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키우려 한화도 해외 와이너리 인수…롯데는 검토 중
경제성보다 총수의 취향에 좌우되는 와이너리 인수는 문제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와이너리 쉐이퍼 빈야드는 국내 와인 애호가들에게도 꽤 널리 알려진 양조장이다. 그런데 이 와이너리에서 생산돼 국내에 들여오는 와인 가격이 한꺼번에 최대 18%나 올랐다. 가장 낮은 가격대 제품인 '레드 숄더 랜치 샤도네이'가 12만9000원에서 15만2000원으로 18% 올랐고, 비싼 가격 대의 와인도 8%에서 9%정도 올랐다.
와인은 소주나 맥주와는 달리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또 한 병에 1억 원이 넘는 와인도 있는 마당에 굳이 쉐이퍼 빈야드 와인의 가격 인상을 문제 삼는 것은 이 와이너리를 신세계그룹이 인수했기 때문이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나파밸리를 방문해 인수를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세계그룹의 부동산 투자를 담당하는 신세계프라퍼티가 작년 2월 인수했고 그룹의 종합 주류회사인 신세계L&B가 쉐이퍼 빈야드의 와인을 수입해 국내에 독점 판매하게 됐다.
롯데마트 등 경쟁사에서 더 싸게 팔리는 신세계 와인
지금까지 쉐이퍼 빈야드 와인을 주로 수입해 오던 회사는 나라셀라였다. 나라셀라가 수입해 국내에 유통시킨 물량이 아직 남아있는 상황에서 신세계L&B가 가격을 올리자 신세계그룹의 와인이 경쟁사인 롯데마트나 와인 전문점에서 더 싸게 팔리는 현상까지 등장했다.
이에 대해 신세계L&B는 2021년에 나파밸리에 서리 피해가 있었고 코로나 사태로 중남미 노동자들이 미국으로 입국이 제한돼 인건비가 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환율이 오른 것이나 병값과 포장재와 같은 원자재 가격이 오른 것도 가격 인상의 요인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미국 내 쉐이퍼 빈야드 와인의 가격은 큰 변화가 없고 국제 와인 시장에서도 국내에서 만큼 오른 곳이 없다는 게 와인 업계의 설명이다.
신세계, 쉐이퍼 빈야드 3000억원에 인수-美서도 비싸게 샀다는 평가
주류업계에서는 쉐이퍼 빈야드의 와인 가격 인상은 이미 예상됐던 일이라고 한다. 신세계가 쉐이퍼 빈야드를 너무 비싸게 인수했기 때문이다.
신세계그룹은 쉐이퍼 빈야드를 2억5000만 달러, 약 3000억 원에 인수했다. 당시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통화량이 넘치면서 와이너리의 가격이 오른 시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비싸게 샀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의 와인 컨설팅업체인 인터내셔널와인어소시에이츠의 보고서에 따르면 나파밸리의 고급 와이너리는 보통 직전 해 거둔 순이익의 15배에서 20배 정도에서 거래된다. 그런데 쉐이퍼 빈야드의 매매가격은 순이익의 28배에 달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현지 매체조차 너무 비싸게 샀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와인에 뛰어드는 유통업체, 잇달아 해외 와이너리 인수
신세계그룹 이외에도 해외 와이너리 인수에 뛰어든 기업은 여럿 있다. 한화그룹이 작년에 역시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와이너리 세븐 스톤즈를 인수했다. 인수가격은 3400만 달러, 대략 445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의 리조트 사업과 연계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롯데그룹도 와이너리 인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롯데칠성음료가 작년 4분기 IR자료에서 국내외 와이너리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그룹은 국내 최장수 와인 브랜드인 마주앙을 보유하고 있고 신동빈 회장이 와인 사업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롯데그룹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마트와 백화점, 면세점과 같은 다양한 유통 채널을 보유하고 있고 5성급 호텔도 운영하고 있어서 와인 사업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와이너리 인수, 대부분 재벌 총수의 취향에 따라 좌우
나파밸리에서는 1990년대 일본인들이 와이너리 인수에 나서면서 부동산 붐이 일었고 2010년대에는 이를 중국 자본이 이어받았다. 중국 자본은 5000만 달러에 달하는 와이너리를 앉은 자리에서 계약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후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서 중국 자본이 빠져나갔고 그 빈 자리를 한국의 대기업이 끼어든 것이다.
대기업이 해외 와이너리 인수에 뛰어드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와인이라는 상품은 우수한 품질로 프리미엄 와인으로 명성을 얻으면 충분한 사업성이 있는 데다가 브랜드의 격을 높여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포도 농장을 가꿀 수는 없으니까 웃돈을 얹어주고 유명 와이너리를 인수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와이너리 인수는 철저하게 재벌 총수의 개인 취향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일단 인수 목표가 정해지면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인수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와인 대중화 주장했던 신세계의 가격 인상은 자가당착
신세계그룹은 와인 대중화에 앞장서겠다고 밝혀왔다. 신세계L&B 대표는 2009년 와이너리와 직거래를 활성화하고 유통마진을 최소화해 와인 값을 40% 저렴하게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세계그룹은 이마트 등을 통해 1만 원 이하의 가성비 좋은 와인을 출시해 국내 와인 시장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나파밸리의 와이너리를 인수하고는 와인 가격을 올리는 것은 어느 모로 보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결국 쉐이퍼 빈야드를 비싸게 샀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KPI뉴스 / 김기성 대기자 bigpe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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