뉴시스]

 

박항서 감독의 아시안게임 여정은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전에서 꼭 승리해 베트남 국민들에게 동메달로 멋진 선물을 주길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장정에 대비해 베트남 국민들의 자긍심이 이어졌으면 한다.

어쩌면 지금부터 박 감독의 진검승부가 시작됐다. 오는 11월 동남아국가 성인대표팀 대항전인 스즈키 컵 대회에서 정상에 오를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 이 대회 성적이야 말로 박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진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동남아축구의 맹주를 자처하는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 전통의 강호들에게 베트남축구의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베트남 국민들은 이제 박 감독에게 성인대표 팀의 좋은 성적을 요구할 것이다. 최소한 동남아에서 만이라도 정상에 오르길 바랄 것이다.

공은 박 감독에게 넘어갔다. 히딩크 감독처럼 시원한 어퍼컷 세리머니를 펼치며 한국을 월드컵 4강으로 올리고 한국국민의 우상으로 떠오른 뒤 아름다운 이별을 할 것인가. 2018년 베트남의 영광을 뒤로 하고 질타의 대상이 될 것인가.

매스컴은 냉철하고 축구팬들의 팬심은 파도와 같다. 
   

KPI뉴스 / 김병윤 기자 bykim7161@kpinews.kr

 

스즈키 컵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10개국이 홈 앤드 어웨이 경기를 펼치는 대회로 출전 국가들이 자존심을 걸고 열전을 펼친다.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병윤

김병윤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