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해피엔딩이 좋다, 완벽하게 꽉 찬"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2-04-11 10:14:51
30년차 기자 최현미 에세이집 '사소한 기쁨'
책과 더불어 사는 일상에서 길어올린 사유
순간순간 만들어내는 숱하게 많은 해피엔딩
"달콤함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
'해피엔딩은 빛나는 순간을 봉인해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사랑은 궁극적으로 비극일 수밖에 없다. 지지고 볶고 생활의 때가 묻기도 하지만,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의 끝은 결국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 이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해피엔딩은 인생에서 만나는 아주 아름다운 한순간이다. 우리의 행복은 순간에 존재한다.'

▲일상에서 발견한 사소한 기쁨들을 에세이에 담아낸 최현미. 새벽달을 보며 30년째 출근해온 그는 "억대 연봉을 준다고 해도 이 기쁨들과는 바꿀 수 없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에세이집 '사소한 기쁨'(현암사)를 펴낸 최현미에 따르면 다양한 이야기의 해피엔딩은 사실 끝이 아닌 잠정적인 한 순간일 따름이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이른 동화와 소설과 영화의 남녀들이 이후에도 영원히 행복하리란 보장은 하기 힘들다. 모든 진짜 엔딩은 죽음이고, 이별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최현미는 '해피엔딩이 좋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꽉 찬 해피엔딩'이라고 쓴다. 

'나는 그저 사랑이 가장 빛나는 그 순간을 간직하고 싶을 뿐이다. 그 이후에 일어났고, 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살짝 덮어두고 싶다. 그건 우리가 현실에서 보고 듣고 겪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엔딩은 오직 숨을 거두는 마지막, 그 단 한번만이 아니다. 인생의 순간순간 숱하게 많은 해피엔딩을 만들어 가질 수 있다.'

'입사 30년, 기자 생활 30년'에 접어든 시점에 에세이집을 펴낸 최현미는 오랫동안 책을 매개로 기사를 쓰는 일에 종사해왔다. 새벽달을 보며 출근하는 일상에서 발견한 '사소한 기쁨'의 목록들이 이 에세이집에 흥미롭게 진설돼 있다. 달콤함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는 이런 사유는 어떤가.

'분명한 건 도쿠에의 단팥 도라야키 덕분에 하루하루가 절망이었던 센타로가 인생의 달콤함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도쿠에의 단팥은 고통과 슬픔, 이별의 눈물이 함께 했지만 분명히 달콤했다. 센타로가 그 단맛의 감각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달콤함에 목매는 게 아니라 일상의 때가 묻고 많은 것들이 뒤섞여 있는 밍밍한 달콤함도 알아채는 감각 말이다. 어쩌면 인생의 달콤함은 느끼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인지 모른다.'

일본 소설 '앙-단팥 인생 이야기' 주인공 도쿠에의 말을 인용해 펼치는 '인생의 달콤함은 느끼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는 화두는 울림이 크다. 물리적인 달콤함이 그 자체로 행복이 아닌 건 알지만, 그 느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주체적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자각하기는 쉽지 않다. 일상의 달콤함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매순간 발견하고 수용하는 자세에 녹아 있다는 언설은 새삼스러운 위안을 준다. 

유원지에서 보는 '대관람차'에 대한 사유도 일상의 수레바퀴에 갇힌 이들을 사소하지 않게 위로하는 글이다. 그는 '다시 돌아가는 대관람차처럼'에서 "30대 한창 젊은 나이였는데 어이없게도 내가 굉장히 늙었다고 생각했다"면서 "땅에서 하늘로 올라갔다 꼭대기에서 다시 땅으로 내려오는 관람차처럼 나의 앞날도 같은 궤도를 지루하게 무한 반복할 것 같다는 감상에 젖었다"고 돌아본다. 지금 보면 "늙었다는 가당찮은 느낌은 사실은 너무 젊었기 때문인데, 너무 젊어서 그 뒤로 얼마나 긴 시간들이 있는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썼다. 

'이제는 하늘에서 땅으로 도착했다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관람차가 땅으로 떨어질 바윗덩이를 산꼭대기로 다시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무의미와는 다르다는 걸 알 것 같다. 때론 지치고 때론 힘들어도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다. 나의 페이스를 잃지 않고 나름의 최선을 다해 나의 삶을 쌓아가는 것이다. 유유히 돌아가는 관람차처럼 담담하고 단단하게.'

▲책을 매개로 일을 해온 최현미는 "단순히 불행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눈부신 행복이 가능하다"는 대목에 밑줄을 그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스무 개의 '사소한 기쁨'에는 최현미가 읽고 본 다양한 소설과 영화들도 더불어 녹아 있다. 그는 "만약 누군가 엄청난 연봉을 줄 테니 그 대신 사소한 기쁨들을 내놓으라고 한다면, 고민은 좀 해보겠지만 결국 거절할 것 같다"면서 "하루를 깨우는 커피 한 잔, 일을 끝내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시는 시원한 맥주, 서가 사이를 걸으며 꿈꾸는 백일몽, 강 건너 불빛을 보며 오늘도 수고 했다고 나에게 건네는 위로의 한마디를 포기할 순 없다"고 썼다. 

"이 책으로 큰 기쁨에서 작은 기쁨으로 옮겨가는 한 시기를 매듭 지으며 깨달은 건, 사소한 기쁨은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쓰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다. 덕분에 좋아하는 것들이 훨씬 분명해졌고, 그것들이 더 좋아졌다. 사랑받으면 예뻐지듯 나의 기쁨도 그랬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낼 때마다 행복했다. 그 자체가 큰 기쁨이었다. 역시 사소한 기쁨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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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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