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먹구렁이 황구렁이 살던 마을의 설화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3-03-21 05:31:06
정동철 시인 두번째 시집 '모롱지 설화'
전북 지역 방언 살려 잊혀진 이야기 담아
구수하고 부드러운 치유의 시편들
급속히 사라져가는 토속 방언을 기록하고, 실낱처럼 남아 있는 설화 같은 구전 서사를 담아두는 작업은 귀하고 소중하다. 전라도 방언을 떠올릴 때면 흔히 남도 쪽 강한 억양이 대표적으로 기록되고 거론된 것이 사실이다. 전라북도 쪽 방언은 윤흥길이나 최명희의 소설에 남아 있는 정도로 희소한 편이다. 정동철 시인이 전라북도 방언을 오롯이 살려 성장기 전주 외곽 산골 동네의 서사를 연작시 형태로 담아 두 번째 시집 '모롱지 설화'(걷는사람)를 펴냈다.

▲전북 지역 방언을 오롯이 살려 성장기 시골 동네 이야기를 두번째 시집에 담아낸 정동철 시인. [정동철 제공]

'모롱지'는 개발이 되기 전 전주시 효자동 서곡지구 동네 이름이다. 산 아래 10가구 정도 되는 작은 마을 앞 하천 섶다리는 떠내려가기 다반사였다. 버스가 하루에 세 번 들어오던 마을, 지금은 신시가지로 개발됐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 전주시라고는 하나, 전형적인 이 지역 토박이 말이 살아 있는 오지였다. 이 마을에는 유독 구렁이가 많이 살았다.

그놈은 모를 것이다 닥알 중 세 개는 조앙쇠 할아버지가 뽀쁘라 낭구를 깎아서 거짓꼴로 맹글어 논 가짜배기란 것을// 어! 저그 저늠 좀 봐라 몸띵이가 오속뽀속허다야// 그놈이 그 오뽀속한 몸띵이로 낭구를 친친 감고 뽈깡 심을 써 보기도 허고 높은 낭구가지로 올라갔다가 미티로 떨어져 보기도 허고 배를 꺼칠라고 무진 애를 썼다드만// 그 두여로 어치게 되얐냐고? 나사 모르지! 흐지만 그 늠도 뽀뽀라낭구 닥알똥 싸느라고 똥구녁이 찢어지게 아팠을 거시네 정다심을 힜는가 그 두여로 몰리 닥알 돌라먹는 일은 인자 읎다고 허능거 가터 -'그놈 똥구녁_모롱지 설화11' 부분

달걀을 뒤져 먹는 구렁이를 골탕 먹이기 위해 '조앙쇠' 할아버지가 나무로 뾰족하게 달걀 형태로 깎아 넣어두었던 것인데, 이걸 드신 구렁이가 '똥구녁이 찢어지게' 아픈 고통을 겪고 그 뒤로는 달걀을 훔쳐 먹는 일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다. 구수한 사투리가 흐벅지게 이어지는데, 이쪽 지역 말의 특징은 '~잉게로'로 끝나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야! 이놈아! 구랭이는 업이여/ 업을 잡아서 묵으면 벌 받는 거여/ 묵을게 읎다고 업을 잡아묵냐/ 성주신이 노하면 집안이 망하는 뱁여/ 아 그라믄 안 된당게로/ 당최 그러들 말랑게로// 동인이네 할머니가 말리거나 말거나 대밭서 물외 넝쿨대 할라고 대낭구를 비다가 나온 먹구랭이가 상도 아자씨 팔뚝을 칭칭 감고 있었다 -'먹구렁이 업보_모롱지 설화 21' 부분


동인이네 할머니가 그렇게 말렸건만 동네 '아자씨' 들이 먹구렁이를 잡아 솥단지에 삶아 뽀얗게 우러난 국물로 몸보신을 했는데, 상도 아자씨 아들 개똥이 얼굴 한쪽에 뱀 허물 같은 누더기가 졌다. 사람들은 상도가 황구렁이 각시 먹구렁이를 잡아먹어서 그렇다고 수군거렸고, 용한 점쟁이는 '잔밥'을 먹여야 한다고 처방했다. 물에 빠져 죽은 석찬이 형 혼불이 나가던 장면은 이러하다.

어, 저그 혼불 나간다/ 하따 석찬이란 늠 똑 사흘 만이고만/ 살아서도 자발거리고 싸돌아댕기기 좋아흐더만/ 석찬이란늠 혼불 저 방정맞은 것 좀 봐라잉/ 애린 것이라 혼불이 진짜로 퍼렇다잉// 냇깔 쪽에서 솟아오른 혼불은 허공에 잠시 떠 있었다 크기가 보름달만 했는데 파란색 같기도 하고 초록색 같기도 한 혼불이 몽실이네 할매 혼불맹키로 잉글거렸다 이내 혼불은 사람들 머리 위를 넘어가 뒷산 솔밭에서 춤을 추듯 한참 놀드니 산너머로 사라졌다 -'석찬이 형_모롱지 설화 31'

시인은 "기록해 놓지 않으면 잊혀질 말들을 채록하고 어렸을 때 보거나 들었던 설화 같은 이야기들을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시작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뽀로로'의 작명이 실제 우리 토속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심바람 조께 갔다 와야 쓰것다 웃동네 점빵에 가서 술 한 주준자만 받아 가꼬 오니라 해찰허지 말고 뽀로로허니 갔다 와야 혀 알았쟈"라고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는 '모롱지 설화 19'에 그 용례가 생생하게 나온다. '뽀로로'는 '부지런히', 혹은 '빠르게'를 의미하는 전라도 방언과 일치한다. '꽃찰메'라는 아름다운 방언도 있다. 후일 생각해보니 '꽃이 가득한 산'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더라는 이 말은 시인의 설화에 이렇게 담겼다.

▲정동철 시인은 "자신이 먼저 치유받고, 위로받고, 반성하는 시를 쓰고 싶다"고 말한다. [정동철 제공]

봄이 오면 꽃찰메 한가득 진달래가 피었지/ 해 질 녘 밭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행주치마를 앞에 두르고 꽃을 땄지// 옴마, 진달래꽃은 머다로 따요?/ 느가부지 술 당궈 줄라고 따지// 따고 또 따도 꽃은 지천이고/ 지천이 꽃밭인데 엄마는/ 벌써 저만치 앞서 가서 꽃을 따고/ 쫓아가면 또 저만치 앞서 가서 꽃을 따고// 맨날 술 많이 먹는다고 잔소리하던 울 엄마/ 저물도록 힘들게 일하고/ 꽃을 따서 술 담그던 그 마음 알 수 없는데// 해 떨어진 꽃찰메 저쪽 끝에서 꽃등을 달고/ 꽃무덤이 되어 걸어오던 우리 엄마/ 엄마 생각 꽃처럼 차올라/ 꽃찰메라는 서러운 말을 떠올리는 밤// 엄마는 진달래 분홍꽃무덤이 되었지 -'엄마는 꽃등을 달고_모롱지 설화 23'

여우가 약을 올리면서 잡힐 듯 잡히지 않게 도망가다가 마지막 고개에서 조롱하고 사라졌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는 '요시롱 캥'도 흥미롭다. 부드러우면서도 구수한 전라북도 사투리가 노래처럼 흐르는 설화 형태의 시편들은 각박한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의 가슴을 쓸어주기에 족하다.

정동철은 "산업화를 향해 폭주하던 시절, 오지라는 이름으로 위리안치된 모롱지에서 건방구진 여우와 낭군을 잃은 황구렁이와 잔밥각시를 이웃하고 살았다"면서 "돌이켜 보니 내 어린 시절이 자리한 모롱지는 설화와 근대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고 적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