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판매 '불티'…스몰럭셔리의 행복감
국민의 양극화 인식은 실제보다 악화
부유층의 기부문화, 어느 때보다 절실 유명 호텔의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서울신라호텔, 조선 팰리스, JW메리어트호텔 등이 한정판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예약판매하면서 빚어지는 소동이다.
놀라운 것은 이들 케이크가 한결같이 고가라는 사실이다. 신라호텔과 조선 팰리스가 내놓은 케이크는 가격이 무려 25만 원에 달한다. 고가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시작되자 전화 주문이 1~2분 만에 수백, 수천 통씩 쏟아졌다고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몇 시간 동안 500번 넘게 전화를 걸어 예약에 성공했다는 경험담이 올라오고 있다.
유명 호텔의 고가 먹거리 소동은 여름철 애플 망고 빙수, 소위 애망빙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올여름에는 빙수 한 그릇 가격이 10만 원에 육박했지만, 이를 먹겠다는 사람이 몰려 주말이면 두, 세 시간씩 줄을 서야만 했다.
MZ 세대의 소비 트랜드 '스몰럭셔리'(small luxury)
이러한 현상을 두고 유통 전문가들은 스몰럭셔리라고 풀이하고 있다. 작다는 뜻의 '스몰'(small)과 사치를 뜻하는 '럭셔리'(luxury)가 합쳐진 단어로 본인이 좋아하는 명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건들을 구매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특히 MZ 세대에서 자신을 위해서 돈을 아끼지 않는 구매심리를 설명하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자동차나 의류를 사기에는 부담스럽기 때문에 수십만 원 정도의 소품이나 식료품 같은 것으로 사치를 부려 만족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명품 브랜드의 향수나 립스틱, 명품 이어폰 케이스, 명품 마스크 등에 이어 유명 호텔의 고가 먹거리가 스몰럭셔리의 대상으로 등장한 것이다.
SNS시대의 스몰럭셔리, 상대적 박탈감 조장 우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부유층의 고가 소비는 늘 있어 온 일이다. 수천만 원을 넘는 와인, 억대를 넘나드는 가방, 웬만한 아파트 가격을 넘는 자동차 등. 그럼에도 이런 소비는 그들만의 돈잔치일 뿐이었다.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부럽기는 하지만 자신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스몰럭셔리는 SNS와 합쳐지면서 얘기가 다르다. 각종 SNS에 애망빙을 검색하면 무수한 인증 샷을 볼 수 있다. 자신이 아는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십수만 원짜리 음식을 앞에 두고 행복해하며 찍은 사진을 하루에도 여러 번 접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의 월급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300만 원을 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일부에서는 저임금의 젊은이들이 점심은 편의점 도시락을 때우고 그 돈을 모아 한 번씩 스몰력셔리를 즐긴다고 하지만 이는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스몰럭셔리 인증샷을 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부럽기도 하고, 즐기지 못하는 자신이 한탄스럽기도 할 것이다.
우리나라 중산층의 절반, 자신을 하위층으로 인식
사회가 안정적이기 위해서는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즉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주인의식이 강해야 하는데 중산층이 바로 그런 계층이라는 얘기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정의한 소득 기준 중산층은 중위소득의 75%∼200%의 소득 계층을 말한다. 예를 들어 사회 구성원을 소득 기준으로 줄을 세워놓고 딱 중간에 위치한 소득이 100이라면 75에서 200까지의 소득자가 중산층에 해당한다.
그런데 지난 9월 NH투자증권이 조사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소득 기준으로 중산층에 해당하지만, 자신이 하위층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45.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 2명 가운데 1명은 자신을 하위층으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소비를 기준으로 중산층에 해당하려면 한 달에 427만 원은 소비해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실제로는 상위 9.4%의 소비 수준에 해당하는 것이다. 소비에 대한 눈높이가 지나치게 높아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구성원들이 체감하는 양극화, 빈부격차의 수준은 실제보다 더 악화돼 있다는 것이다.
양극화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귀결
배가 고픈 것은 참아도 배가 아픈 것은 참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고상하게 표현하면 상대적 박탈감을 참아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양극화에 대한 구성원들의 인식이 악화하면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지게 되고 이는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거나 자신에 대한 좌절, 비하로 귀결된다.
자신의 노력, 능력으로 고가의 소비를 즐길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근본적으로는 사회의 제도, 체제가 있었기에 지금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부유한 사람일수록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이 1대99의 극심한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부유층의 기부 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을 우리도 흘려들어서는 안 될 시점에 도달했다.
연말을 맞아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등장했고,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졌다. 올해는 특히 수원 세 모녀, 신촌 모녀 사건이 국민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이번 연말에는 SNS에 스몰력셔리가 아닌 기부, 도네이션 럭셔리의 인증사진이 올라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망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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