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의 경제분석] 고졸 성공, 더 이상 '신화'가 아니다

UPI뉴스 / 2022-12-10 21:00:51
'신화'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성공 사례
늦깎이 공부로 석·박사 취득 이미 최고 학력 보유
'고졸 신화'는 골든 티켓에 집착하는 잘못된 표현
신한금융지주 차기 회장으로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선정됐다.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 승인을 거쳐 회장에 취임할 예정이다. 진 행장의 회장 선정을 두고 여러 언론이 '고졸 신화'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1961년생인 진 행장이 덕수상고를 졸업하기 전인 1981년 기업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신화'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고등학교만 졸업한 상태에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채 사회에 진출해 성공하는 것이 신화라고 불릴 만큼 어려운 것일까? 그리고 그들에게 고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합당한가?

'고졸 신화'는 잘못된 표현

최근 몇 년만 보더라도 고졸 학력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성공한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다. 김동연 경제 부총리는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력을 가지고 있다. 국민의힘 반도체 특별위원장인 양향자 의원은 광주여상을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연구보조원으로 입사해 상무이사까지 오른 뒤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금융계에서는 올해 초에는 하나금융 회장에 오른 함영주 회장이 강경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인물이다. 이밖에도 우리 사회 각 분야를 살펴보면 고졸 학력으로 사회에 나와서 성공한 인물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게 사실이다. '신화'라는 표현을 쓰기가 머쓱해지는 대목이다.

이들은 대부분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 진학 때부터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상업학교를 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에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공부를 계속했고 그 이후 대학은 물론 석사,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사람도 많다.

이런 인물들에 대해 고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마치 대학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진학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한 것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한 것이다.

▲ 흔히 '고졸 신화'로 평가받는 인물들. 그러나 이들의 최종 학력은 대졸 이상이다. '고졸 신화'는 우리 사회 성공 방정식에 대한 편견을 드러낼 뿐이다. 왼쪽부터 진옥동 신한은행장,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양향자 의원, 김동연 경제 부총리. [UPI뉴스 자료사진]

고교 졸업후 바로 대학에 가지 못해도 실패는 아니다
 

금오공고라는 학교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최고의 기능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설립해 입학생 전원에 학비와 기숙사비, 생활용품비까지 100% 국비로 지원하되 졸업생은 졸업 이후 5년 동안 기술 하사관(RNTC)으로 복무해야 했다.

박 대통령 서거 이후 체제가 바뀌어 일반 공립학교로 전환됐지만, 당시 졸업생 가운데 대다수가 5년 동안 군 복무를 마친 후 좋은 대학에 진학했고 그들 중에는 사법, 행정 고시를 붙어 성공하거나 기술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굳이 금오공고의 예를 드는 것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더라도 결코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서 고졸 신화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대다수 인물은 가정형편이나 그 밖의 이유로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에 곧장 진학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결코 인생의 실패는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OECD가 지적한 한국의 황금티켓 신드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지난 9월 '2022년 한국경제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우리 사회에 대한 뼈아픈 지적이 포함돼 있어서 당시 이목을 끌었다. 명문대와 대기업 정규직에 대한 집착을 '황금 티켓 신드롬'(golden ticket syndrome)이라는 표현으로 꼬집었다.

명문대 진학과 대기업 정규직과 같은,경쟁이 치열한 황금 티켓을 손에 쥐기 위해 개인들이 모든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교육과 직업 훈련 등 사회 전반을 왜곡시키면서 청년층의 고용률이 하락하고 결혼과 출산 감소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의 편견 드러내는 '고졸 신화'라는 표현

골든 티켓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문제라고 하지만, 이는 우리 사회만의 현상은 아니다. 어느 나라건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직장은 제한돼 있고 이에 대한 경쟁은 치열하기 마련이다.

다만 우리 사회의 병폐는 어느 특정 시점, 청년기에 골든 티켓을 거머쥐지 못하면 실패한 것으로 낙인을 찍는 데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좋은 대학 가야 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의 정규직에 취업하지 못하면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으로 여기고 포기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고졸 신화'라는 표현은 당연히 실패했어야 할 인물이 성공했다는 극히 편견에 치우친 용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비대면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과거를 답습하기보다는 개인의 상상력, 창작 능력이 중요시되고 있다.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없고 과거를 답습한다면 성공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틀에 박힌 성공 방정식을 고집하고 있다.

자녀를 낳으면 강남에서 공부시켜야 하고 SKY 대학에 보내야 하고, 의사나 대기업 정규직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그 성공 방정식에서 자칫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면 실패로 규정한다.

그러나 '고졸 신화'라는 수식어가 붙는 인물의 성공 스토리를 보면 인생의 정답은 결코 하나일 수 없고, 청년 시절의 좌절이 인생의 실패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KPI뉴스 / 김기성 대기자 bigpe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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