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의 경제분석] 다른 듯 같은 1997년과 2022년

UPI뉴스 / 2022-10-01 19:34:10
경제는 위기, 정치는 충돌…1997년과 2022년
고금리·고환율 위기 단기간에 극복될 문제 아냐
세계경제 패러다임 변화, 세계화 퇴조가 더 큰 문제
작금의 우리 상황을 보면서 기시감이 드는 것을 떨칠 수가 없다. 1997년 국가 부도로 내몰렸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르는 것은 과한 반응일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환율에다 반도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대한 암울한 전망, 여기에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은 문제없다는 경제 당국자의 발언까지 더해지면서 비극적 장면을 떠올리는 게 일부 비관적 인사들의 지나친 반응만은 아닌 것 같다. 

더구나 정치권의 극한 대립은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준석 전 대표를 둘러싼 여당의 갈등은 97년 당시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후보와 김영삼 대통령을 둘러싼 세력들의 다툼과 오버랩된다. 또 노란봉투법이나 양곡관리법을 두고 여야 간에 벌어지고 있는 한 치의 양보 없는 싸움은 국가 부도를 앞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던 노동법과 금융개혁법을 떠올리게 한다.

▲ 경제가 다시 위기다.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가 가계를 짓누른다. 1997년 외환위기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잔인한 계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고금리, 고환율 쉽게 끝날 문제 아니다
 

미국은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자 돈을 풀어서 위기를 극복했지만, 그 돈을 회수하는 시기를 놓쳤다. 그 결과 뒤늦게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그 폐해가 전 세계로 전이되고 있다. 금리 인상 속도가 다소 늦춰질 것이라는 기대도 9월 FOMC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연준 위원들의 점도표를 보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올해 남은 두 번의 FOMC에서 1%포인트 추가 인상이 가능해 보인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1992년 환투기 세력의 공격으로 휘청거렸던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로화는 이미 1달러=1유로의 패리티 라인이 힘없이 무너졌고 일본의 엔화는 1985년 플라자 합의 당시 엔·달러 환율 수준을 넘어섰다.

위안화의 국제화를 위해 달러당 7위안을 고수하던 중국도 결국 포치(破七·달러당 위안화 환율 7위안 돌파)를 용인하고 말았다. 그래도 이들 나라는 자국 화폐가 국제 결제 통화이거나 미국과 상시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고 있어서 힘들지만 버틸 수 있는 상황이다.

위기로 내몰리는 '약한 고리' 남아시아 신흥국

국제 금융위기가 확산하면 늘 소환되는 표현이 있다. 수영장에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했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약한 고리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다. 스리랑카는 이미 디폴트 상태에 빠졌다. 또 파키스탄과 라오스, 방글라데시 등도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 놓고 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봤던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약한 고리의 국가들은 달러가 빠져나가자 외환보유액이 급감해 바닥을 드러내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자 이제는 경제가 침체에 빠지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결국 자국의 통화가치가 폭락하고 외채부담이 급증하면서 부도 위기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 경제도 단기외채, 무역적자, 가계부채 등 위험요인 즐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달러당 1400원을 훌쩍 뛰어넘어 이제는 1500원을 우려하고 있다.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외환보유액의 경우 4364억 달러로 외환 위기 때보다는 20배 이상,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당시보다는 2배 이상 많아졌지만 국제결제은행 기준 적정 외환보유액(7839억 달러)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전체 외화부채 가운데 1년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단기 외채의 비중이 2017년 29.8%에서 41.9%로 높아진 것도 걱정하고 있다. 여기에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점도 대외 충격을 버틸 수 있는 우리 경제의 체력을 소진시키고 있고 고질적 문제인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를 뇌관으로 버티고 있다.

대외 건전성 지표는 안정적이라는 정부의 말을 믿는다 하더라도 지금의 고금리, 고환율이 지속한다면 언제라도 위기에 취약해질 수 있는 게 우리 경제의 현실이다. 더구나 우리 경제는 소규모 개방 경제여서 환투기 세력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강달러, 미국에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강달러가 미국에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지금 강달러는 미국의 수입물가를 낮춰 인플레이션 억제에 도움이 되지만 강달러는 미국의 경상 수지를 악화시킬 것이다. 또 강달러를 촉발하고 있는 고금리는 미국 경제를 침체로 몰고 갈 것이다. 따라서 대비하고 버티면 강달러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빠르면 그 시기가 내년 상반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있는 게 사실이다.

또 미국도 강달러를 고민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미국은 각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비난해 왔다. 그런데 최근 일본이 외환시장에 개입해 엔화 가치를 지지한 것을 두고 미국이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외환 전문가들은 이를 주목한다. 강달러를 바라보는 미국의 복잡한 입장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는 변곡점이라는 게 더 큰 문제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에서 빚어지고 있는 문제는 비단 고금리, 고환율만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이 글로벌 경제의 틀,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이 주도해 온 자유무역의 시대가 그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경제는 1987년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다자간 또는 양자간 협상을 통해 자유무역을 강화해 왔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에 편입됐고 우리 경제는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세계 어디에서든 싼값에 원료를 조달해 제조하고, 또 어느 나라가 됐건 비싼 값을 주는 곳이면 팔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원칙이, 굳은 약속이 허물어지고 있다. 미국이 WTO(세계무역기구)를 남의 집 자식 취급하는 것은 오래된 일이고, 이제는 FTA(자유무역협정)를 맺은 우리에게도 미국 내에서 전기차를 만들지 않으면 보조금을 주지 않겠다고 한다. 또 인권이나 안보를 이유로 무역 거래를 제한하는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다. 자유무역은 세계 경제에서 퇴조하고 가치와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패권 경쟁과 보호무역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이런 혼란스러운 변화에 우리는 준비를 하고 있는가. 기업의 경쟁력과 특화된 기술로 세계 경제에서 입지를 확실히 하는 것이 필수적이겠지만 이는 충분한 준비는 아니다. 무엇보다 정부와 기업, 여당과 야당이 손잡고 격변하는 대외 환경에 대응해야 한다. 국가 전체의 대외협상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외교부 장관의 해임 건의를 지켜봐야 했고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를 두고 낯부끄러운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1997년, 국가 부도 위기를 불과 몇 달 앞두고도 정쟁에 골몰했던 몰이꾼들, 펀더멘털을 내세우며 안일하게 대처했던 경제 관료를 비난하고 경멸한다. 그런데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패거리에 둘러싸여 갈 길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 김기성 경제평론가

● 김기성

△ 서울대 사회학과 △ SBS 경제부장 △ SBS 뉴욕 특파원 △ SBS 보도제작국장 △ SBSCNBC 대표이사 △ TV조선 뉴스센터장 △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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