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잘못된 길 갈 땐 '순응'대신 바른 말 하는 게 '충성' 지난 대선 기간 중 쏟아져 나온 수많은 말들 중 귀에 거슬리는 것들이 많았지만, 신선하거나 인상적인 말도 없진 않았다. 특히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 이낙연이 "대변인 논평이 저주의 경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팩트의 경연대회가 되어야 한다"거나 "절제력이 없는 분들은 방송에 출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게 좋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왜 대변인들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저주의 경쟁'을 한 걸까? 전반적인 선거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기에 그들은 자신도 알게 모르게 휩쓸려 간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에릭 펠턴의 ‹위험한 충성›, 브라이언 클라스의 ‹권력의 심리학›이란 책을 읽다가 전부는 아닐망정 일부는 사실상 '충성 경쟁'에 뛰어들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거 국면에선 상대편 후보나 정당을 향해 거칠게 말할수록 자기 진영의 대선 후보나 실세 정치인의 눈에 들 가능성이 높다 보니 "누가 더 세게 말하나" 경쟁이 벌어진 게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권력의 심리학›은 독재자들이 바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을 분류하는 충성심 테스트를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공개적으로 '친애하는 지도자'에 관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입 밖에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정권의 신뢰를 받아도 좋을 사람일 가능성이 더 크다. 말도 안 되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수 있는 부하는 투자해도 좋은 부하다."
히틀러에게 절대적 충성을 했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힘러는 자신의 부하들에게도 똑같은 충성을 요구했다. 그가 충성심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기 위해 사용한 유일한 기준은 비도덕적이거나 불쾌하게 여기는 명령을 내렸을 때 기꺼이 실행하는지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민주국가라고 해서 그런 충성심 테스트가 없는 건 아니다. ‹위험한 충성›에 따르면, 사석에선 말을 매우 거칠게 했던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은 "난 단순한 충성을 원하는 게 아냐. 진짜 충성을 원한다고. 대낮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내 똥구멍을 핥으며 꽃 냄새가 난다고 말할 수 있는 놈 말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리처드 닉슨의 충성에 대한 집착은 존슨보다 더 심했다. 닉슨의 백악관에선 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충성성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었다. 이런 충성 문화가 바로 워터게이트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 존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존슨에게 맹목적 충성을 했던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를 비롯한 고위 측근 인사들은 진실보다는 대통령의 심기 경호를 택함으로써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했고, 이는 존슨의 재선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지 않았던가.
측근 고위 인사들의 과잉 충성으로 인해 실패한 대통령들의 사례는 무수히 많으며, 한국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 당선인 윤석열은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그가 2013년 국정감사 때 했던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일부 비판자들은 공직자가 사람 대신 조직이나 국가를 충성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문제라는 식으로 비판을 하긴 했지만, 그리 큰 공감을 얻은 것 같진 않다.
정작 문제는 윤석열이 대통령으로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측근 인사들에게도 허용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미국 정치철학자 주디스 슈클라는 "좋든 나쁘든, 충성이 없으면 리더십은 존재할 수 없다"고 했는데, 수긍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과 더불어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충성, 정말 어려운 개념이다. 무조건 좋거나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다. 어떤 충성이냐가 중요하다. 좋은 충성이 있는가 하면 나쁜 충성도 있다. 충성에 대한 모든 논의에서 빠짐없이 거론되는 한가지 쟁점은 충성과 순응의 구별이다. 대통령이 잘못된 길로 갈 때엔 순응하지 않고 바른 말을 하는 게 충성이다. 그런데 문제는 잘못된 길인지 아닌지 그걸 판단하는 게 영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건 '충성심 테스트'가 아니라 '순응심 테스트'인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무조건 순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대통령은 실패하기 십상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대통령이 "일단 나를 믿고 따라오라"고 말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런 요청에 응하는 건 충성이지만 순응은 아니다. 그 사안의 결말에 따라 누가 옳았는지 검증과 책임 규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오류의 수정도 가능해진다.
대통령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곁에 두어야 한다. 권력의 속성상 그게 쉽지 않은 일이라면, 이른바 '악마의 변호인' 제도라도 원용해야 한다. 이 제도는 일부러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 때문에 곧 효과가 사라진다는 반론이 있는 바, 비공식적으로 쓴소리를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그런 사람들을 한사코 피하더라는 게 이미 상식으로 굳어질 만큼 확인되었지만, 정녕 '순응하지 않는 충성'을 원한다면 그 길 밖엔 없다. 충성 경쟁이 대통령을 망친다는 '진리'를 얼마나 수긍하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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