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상처에서 바깥으로 향하는 따스한 시선
"진짜는 무엇을 변하게 한다, 지나가거라 세계여" 우리는 같은 진동을 느낄 때/ 함께 운다/ 속이 비어 있는 것은/ 껴안고 울고/ 좁은 골목에선 바람도/ 막막해서 운다
시인은 우리가 타자를 타자로만 보면 절대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사람의 정서에 맞추고 그 사람을 생각했을 때, 그 사람의 아픔이 내것 아니냐고 했다. 두 번째 시집 '그 잠깐을 사랑했다'(천년의시작)를 펴낸 여영현 시인이 이번 시집에 수록한 '공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울음은 더 큰 소리로 이어진다.
일주일 째 노파가/ 보이지 않았다/ 손수레 바퀴처럼 삐걱거리던 속울음이/ 덜컥 멈춘 것이다// 비바람이 골목길에 몰아쳤다/ 비닐봉지는 젖은 채 울고/ 수거해 갈 사람이 없는 빈 병은/ 더 큰 소리로 울었다.
2004년 시인으로 나선 이래 오래 침묵을 지키다 14년 만에 첫 시집 '밤바다를 낚다'를 낸 이후 이번에 다시 상재한 시집은 시인 안의 상처에서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 따스함을 나누려는 시편들이 눈에 띈다. 그는 "모든 게 순간일 뿐"이라면서 "너무 할 말이 많으면 일렁이게도 되고, 너무 아프면 반짝이게도 된다"고 서문에 썼다.
너무 할 말이 많으면 일렁이게 된다/ 너무 아프면 반짝이게도 된다// 배들이 떠나갈 때/ 물 자취가 길다/ 그게 배들의 운명 같기도 하고,/ 미련 같기도 하다// 아주 큰 스크루를 달고도/ 깊은 바다를 지나가는 배들은/ 속도가 느리다// 살면서 가장 아름다울 때는,/ 죽고 싶을 때였다/ 먼 섬들이 편도처럼 부었다// 미련이 많으면/ 바다가 깊다/ 허무해서 돌아보면/ 더 깊다. _'사랑이 그렇게 지나갔다'
숙명적으로 '섬'은 떠나가는 이들을 속절없이 보내야 하는 처지. 시인의 먼 섬들이 편도처럼 부어 있는 까닭이다. 이번 시집에는 대체로 '따뜻한 남쪽'에 대한 그리움이 깔려 있다. 시인의 '남쪽'은 위로와 사랑이 있는, 오랜 갈망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그에게 살면서 가장 다행인 건 "흙이든 사람이든/ 서로 꼭 붙드는 것"('토마토는 따뜻하다')이고,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지만/ 당신이라는 감옥/ 참 좋았다"('비문증飛蚊症').
나는 불의 뿌리,/ 출렁이는 파도였다// 햇빛은 대기 속에 지층을 만들고/ 내가 노래하고 춤추던 자리에도/ 빛의 퇴적이 남았다// 해안선 끝까지 밀려오던 물결,/ 불꽃이 소실될 때 어둠은/ 또 얼마나 다정했던가,// 나는 등뼈가 가지런한/ 화석이 되고 싶다// 당신 곁에 눕던 이생의/ 등뼈// 짧아서 환했던 흔적이다. _'환생'
시인은 "짐승들은 다쳤을 때 울지 않는다/ 끊임없이 스스로 상처를 핥을 뿐"이라면서 "우리는 모두 눈밭을 건너고 있다/ 살아서 수고 많았다/ 발자국마다 홍매가 핀다"('겨울 홍매')고 위무한다. 살아서 수고가 많은 이들이 어디 한둘일까. 스스로 다독이고 바깥을 향해 위무의 말들을 던지지만, 여전히 '수렵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무한 질주 세태에 대한 비탄은 멈출 수 없다.
자유로는 강변북로와 연결되었고/ 절벽 어디선가 강으로 꺾인다// 추락한 사람들은 귀가 시간이 늦다/ 간혹 죽음은 유선으로 통보되었다// 여자는 동굴에서 혼자/ 아이를 낳는다/ 눈이 내리고 가계부에는/ 빙하기라고 적는다// 타제석기는 깨어진 쪽이 날카롭다/ 사람들은 상처를 주기 위해/ 예리해진다/ 손목을 그은 손들이/ 피를 흘린다/ 도시의 십자가는 습관적으로/ 붉다// 짐승의 발자국을 쫓느라/ 너무 멀리 왔다 돌아오지 않는 발자국이/ 눈보라 속에 묻혔다// 남자의 산재 연금이 나오던 날,/ 여자는 동굴의 불을 밤새/ 끄지 않았다. _'수렵시대'
한국이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이고, 젊은 세대 사망 원인 1위 또한 그 '참혹'임을 떠올리면 새삼 망연해질 따름이다. 대학에서 행정학, 그중에서도 조직론을 전공한 교수로 살아가는 시인은 최근에는 왜 한국인은 유독 더 불행한지 북유럽과 일본 등지를 답사하며 연구에 몰두하는 중이다. 그는 이즈음에는 육체노동자들뿐 아니라 산업재해 판정도 받지 못한 채 과로사하는 사무직 노동자들 실태도 심각하다고 했다.
시인은 "칠흑 같은 바닥에 불을 놓는다/ 나의 뇌가 남김없이 타고 나면/ 그렇게 불릴 것이다// 지식노동자"('향유고래')라고 쓰고 "왜 사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가속의 페달을 밟아,/ 속도계 바늘처럼 온몸이 떨리네// 내 몸을 으깨어 만든 별 하나,/ 지금 유리창에 달라붙어/ 바람에 춤추고 있네"('질주하는 의문')라고 탄식한다.
여영현은 "요즘 들어서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이전에는 내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이제는 특히 젊은 세대에게 용기를 주는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시를 위한 시는 쓰지 않겠다"면서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 잠깐' 오래 남을 불씨를 심고 싶다"고 덧붙였다. 핀란드에서 아내에게 보낸 온기 가득한 노래.
한때 내 영혼의 공장이었던 육체가 죽었다/ 백야의 밤이 그렇다/ 나의 몸은 나무가 먹어 그 에너지는/ 나무가 되었다// 식탁이나 의자가 되어 너를 만났으면 좋겠다// 너의 온기가 전달되면 우리가 입 맞추던/ 부드러운 혀를 느낄 것이다// 요행이라면 나의 어느 부분은 먼 북구,/ 순록이 먹는 이끼가 될 것이다/ 맑은 짐승의 동공, 그 투명한 단백질이 되어/ 별을 보고, 오로라를 볼 것이다// 그때도 생각이라는 게 있다면/ 너와 함께라면 하고/ 아쉬워했을 것이다. _'핀란드의 북쪽'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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