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공정위의 시정명령과 과징금 43억원은 정당"
골프장·호텔 이용 시 합리적 고려·비교 절차 거쳐야 우리나라 재벌은 물론이고 웬만큼 몸집이 커진 중견그룹이면 꼭 하려는 사업이 있다. 바로 골프장이나 호텔 하나쯤은 운영하고 싶어 한다. 수익률이 좋은 사업은 아니지만 회사 안이 아닌 바깥에서 회장님 대우를 받으면서 으스댈 수 있는 곳이 골프장이나 호텔이기 때문이라는 게 재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더구나 일단 만들어 놓고 보면 계열사들이 집중적으로 이용해 수익을 올릴 수 있고, 혹 불경기가 찾아오더라도 계열사를 이용하면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계열사를 이용해 골프장이나 호텔을 집중 지원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셋 그룹이 골프장과 호텔의 일감몰아주기와 관련해 공정위와 벌인 법적 다툼에서 패소했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5일 미래에셋 계열사와 박현주 회장이 제기한 공정위의 시정명령과 과징금납부명령 취소 소송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고 공정위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공정위, 미래에셋의 총수 소유 골프장·호텔 집중 이용은 일감 몰아주기
사건의 핵심에는 미래에셋컨설팅이라는 비상장사가 있다. 이 회사는 박현주 회장이 48.6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배우자와 자녀가 34.81%, 그리고 기타 친족이 8.43%를 보유해 특수 관계인의 지분이 91.86%에 달하는 사실상 박 회장 가족의 개인 기업으로 골프장과 호텔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공정위 조사 결과 미래에셋 계열사들은 2015년부터 2017년 사이에 미래에셋컨설팅이 운영하는 블루마운틴 골프장과 포시즌스 호텔을 집중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이러한 계열사 거래로 430억 원의 매출이 발생했고 이를 통해 골프장과 호텔 사업의 안정화에 기여한 것으로 판단했다. 또 박 회장 일가의 지분 가치를 높여줘 박 회장 등 총수 일가에게 이익을 몰아줬다고 봤다. 특히 보통 기업이라면 골프장이나 호텔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가격 비교 등 합리적 선정 절차를 거쳐야 하나 이러한 과정이 없었다며 총수와 특수 관계인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로 보고 지난 2020년 9월 시정명령과 함께 43억91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미래에셋, 고객과 임직원 위한 행사 차원이라고 항변
이러한 공정위 결정에 대해 미래에셋 그룹의 8개 계열사와 박현주 회장이 2020년 12월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미래에셋 측은 계열사들이 블루마운틴 골프장과 포시즌스 호텔을 이용한 것은 대우증권 합병 과정에서 다양한 고객과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행사를 진행한 것일 뿐 총수 일가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해당 기간 동안 미래에셋컨설팅은 이익을 낸 것이 아니라 318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미래에셋의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계열사와의 거래로 영업 손실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부당한 이득이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미래에셋 측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대법원에 상고할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는 입장이다.
재벌기업, 계열 골프장·호텔 이용 시 합리적 선택 절차 밟아야
이번 판결은 골프장이나 호텔을 보유한 대기업이 많은 우리 재계에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골프장이나 호텔 등을 이용할 때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되지 않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점을 제시한 것이다.
첫 번째는 '합리적 고려와 비교'를 제시했다. 예를 들어 골프장이나 호텔을 이용할 때 가격이나 거리, 이용목적에 따라 선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앞으로 골프장이나 호텔 이용에 앞서서 이러한 절차를 거쳤다는 사실을 문서로 남겨둬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두 번째는 '상당한 규모의 거래'인지 여부다. 해당 골프장이나 호텔에 대한 계열사들의 이용 금액 자체도 중요하지만 전체 매출에서 계열사의 비중도 고려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거래 결정에 총수 등 특수 관계인이 관여했는지 등이 일감몰아주기의 판단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계열사의 수요만 믿고 땅 짚고 헤엄치기로 여겨졌던 골프장이나 호텔 사업도 이제는 철저한 수익 분석이 선행돼야지 그러지 않았다가는 일감 몰아주기의 철퇴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KPI뉴스 / 김기성 대기자 bigpe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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