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재벌가 기업 지배권 승계 '건재'
비상장사로 이익 빼돌리기가 대표적 수법 기업인들이 모이면 꼭 나오는 불만 중에 하나가 상속세율 문제다. 실제로 우리나라 상속세는 세계 최고일 만큼 높은 게 사실이다. 명목상의 최고 세율은 50%에 달하고 최대주주 할증을 포함하면 60%에 달한다.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더라도 지분 50%를 가진 창업주가 2세에게 승계하면 지분은 20%로 줄어들게 되고 3세로 이어진다면 8%로 쪼그라들게 된다. 사실상 기업을 지배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재벌 2세, 3세의 승계는 흔한 일이고 이제는 4세도 기업에 대한 지배권을 놓치지 않고 건재하고 있는 경우도 등장하고 있다. 과연 어떤 비법이 있길래 가능한 일일까?
아세아 그룹의 터널링-이익 빼돌리기
대표적인 수법이 바로 터널링이다. 대주주 일가가 보유한 비상장사로 상장사의 이익을 빼돌리는 것을 말한다. 상장사의 이익은 주주에게 배분되거나 투자에 사용돼야 하지만 회사 지하에 터널을 뚫어 비상장 친족 회사가 그 이익의 상당 부분을 가로채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터널링이 최근 주식시장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바로 아세아 그룹이 터널링을 의심 받고있는 것이다.
아세아 그룹에는 삼봉개발이라는 특수관계 회사가 있다. 이훈범, 이인범, 이현범 등 아세아 그룹의 3세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2002년에 자본금 2억 원으로 설립된 삼봉개발은 아세아시멘트가 소유한 경주월드를 위탁 운영하고 있다. 또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빌딩, 아세아 타워도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막대한 돈을 벌었다. 2021년 말 기준으로 자본 총계가 235억 원이고 이익잉여금이 227억 원에 달한다. 이 돈을 배당형태로 3세에게 나눠 주고 있는 것이다. 2020년과 2021년 두 해에 걸쳐 30억 원을 배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기 순이익 중 주주에게 배당하는 비율을 말하는 배당성향으로 따지면 3년 평균이 무려 86%에 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세아 그룹이 원래 배당에 후한 회사일까. 그건 아니다. 지주사인 아세아의 배당성향은 2020년 8.8%에 불과했고 2021년에는 5.3%로 더 줄어들었다. 대충 계산해도 삼봉개발의 배당성향이 지주사보다 13배나 높은 것이다. 친족에게 상장사의 재산 관리와 운영을 맡겨 엄청난 돈을 벌게하고 그 돈을 배당이라는 형태로 빼돌린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이에 사모펀드인 VIP자산운용이 아세아에 대한 지분을 높이면서 터널링을 문제삼고 나선 것이다.
터널링은 개미들을 착취하는 수단
이러한 터널링은 곧바로 소액주주, 개미들의 피해로 돌아간다. 상장사의 이익으로 계산돼 개미들에게도 합당한 배당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오너 3세들이 가로채는 꼴이다. 개미들의 피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상장사의 쥐꼬리 배당은 주가에 반영돼 주가는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
상장사 중에 아세아 그룹과 비슷한 사업구조를 가진 한일홀딩스라는 회사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아세아 그룹에 아세아시멘트가 있다면 한일홀딩스에는 한일시멘트가 있다. 또 아세아 그룹의 경주월드처럼 한일홀딩스에는 서울랜드가 있다. 지주회사인 아세아와 한일홀딩스 모두 인적분할을 거쳐 지주회사가 됐다는 점도 판박이로 꼽힌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한일홀딩스는 배당에 후하다는 것이다. 한일홀딩스의 최근 3년 배당성향은 41%에 달한다. 아세아의 배당성향의 7배에 달하는 수준인 것이다. 이는 곧바로 주가로 연결된다.
주가의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로 PER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말로는 주가수익비율. 즉 주가가 이익의 몇 배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그 회사의 주가가 저평가됐는지, 고평가됐는지를 따지는 기준이 된다. 그런데 작년 말 기준으로 한일홀딩스의 주가수익비율은 9.25인데 비해 아세아는 2.34에 불과하다.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단순화해 말한다면 아세아가 터널링 같은 것으로 이익을 친족에게 빼돌리지 않고 배당도 한일홀딩스만큼 했다면 아세아의 주가는 지금보다 4배는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아세아의 터널링은 삼봉개발에서 그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2세인 이윤무 명예회장이 100% 지분을 가진 부국레미콘이라는 회사가 있다. 레미콘 회사인 만큼 아세아시멘트와 특수관계이리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회사는 2021년에 이윤무 회장에게 당기순익의 20%가 넘는 2억5000만 원을 배당했다. 그 한해 전인 2020년에는 배당 성향 13%에 역시 2억5000만 원을 지급했다. 이익이 얼마가 나든 매해 2억5000만 원씩 이윤무 회장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일종의 현금 인출기인 셈이다.
터널링은 재벌 상속의 수단
친족이 보유한 비상장사에 일감을 몰아줘 배당금을 많이 받아서 일시적으로 배를 불리는 것은 하수에 속한다.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상속세를 피해 가거나 상속세를 내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데 이 터널링이 악용돼 왔다.
우리가 알다시피 삼성그룹의 삼성SDS가 그룹의 IT 관련 업무를 독식했다. 삼성SDS는 총수 일가가 주식을 보유한 비상장사로 출발했다. 당연히 엄청난 수익을 올렸고 이후 주식시장에 상장해 상속의 중추 역할을 했다. 현대차 그룹 역시 현대글로비스라는 자동차 물류 회사를 만들어 일감을 몰아주고 실적이 급증하자 주식시장에 상장, 상속 발판으로 삼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밖에도 터널링이 상속에 악용된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이제는 재벌들의 일감 몰아주기 방식의 터널링은 법으로 금지돼 있고, 중견,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일감 몰아주기로 번 돈은 증여로 보고 높은 세금을 물리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벗어나기 위해서도 터널링 근절돼야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상장돼있는 기업들의 주가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는 말을 듣는다. 소위 코리아디스카운트라고 불린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지적되고 있다. 지정학적인 위험요소가 곧잘 거론되지만 대만의 경우를 보면 그것이 전부를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상장기업들이 주주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는 주주 친화적인 경영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터널링을 통해 빠져나가는 수익을 내재화하고 그 돈을 주주 배당에 사용한다면 주가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코리아디스카운트를 벗어날 수 있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이참에 징벌적 수준인 상속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에서 사라진 재벌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니까 남은 재벌들이 모두 탈법, 불법적인 수단으로 승계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사업을 키워서 경쟁력을 갖고 그를 바탕으로 2세, 3세에게 물려준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징벌적 수준의 상속세는 언제든 탈법적인 수단에 마음이 끌리게 만드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탈법적인 수단이 아니라도 사업을 제대로 키운다면 승계가 가능한 수준으로 상속세를 낮추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 김기성
△ 서울대 사회학과 △ SBS 경제부장 △ SBS 뉴욕 특파원 △ SBS 보도제작국장 △ SBSCNBC 대표이사 △ TV조선 뉴스센터장 △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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