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신용자 불법 사채시장으로 밀려날까 우려
금융권별 차등 최고금리, 원가 연동 최고금리 고려해야 지난 문재인 정부를 겪으면서 좋은 의도로 시작된 정책이 최악의 결과를 빚는 것을 수차례 목격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이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왔고 임차인을 돕자는 임대차 3 법이 급격한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됐다. 또 탈원전 정책은 원전산업을 붕괴 위기로 내몰았고 한전의 대규모 적자로 이어져 채권시장까지 흔드는 사태를 빚고 있다. 이처럼 선한 의도로 시작한 정책이 경제나 국민에게 함정이 되는 사례는 흔하게 볼 수 있다.
비정한 결말이 우려되는 이자제한법
이러한 아픈 경험에도 불구하고 선한 의도로 포장됐지만, 비정한 결말이 우려되는 또 하나의 정책이 시도되고 있다. 바로 이자제한법이다. 법정 최고금리를 낮추자는 것이다. 법정 최고금리는 2002년 10월 대부업법과 관련된 법률이 제정되면서 등장했다. 당시 법정 최고금리는 연 66%였다. 그 이후 일곱 차례 시행령이 개정돼 계속 낮아져 왔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7월 연 24%에서 20%로 내렸다.
그런데 현재 국회에는 19건의 이자제한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법정 최고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20%인 법정 최고금리를 11.3%까지 낮추고 최고 이자율을 넘어선 대출 계약은 계약 자체를 무효로 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저신용자를 돕자는 착한 의도에서 나왔다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올지 모를 비정한 결과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지난해 법정 최고금리 인하 이후 11만 명 사채시장으로 내몰린 듯
신용이 낮은 사람이 급하게 돈이 필요해 은행을 찾아가면 대부분 문전박대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저축은행이나, 카드사, 캐피탈사와 같은 제2금융권을 기웃거리게 되고 거기서도 안되면 대부업체를 찾아가게 된다. 그나마 양심적인 대부업체에서 급전을 구하면 다행이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결국 불법 사채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대부업 이용자는 112만 명으로 집계됐다.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낮아진 이후 11만 명이 줄어든 것이다. 이 11만 명은 어디로 갔을까? 아마도 불법 사채 시장으로 내몰렸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KDI의 분석을 보면 법정 최고금리가 2%포인트 인하되면 2금융권에서 신용으로 돈을 빌린 사람 가운데 65만 명 정도가 대부업체나 불법 사채 시장으로 밀려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몇천%의 악덕 고금리가 횡행하는 불법 사채시장
포털에 법정 최고금리를 검색하면 불법 사채와 관련한 기사가 따라붙는다. 지난달 만해도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이 원금의 170배에 달하는 이자를 받아 챙긴 악덕 사채업자를 적발했다는 기사가 있다. 이자가 무려 3395%에 달한다. 이런 기사를 보면 대부분 사람은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고 막장에 몰린 일부 자영업자에게 한정된 비극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잘 나가던 자영업자나 직장인도 어느 순간 삐걱하면 사채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몇천%의 악덕 사채가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악덕 사채업자들은 법정 최고금리, 이자제한법을 비웃는다. 공증료라는 명목으로 수수료를 미리 떼는가 하면, 이자를 미리 받는 선이자는 물론, 매일 복리로 이자를 챙기기도 한다. 또 갚지 못한 이자를 원금에 포함시켜 다시 빌려주는 재대출을 통해 고리의 이자를 챙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사채에 발을 내딛는 순간 로또에 당첨되지 않으면 헤어나지 못하는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법정 최고금리 낮추는 것 신중해야
세상 모든 상품에는 원가가 있기 마련이다. 법정 최고금리를 적용하는 합법적인 대부업체의 원가를 계산해 보자. 요즘 같은 고금리 상황에서 조달 금리만 10%에 달한다. 여기에다가 중개 플랫폼 수수료 2∼3%를 더하고 대손 비용 8∼10%를 더한 것이 대출 원가에 해당한다. 현재 법정 최고금리 20%로도 남는 게 거의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법정 최고금리가 더 낮아진다면 합법적인 대부업체마저 작동을 멈추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당장 1000만 원이 필요한 저신용자가 돈을 빌리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법정 최고금리가 2%포인트 높아지면 1년 이자 부담이 20만 원 늘어나게 된다. 매월 내는 이자로 따져서는 만7천 원 정도다. 돈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에게는 이자를 더 주더라도 합법적인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다.
법정 최고금리 묶을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운용해야
지금 우리 경제의 빈부 격차와 극심한 자금 경색을 고려하면 이자제한법에도 혁신적인 정책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법정 최고금리를 은행에서부터 대부업체에 이르기까지 일률적으로 정할 게 아니라 금융권별로 차등을 두는 것도 각 금융권의 대출 여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다가 저신용자 급전 수요는 대체로 단기, 소액인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법정 최고금리의 예외 조항을 두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또 법정 최고금리를 특정 수준에 묶어둘 것이 아니라 시중 금리와 대부업체의 조달 금리 등을 감안해서 유연하게 운용하는 방안에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마치 코픽스에 연동해서 은행의 대출금리가 움직이듯이 법정 최고금리도 못 박지 말고 원가에 연동시키자는 것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것은 지금 같은 금리 상승기는 법정 최고금리를 낮춰서는 안 될 시점이다. 아무리 착한 의도로 포장됐다 하더라도 그 결말은 서민의 눈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기성
△ 서울대 사회학과 △ SBS 경제부장 △ SBS 뉴욕 특파원 △ SBS 보도제작국장 △ SBSCNBC 대표이사 △ TV조선 뉴스센터장 △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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