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형태의 영향도 있었다. 국내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처럼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만 있는 게 아니다. 반도체 소재나 장비를 만드는 회사도 다수 있는데, 이들도 피해를 봤다. 미·중 분쟁이 시작되기 전에 국내 반도체 장비 관련회사들은 중국 반도체 굴기의 수혜를 보고 있었다. 2019년에 우리 반도체 관련 수출품의 57%가 중국과 홍콩에 수출될 정도였는데, 이들도 대중국 규제로 피해를 봤다.
중국의 주요 반도체 교역 상대국은 한국, 대만, 일본, 아세안이다. 2019년에 한국과 810억 달러, 일본과 240억 달러, 대만과 1200억 달러, 아세안과 900억 달러의 교역을 하고 있었다. 지난 20~30년간 중국 반도체 시장은 한국, 대만, 일본의 해당업체들에게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매년 일정 수준의 수익을 꾸준히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상황이 다르다. 미국 반도체협회 추산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사이 반도체 교역규모가 170억 달러로 한중간 거래의 4분의1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거래규모가 작은 만큼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도 크지 않다. 미국이 중국을 제재할 경우 미국기업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안 기업들이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대중국 반도체 제재가 한정된 부문에서만 진행됐다. 중국이 세계 반도체 시장의 최대 수요자인 상황에서 이 시장과 거래를 막을 경우 중국과 교역을 하는 많은 기업들이 피해를 보게 되고, 그러면 반발이 세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 있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장비회사 ASML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 동안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규제에 따라 중국에 극자외선(EUV) 장비 수출을 억제해왔는데, 최근에 네덜란드 정부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중국과 거래를 재개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ASML이 제재에서 빠져 나갈 경우 대중국 반도체 규제라는 공동전선이 무너질 수 있어서 이들의 존속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구조 때문에 대중국 반도체 제재대상을 고부가가치제품과 기술거래로 한정하고 있는데, 그래도 대중국 반도체 교역 규모 축소를 피할 수 없다.
우리에게 미·중 기술분쟁은 이미 현실이 됐다. 11월 한 달 동안 70억 달러의 무역적자가 발생했다. 수출 감소는 지역별로 중국, 품목별로 반도체의 영향이 크다. 대중국 수출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5% 줄어드는 동안, 반도체 수출도 27% 감소했다. 세계 IT경기 부진과 함께 미·중 분쟁의 영향이 우리 반도체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분쟁이 이어 미국이 우리나라에게 '칩4동맹' 가입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대만-일본을 하나의 블록으로 묶는 거니까 미국이야 좋겠지만 중국과 거래를 해야 하는 우리 반도체업계로서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종우
애널리스트로 명성을 쌓은 증권 전문가다. 리서치센터장만 16년을 했다. 장밋빛 전망이 쏟아질 때 그는 거품 붕괴를 경고하곤 했다. 2000년 IT(정보기술) 버블 때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용감하게 외쳤고, 경고는 적중했다.경제비관론자를 상징하는 별명 '닥터 둠'이 따라붙은 계기다.
그의 전망이 비관 일색인 것은 아니다. 거꾸로 비관론이 쏟아질 때 낙관적 전망을 내놓은 경우도 적잖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 결정 직후 비관론이 시장을 지배할 때 정작 그는 "하루 이틀이면 진정될 것"이라고 낙관했고, 이런 예상 역시 적중했다.
△ 1962년 서울 출생 △ 1989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 1992년 대우경제연구소 입사 △ 2001년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 △ 2007년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 △ 2011년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 △ 2015년 아이엠증권 리서치센터장 △ 2018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 저서 <기본에 충실한 주식투자의 원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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