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시대에 고가·고품질 전략 통하지 않아
수차례 도산 위기를 이겨낸 뚝심이 통할지 의문 종합식품기업을 향한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의 꿈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더미식' 브랜드로 출시한 라면과 짜장면, 비빔면 모두 판매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적자가 누적되고 있고 수천억 원을 투입한 공장은 OEM 물량으로 가동률을 근근이 유지하고 있다. 수차례 위기에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축산업을 발판으로 재벌의 반열에 오른 김 회장의 경영능력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더미식' 브랜드 제품 초기 시장 안착에 실패
하림그룹의 종합식품 계열사인 하림산업은 지난 2021년 '더미식 장인라면'으로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2022년에는 '더미식 유니짜장', '더미식밥'과 냉동 국물 요리 제품과 냉동볶음밥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했다. 올해 들어서는 컵라면인 '챔라면'과 '더미식 비빔면'을 출시했다. 그리고 지난 3월에는 '더미식'에 이은 두 번째 브랜드로 길거리음식 가정간편식 '멜팅피스'를 출시했다.
그러나 이들 제품 가운데 시장 진입에 성공한 제품은 아직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미식 장인라면'은 출시 당시 2022년 매출 목표를 700억 원으로 제시했지만 실제 매출은 절반 수준에 불과해 라면 시장 점유율이 1%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더미식밥'과 '더미식 비빔면'이 선방하고 있다고 하지만 시장 점유율이 5% 수준에 불과해 시장에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기에는 한참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창사 이래 적자를 이어오고 있는 하림산업의 적자폭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461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12% 늘었지만 영업 이익은 마이너스 867억 원으로, 적자가 4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고가·고품질에도 소비자를 끌어올 '한 방'이 부족
하림산업의 식품 사업이 지지부진한 것은 고가·고품질 정책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하림이 지금까지 출시한 제품들은 "라면이 그래봤자 라면이지 무슨 보양식도 아니고"라는 말이 대변하듯 간편하고 저렴함이 우선되는 시장이다. 그럼에도 하림의 제품들은 경쟁사 대비 2∼3배 높은 가격을 한 것이 초기 시장 진입의 실패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물론 간편식에도 고급 제품을 원하는 수요는 있기 마련이다. 하림도 이를 겨냥해 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자연 재료를 깊게 우려냈다"거나 신선하고 고품질 재료로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두세 배 비싼 가격을 보상할 하림만의 특장점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더구나 전반적인 고물가 상황에서 하림의 고가 정책이 소비자들의 저항에 부딪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가 내세웠다 실패한 '신라면 블랙'의 뒤를 이을 수도
식품 시장에서는 신제품이 초기에 시장 진입에 성공하지 못하면 버티기 힘들다는 공식이 있다. '더미식 장인라면'처럼 고급 라면을 표방하며 2011년 기존 라면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가격을 내세웠던 '신라면 블랙'이 사례로 꼽힌다. '신라면 블랙'은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에 부딪혀 출시 4개월 만에 국내 생산을 중단했다. 이후 해외 시장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특히 2020년에는 뉴욕타임스가 세계 최고의 라면에 선정하는 호재도 있었지만 국내 소비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더구나 '신라면 블랙'이 출시됐던 2011년은 고물가가 문제 돼 정부가 라면값 인하를 종용해 라면업체들이 가격을 내렸던 시기다. 그때 상황이 판박이처럼 지금 연출되면서 '더미식 장인라면'이 제2의 '신라면 블랙'이 될 것 같다는 다소 불길한 예상도 나오고 있다.
3번의 도산 위기를 극복한 김홍국 회장, 이번에는?
김홍국 회장은 11세 때 외할머니에게 선물 받은 병아리 10마리로 지금의 하림그룹을 키워낸 일화로 유명하다. 쓰라린 실패의 경험도 가지고 있다. 80년대 중반 돼지 파동으로 돼지 값이 폭락해 밑바닥까지 주저앉았고 1997년 외환위기 때도 부도의 벼랑에 몰리기도 했다. 2003년에는 익산공장의 대규모 화재로 망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김 회장은 그때마다 특유의 뚝심과 돌파력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2014년에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나폴레옹의 정신을 본받기 위해 경매를 통해 나폴레옹 모자를 26억 원이라는 거금에 낙찰 받기도 했다. 김 회장은 남들이 다 불가능하다고 여긴 축산 분야에서 성공을 이뤄 이제는 닭고기를 미국 등에 수출하고 있다. 곡물 운송을 주력으로 하는 팬오션을 인수한 김 회장은 곡물 생산과 운송에서부터 소비제품에 이르기까지 식품산업 분야에서 일관체제를 구성해 우리나라를 네덜란드처럼 농업 선진국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종합식품기업이 필수적이다. 지금의 난관을 특유의 뚝심으로 돌파할지 아니면 한낱 고집으로 기억될지, 김 회장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KPI뉴스 / 김기성 대기자 bigpe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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