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입동을 앞두고 찾은 강원 양구 펀치볼의 한 농가 앞에 겨울을 나기 위한 장작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이상훈 선임기자] |
겨울의 시작인 '입동'을 앞두고 한반도 동부의 최북단 양구 펀치볼을 찾았다.
겨울이 빨리 오는 지역이라 겨울 준비하는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예년 이맘때에는 펀치볼 비닐하우스 여기저기에서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시래기 말리기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따뜻한 날씨 탓인지 시작도 하기 전이다.
푸릇푸릇 싱싱하게 자란 무는 아직 밭에서 시래기가 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신 고랭지 배추밭은 '금배추'를 수확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배추 작황이 좋지 않아서 속이 여물지 않은 배추는 밭에 그냥 버려진다. 배추밭 옆 사과농장에는 발갛게 익은 사과가, 산에는 노랗게 물들어 가는 나뭇잎이 늦가을의 정취를 더해줄 뿐이다.
최근 재배 지역이 최북단까지 올라간 사과도 빨간 옷을 입고 지나가는 행인을 유혹한다. 대부분 수확을 마쳤으나 길가의 나무들은 아직 수확되지 않아 열매가 달려 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릴 때 우연히 보았던 농촌의 모습을 발견했다. 한 농가에서 가을 햇살에 말려 놓았던 들깨의 낱알을 도리깨로 털고 있었다. 푹푹한 날씨에 농부는 아예 런닝 차림으로 땀을 흘리며 들깨 타작을 했다. 까마득히 오래 전 시골에서 보았던 모습이 떠올라 반가워 사진을 찍고 도리깨질도 몇 번 해봤다.
옆집에는 겨울을 나기 위한 장작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겨울 준비에 가장 적합한 모습인 장작 패는 장면을 찍고 싶어 주인장을 찾아보니 보행기에 의지해 걷는 할머니다. '이 많은 장작을 어떻게 하냐'고 여쭤보니 인부를 사서 장작을 패야 겨울을 날 수 있다고 하신다. 기름보일러가 편하겠지만 긴긴 겨울 기름값이 만만찮아 어르신께서는 아직 장작으로 겨울을 나신다고 한다.
모처럼 취재 겸 여행으로 먼 길을 나섰지만 취재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언저리에서 변죽만 울리다가 돌아왔다. 가을은 가을답지 못하고 겨울은 오다가 멈춘 느낌이다. 이것도 '기후재난'이라고 해야 하나. 사계절 기후가 분명한 것이 우리나라의 상징이었는데 이제는 과거의 기억으로만 남을까 마음이 쓰인다.
봄·가을은 흐지부지 지나가지만 혹독히 지낸 여름처럼 이번 겨울도 춥고 긴 겨울을 예보하고 있다. 은근슬쩍 가을이 물러가고 겨울이 오기 전 모두 준비에 만전을 기해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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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구군 학교리의 한 농가에서 가을 햇살에 잘 말린 들깨를 도리깨를 이용해 낱알을 털고 있다.[이상훈 선임기자] |
KPI뉴스 / 이상훈 선임기자 jow@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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