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의 경제분석] 수원 세 모녀 사건, 또 드러난 복지 사각지대

UPI뉴스 / 2022-08-23 16:56:30
8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과 판박이
우리사회는 8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적극적 복지 서비스 제도 확충 시급
또 안타까운 죽음이 우리 모두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수원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60대 여성과 40대 두 딸, 세 모녀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엄마는 암 진단을 받아 치료 중이었고 두 딸 역시 각각 희귀 난치병을 앓고 있어서 일상생활이 어려웠다고 한다.

마지막 남긴 유서에는 지병과 빚으로 생활이 어려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40만 원인 월세조차 제때 내지 못할 만큼 생활고에 시달려 왔다고 한다. 경제적 어려움이 극심했음에도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아 관할 지자체에서도 이들의 사정을 모르고 있었다.

이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8년 전인 2014년에 있었던 송파 세 모녀 사건과 판에 박은 듯 꼭 같은 처지에서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송파 세 모녀 역시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질병을 앓고 있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와 자치단체가 구축한 어떤 사회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당시 세 모녀의 죽음은 우리 사회안전망의 한계를 드러낸 대표적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복지제도에 대한 보완이 이뤄졌지만 왜 8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우리는 과연 8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목숨을 끊어야 할 만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들을 위해 우리가 한 것은 무엇인가? 또 앞으로 8년이 흘렀을 때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준비를 하고 있는가?

▲ 2014년 3월 5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 관련 추모의식 및 기자회견' 모습. 세 모녀 사건은 그해 2월 26일 서울 석촌동의 단독주택 지하1층에 사는 박 모 씨와 두 딸이 생활고를 겪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뉴시스] 

국민 15.3%가 상대적 빈곤층…이들중 지원 못받는 이들이 10.7%

20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상대적 빈곤율은 15.3%이다. 이는 중위소득의 50% 이하인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중위소득이란 전체 가구를 소득 순위에 따라 줄을 세워 놓고 딱 가운데 있는 가구의 소득을 말한다. 물론 상대적 빈곤율은 2014년 18.2%에서 8년 동안 많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OECD 평균이 11.8%이고 복지 선진국의 경우 5∽10%인 점을 감안하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게 사실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소득 불평등이 심해서 어떤 가구의 소득이 중위소득의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은 실제로는 절대빈곤에 가까울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중심축인 생계급여는 중위소득의 30%를 기준으로 지급되고 있다. 2021년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236만 명이고 이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6%이다. 그렇다면 상대적 빈곤층 15.3%에서 4.6%를 뺀 나머지 10.7%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마도 극심한 생활고에서 또 다른 수원 세 모녀, 송파 세 모녀의 비극이 재연될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급 대상자 늘고 수급액 올려도 여전한 사각지대

정부는 최근 기초 생활 수급자 선정 기준이 되는 내년도 중위소득을 올해보다 5.47% 올렸다. 수급 가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1인 가구 기준으로는 6.48% 인상했다. 현재의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인 맞춤형 급여 체계로 전환된 2015년 이후 가장 큰 인상 폭이다. 또 복지 사각지대의 원인으로 지목돼 온 비수급 빈곤층을 줄이기 위해 부양의무자 규정을 단계적으로 폐지해 왔다. 그 결과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수급 금액은 늘어났고 앞으로도 이런 식의 제도 보완은 계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 수원 세 모녀 사건에서도 나타났듯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임에도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수원 세 모녀는 지자체에 기초생활 수급 등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상담한 적이 없었다. 이처럼 제도를 몰라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단전, 단수와 건강보험료 등의 정보를 활용하지만, 이것 역시 수원 세 모녀의 경우 무용지물이었다. 

수원 세 모녀는 10여 년 전부터 화성시에 있는 지인 집에 주소 등록을 해 놓은 상태에서 2020년 2월 수원의 현 주거지로 이사했는데 당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 건강보험공단은 보험료 16개월분이 체납된 사실을 화성시에 통보했고 화성시는 직접 주소지로 방문했으나 그곳에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발길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복지 지원 서비스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게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이다. 지원이 필요한 빈곤층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회안전망의 확충이 시급하다는 것을 수원 세 모녀 사건이 다시 확인시켜 준 것이다.

빈곤문제는 경제와 일자리, 복지제도가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국민의 15.3%에 달하는 상대적 빈곤층 모두를 수급 대상자로 보호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빈곤 문제는 복지 제도만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경제가 활성화되고 양질의 일자리가 확충돼야 한다. 이런 기초 위에서 상대적 빈곤율을 낮춰야만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히고 생계급여액도 늘려갈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비교적 쉽게 수급자로 진입할 수 있게 하는 대신에 근로 능력이 있는 수급자는 일정 기간 이후에 '탈수급'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쪽으로 제도를 보완해야 할 것이다. 다만 부정수급에 대한 방지 장치는 정부가 마련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복지 제도가 세금을 내는 국민에게서 동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1950년대의 초상집- 가난은 숙명인가?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 문제는 정부의 숙제임이 틀림없다. 여기에 하나를 더 한다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살피는 긍휼의 문화가 정착돼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청마 유치환 시인의 '초상집'이라는 시를 보자. 무려 60여 년 전의 작품이지만 가난과 그에 따른 비극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경제가 발전해 살만해졌다는 지금도 초상집에 등을 달아줄 수 있는 상련의 마음을 갖길 다짐해 본다.

초상집 / 유치환

기척 없이 짙어 오는 푸른 저녁의 푸른 어둠이 옷자락에 묻는 호젓한 골목길, 
이따금 지나치는 이도 없는 그 돌다리목 한 오막사리 문전에 
상중이라 등 하나 내걸려 밝혀있고 
상제도 곡성도 문상도 없는 가엾은 초상집 

늙은 홀어미에 소박더기 딸, 그리고 그의 철부지 딸, 
셋이 서로 쳐다만 보고 불꺼진 듯이 살다 
그 젊은 소박더기가 그만 죽은 것이다.

아까사 언짢아하는 한 이웃 영감이 등 하나 들고 와 문전에 밝혀주고 가고, 
단간방 한옆으로 아무렇게나 눕혀둔 그 지지리도 못났던 목숨의 숨 끊어진 딸년을 두고,

그 또한 딸년 못잖은 기박으로 오직 쇠꼬치같이 모질음만으로 살아온 늙은 어미는 
이내 몹쓸년! 몹쓸년을 뇌이고 있고,
이미 뱃속에서부터 생겨선 안 될 것이 생겨서 
어느 뉘게서도 한 번이고 따뜻이 안겨본 적이 없는 천덕이 손주년은 
한구석에 푸새처럼 꾸겨져 소리없이 흑흑거리기만 한다.

이밤은...어느 세상과도 무관한 이 밤은 적적히 제대로 깊어가기만 마련인데 
때않이 등 하나 호젓이 밝혀진 이 골목길 오막사리 문전에는
우러러 보아도 보아도 칠흑같은 하늘에 바눌귀 같은 별 하나 안 보인다. 

▲ 김기성 경제평론가

● 김기성

△ 서울대 사회학과 △ SBS 경제부장 △ SBS 뉴욕 특파원 △ SBS 보도제작국장 △ SBSCNBC 대표이사 △ TV조선 뉴스센터장 △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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