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비중 낮고, 2분기 호실적 불구 가격 인상
원자재 가격 안정되면 가격인하 유도 방안 필요 라면값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농심이 지난 15일 라면 25개 품목의 출고 가격을 평균 11.3% 올리면서 인상 대열의 맨 앞에 나섰다.
이후 팔도가 다음 달 1일부터 라면 가격을 9.8% 올리겠다면서 뒤를 따랐고 이어서 오뚜기가 다음 달 10일부터 라면류 가격을 11%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저렴한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대표적 서민 음식인 라면 가격의 도미노 인상은 물가 불안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환율 급등이 원인이지만 3분기 이후 급등세 꺾여
라면업계가 주장하는 가격 상승의 원인은 밀가루와 팜유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이다. 이 두 품목이 라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가 넘는다. 이 두 품목은 작년 3분기 이후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해 올 1분기와 2분기에는 급등세를 보였다.
라면 회사의 경영 상황을 옥죌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라면 회사들이 잇따른 가격 인상을 마냥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 적지 않다.
첫 번째는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3분기 이후 꺾이고 있다는 것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은 3개월 정도의 시차를 두고 제품 원가에 반영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2분기가 원가 부담의 꼭짓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3분기 이후에는 제조원가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이러한 예상은 증권사들의 실적 전망치에서 나타나고 있다. 농심이 가격 인상을 발표하기 전에 작성된 증권사 리포트를 보면 농심의 실적은 3분기부터 개선 흐름이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라면 가격을 올리지 않더라도 실적 회복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면 과연 지금 라면값을 올리는 게 타당하냐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원자재 가격 인상과 환율 상승이 라면 업체에 미치는 영향은 각양각색
라면값의 도미노 인상이 마뜩잖은 또 다른 이유는 라면 회사마다 상황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국내 1위 라면 업체인 농심은 전체 매출에서 라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93%에 달하고 또 라면의 내수 비중이 90%를 넘는다. 원자재가 오르고 환율이 급등하면 고스란히 실적 악화로 이어지는 사업 구조인 것이다.
해외법인을 포함한 농심의 2분기 매출은 17%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76%가 줄어들었다. 특히 국내 부문만 따로 떼서 보면 영업이익이 24년 만에 적자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3위 업체 삼양식품도 라면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7.5%로 압도적으로 높다. 농심과 마찬가지로 밀가루와 팜유 가격 상승을 피할 수 없는 구조로 돼 있다. 그러나 삼양식품은 라면 매출 가운데 수출 비중이 61.6%에 달한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더라도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쪽에서의 수익 증가로 커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양식품은 이러한 사업 구조 덕분에 2분기 매출은 1년 전 대비 73% 늘었고 영업이익은 92%나 급증했다. 삼양식품은 아직 라면값 인상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오뚜기, 2분기 매출·이익 모두 증가…라면 매출비중도 25.5%에 불과
문제는 이번에 가격을 올린 오뚜기다. 라면 판매 2위 업체인 오뚜기의 경우에는 라면의 매출 비중이 25.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각종 소스류와 육가공 제품, 냉동 제품 등이 차지하고 있다. 오뚜기 홈페이지에 소개된 제품만 보더라도 12개 제품군에 928개 제품에 달한다.
더구나 이 제품들은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B2C 제품뿐 아니라 자영업자에게 공급하는 B2B 시장에서도 상당한 시장 장악력을 가지고 있다. 원자재 가격 급등의 충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오뚜기의 2분기 매출은 7893억 원으로 18% 늘었고 영업이익도 31.8%가 증가한 477억 원이었다. 그래서 라면값을 11%나 올려야 할 만큼 급박한 상황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오뚜기의 가격 인상도 수긍하기 어렵지만, 삼양식품도 곧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 업체가 제품가격을 올리면 시차를 두고 다른 업체들이 뒤따르는 것이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오리온, 원자재 가격 안정되면 가격 인하 약속
식품업체들은 지금까지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제품값을 올리지만, 원재료 가격이 안정됐다고 제품가격을 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지난 13일 오리온 제품가격 인상을 단행하면서 눈에 띄는 약속을 내놨다.
다시 원자재 가격이 안정되면 제품가격을 도로 내리거나 용량을 늘리겠다고 밝힌 것이다. 약속이 지켜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이 정도의 진정성을 보여야 고물가 시대를 사는 소비자들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식품업계에 가격 인상 경고 메시지
정부는 식품업계를 겨냥해 경고의 메시지를 날리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식품업체를 직접 거론하며 최근 잇따른 가격 인상에 대해 물가점검반을 통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가격안정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정부가 민간 부문의 가격에 대해 직접 개입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는 40년 만에 세계화가 후퇴하는 커다란 변곡점에 맞닥뜨려 있다. 지금까지의 시장 원칙이나 가격 논리가 일부에서 먹히지 않는 것이 낯설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일부 서구 국가들이 횡재세 도입을 논의하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도 원자재 가격 상승을 빌미로 비정상적으로 수익을 올리는 기업에 대해서는 대응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 김기성
△ 서울대 사회학과 △ SBS 경제부장 △ SBS 뉴욕 특파원 △ SBS 보도제작국장 △ SBSCNBC 대표이사 △ TV조선 뉴스센터장 △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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