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들은 은행과 산업 결합 시도하며 위기를 야기하고
정부는 금산분리 등 규제 통해 대응해온 것이 은행업 역사
로버트 실러가 말한 금융의 민주화,인간화 다시 떠올릴 때
대전환기 은행업에 요구되는 흐름 읽는 통찰력 긴요 윤석열 대통령까지 적극 앞장선 은행산업의 과점 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금융의 틀을 새로이 짜는 계기로 이어질 것인가. 은행산업 과점 체제는 사실 새삼스럽지는 않다. 필자가 당시 은행감독권을 보유했던 한은에 입행하여 대금융기관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30여년 전에도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신탁(당시 실무편의상 '조·상·제·한·서'라 칭했음)이라는 5대 선두 은행들의 과점 체제가 견고했다.
화두가 무엇으로 촉발되었든 금번에 제기된 은행산업 과점 논의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금융발전을 가져오는 모멘텀으로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은행산업 과점 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은행이란 무엇인가', 즉, 은행업의 본질에 대한 문제 제기와 무관하지 않다. 과점 체제를 바라보는 인식의 기저에는 은연중 은행업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은행이지만 은행업의 정의는 쉽지 않고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도 은행업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 제럴드 코리건 전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유동성 백업,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전달경로(transmission channel) 등 은행의 특수성을 강조했다. 은행도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지만 은행의 특수성 등으로 리버럴리즘(자유주의)에만 맡길 수 없는 한계가 내재하고 따라서 규제의 당위성이 있을 수 있다. 신용 및 지급결제에 국민경제적 비중이 큰 과점적 위치에 있는 은행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한 사회적 인식이 강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금융의 본질은 리버럴리즘을 바라보는 인식의 과정이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리버럴리즘을 부여할 것인가, 정부 개입과 규제를 어느 정도로 부여할 것인가의 문제가 늘 금융에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금융의 존재는 리버럴리즘의 그림자와 같은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인식은 은행·금융과 산업의 분리, 은행업과 증권업·비은행업의 분리, 이른바 은산분리, 금산분리의 창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 미국의 금융사를 한번 살펴보자.
1799년 설립된 뉴욕의 식수 공급 기업 맨해튼사(Manhattan Company)는 당국 허가를 받아 은행업을 겸영했고 후일 체이스맨해튼은행(Chase Manhattan Bank)으로 성장했다. 미국의 초창기 은행들은 여행업을 겸영하며 이민자를 위한 환전과 송금은 물론 숙박업체 알선, 선박표 구매대행 업무도 취급했다.
그러던 은행업에 대한 규제의 계기는 1836년 설립된 필라델피아 미합중국은행(Bank of the United States of Philadelphia)의 파산이었다. 이 은행은 당시 미국과 영국의 최대 수출입 품목인 목화를 대규모로 매집하여 양국 교역에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1839년 들어 목화가격이 하락하고 경기가 침체함에 따라 1841년 파산했다. 목화거래에서 중요 역할을 하던 은행이 파산하자 미국의 목화 수출이 급격히 감소하고 남부의 주들이 연쇄적 경제위기에 직면했다. 이 사태의 영향으로 은행의 산업 분야 투자를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다.
이에 뉴욕주 은행법은 은행의 업무범위를 예금, 대출 등으로 제한했고 이러한 입법은 1864년 연방의회의 은행법 개정시 모델이 되었다. 그러자 은행들이 규제를 피하여 증권계열사를 두어 우회적으로 산업 투자를 해오던 중 1929년 대공황의 시발점이 된 주식시장 붕괴로 은행, 일반회사, 언론사 등의 연쇄 파산이 초래되게 된다. 이에 1933년 연방의회는 은행업과 증권업을 분리하는 글래스-스티걸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가들이 은행업과 산업의 결합을 끊임없이 시도하며 위기를 야기하고 정부는 규제를 통해 그에 대응해온 것이다.
금융의 역사는 이처럼 은행업의 역사와 긴밀한 가운데 리버럴리즘과 규제의 상호 변증법적 과정을 보는 듯하다. 그렇다면 지금 은행산업 과점 논의를 시발로 추진되고 있는 제도와 정책 변화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 은행업의 본질과 눈앞의 현상을 바라보되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대전환기에 요구되는 흐름을 읽는 통찰력이 긴요하다. 그 대전환기 흐름 중 하나는 휴먼 시큐리티(Human Security for All)를 우선시하면서 사람을 중시하는 지속가능한 세계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열망이라 할 수 있다.
은행업이 리버럴리즘과 규제의 변곡점을 따라 움직이며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하고 진화해 왔음을 상기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제도와 정책 변화를 지혜롭게 모색해 나가야 할 때다. 코로나 위기 이후 전개되는 문명사적 대전환기의 은행업은 어떠한 모습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인가.
깊이 있는 성찰과 논의를 요구하며 특히 사람을 중시하는 지속가능한 세계를 만드는 데 은행업이 더욱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로버트 실러가 말했던 금융의 민주화와 인간화(democratizing and humanizing finance)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모든 사람을 위한 리스크 관리, 그리고 인간을 직시하는 금융의 필요성을 강조한 슬로건이다.
포용적 금융(inclusive finance)의 맥락에서 코로나 위기 이후 형성되는 리스크와 불균형을 포착하며 인간 중심의 따뜻한 시각을 지니고 적시에 필요한 대응을 할 수 있는 금융시스템 설계와 정책 운영이 긴요하다고 하겠다. 30여년 전 '조·상·제·한·서'라고 부른 5대 주력 은행 체제에서도 취약그룹을 포함한 국민의 복리(human welfare) 증진에 기여하는 역할이 은행업의 본질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고 여겨진다.
대전환의 시대에 우리에게 '은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면서 금번 은행산업 과점 논의가 은행업의 본질을 성찰하는 가운데 모쪼록 사람을 더욱 중시하며 금융의 가치와 역할을 제고하는 금융발전의 모멘텀이 되길 기대한다.
조홍균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원장,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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