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화 거버넌스, 과다확신·집단사고의 오류 위험성
다원적 가치 담아야 진정한 보수·진보 가치 추구 가능 미국 최고법원인 연방대법원(US Supreme Court)이 지난달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이목을 끌며 큰 파장을 가져온 판례들을 쏟아냈다. 1973년 이후 미국에서 50여 년간 유지되어온 여성의 헌법적 권리에 관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의 파기,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미 환경보호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의 탄소 배출 규제 권한을 제한하는 판결, 지난 100여 년간 공공장소에서의 총기 휴대를 규제해온 뉴욕주 총기법에 대한 위헌 판결 등이다.
그간 미국인들의 다수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되어 왔다. 기후위기 대응에 소극적이었던 트럼프 행정부 시절 갤럽이 실시한 조사에서조차도 73%의 미국인들이 더 강력한 환경규제가 필요하다고 응답했고 당시 응답자의 절반은 집권여당 지지자들이었다. 현재 총기를 소유하지 않고 있는 미국 가정이 60%로서 1960년의 50%보다 오히려 높아졌을 정도로 총기규제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금번 일련의 연방대법원 판례들이 바이든 행정부의 정치적, 정책적 기조와 배치됨은 물론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일반 미국인들의 현실 인식과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미국의 정치동향과 들끓는 여론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국제적인 파장 또한 만만치 않다. 기후위기 대응에 앞장서 온 유엔이 사무총장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미 최고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한 실망과 우려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세계 1위 탄소 배출국인 중국이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2위 탄소 배출국인 미국을 비판하는 다소 역설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이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슬로건만 외칠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책무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파리기후협약(Paris Climate Accord)에 복귀하는 등 기후위기 대응에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고 선언했던 바이든 미 대통령을 한껏 겨냥하는 모양새다.
정치적 또는 정책적 방향성 차이 등을 감안해서 보더라도 세상 사람들의 보편적 인식이나 가치관과 다소 괴리가 느껴질 수 있는 판결들이 세상사의 가치 판단에 관한 최고 수준의 현자들이 모인 최고법원에서 이처럼 연달아 나오게 된 배경은 어떤 까닭일까.
미 연방대법원의 구성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긴즈버그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2020년 10월 배럿 현 대법관이 임명되면서 보수 대 진보 구도가 6대 3으로 재편되었다. 1930년대 이후 최대의 보수 우위 구도라고 평가받고 있다. 금번 연방대법원의 보수 일색 판결들이 압도적 보수 우위인 현 거버넌스와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세간의 인식인 듯하다.
미 연방대법원의 거버넌스 구조를 살펴보면 전형적인 집권화(centralization) 모델임을 알 수 있다. 중앙정치권력의 핵심인 대통령 및 연방상원에 의해 대법관 임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미 연방헌법은 대통령이 대법관을 지명하고 연방상원의 조언과 동의를 받아 임명토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대법관 임명이 공화당(Republican)이냐 민주당(Democrat)이냐 하는 정치적 선호의 영향 등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거버넌스 구조이다.
한편 유럽의 경우 유럽최고법원(European Court of Justice)의 거버넌스 구조는 미국과는 달리 분권화(decentralization) 모델이다. 미국처럼 정치적 선호의 영향을 받기보다는 초국가적(supranational) 질서 형성 메커니즘 관점의 평등한 국별 배분에 기초한 분권화를 추구한다. 유럽연합(EU) 회원국별로 각 1인을 평등하게 배분하는 방식으로 최고법원의 거버넌스를 구성하도록 유럽공동체설립조약이 규정하고 있다.
거버넌스의 집권화 또는 분권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특성을 지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집권화 모델에서는 정치사회적으로 동질적인 성향을 지닌 구성원들로 거버넌스가 형성될 개연성이 있어 의사결정의 효율성이 높아질 수도 있지만 과다확신(hubris) 또는 집단사고(group thinking) 오류를 초래할 위험성 또한 커질 수 있다.
반대로 분권화 모델에서는 이와 같은 오류가 발생할 위험성은 상대적으로 덜할 수 있지만 의사결정의 효율성은 낮아질 수도 있다. 집권화 모델이든 분권화 모델이든 각기 장단점(pros and cons)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최소화하는 데 거버넌스 구성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한국의 경우 최고법원의 거버넌스 구조는 추천제도와 대법원장의 제청이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중앙정치권력에 의해 결정되는 집권화 모델에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집권화 모델의 위험요소인 과다확신 오류 또는 집단사고 오류 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적 지혜를 모색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거버넌스의 스펙트럼을 다양화하고 균형을 도모하는 제도운영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보수 대 진보의 이분법적 구도로 세상사의 가치 판단을 획일화하기 어려운 변화의 시대, 진화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유권자들은 더 이상 이분법적 선택의 민주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 보수이거나 진보이면서도 각기 다양한 스펙트럼을 발휘할 수 있어야 보수와 진보의 진정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
미 연방대법원의 금번 판례들은 관련 헌법적 견해나 정치사회적 파장에 대한 평가를 떠나 최고법원의 거버넌스에 다원적 가치를 담는 스펙트럼이 필요함을 일깨워주면서 동시대의 사법제도 운영에 관한 복합적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조홍균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원장/美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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