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적 중범죄자와 토론할 수 없다" 보다는
"자신 없으니 피하는 거 아니야"가 더 와닿아 '2000년 부시 대 앨 고어, 2016년 트럼프 대 힐러리'
TV토론이 열리기 전에 승부는 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앨 고어와 힐러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생이고,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데다, 부통령과 국무장관으로 국정에 직접 참여해 정책 이해도도 높았다. 게다가 앨 고어는 대단한 미남이기까지 했다. 부시는 이런저런 실수로 자질을 의심받고 있었고, 트럼프는 막말 때문에 대통령에 적합한지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TV토론은 예상대로 진행됐다.민주당 후보는 여러 사안에 대해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풀어낸 반면, 부시와 트럼프는 자주 버벅거렸다. 토론이 끝나고 유권자에게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이 뭐냐고 물었더니 부시가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입 풍선을 부는 모습이란 답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토론회 이후 호감도를 조사했더니 부시가 앨 고어를 압도했다. 앨 고어는 너무 똑부러져 인간적인 맛이 없는 반면, 부시는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모든 사안을 다 알 수 없는데 정책 좀 모르는 게 무슨 문제냐는 의견도 있었다.
대선 토론을 놓고 말이 많다. 야당에서 '확정적인 중범죄자'와 자리를 같이 할 수 없다고 얘기하자 여당은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냐는 반박을 내놓았다. 과거 대선에서 토론회가 항상 열렸던 건 아니다. 1992년 김영삼, 김대중 후보가 맞붙었을 때 김영삼 후보가 끝내 토론에 응하지 않았다. 등록한 후보 모두가 토론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어 무산시켜 버렸다.
2012년은 법적으로 정해진 TV토론회만 열렸다. 두 경우는 토론회가 많지 않아도 문제되지 않았다. 김영삼, 김대중, 박근혜 후보 모두 수십 년간 정치를 해온 사람들이어서 유권자가 어지간한 내용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는 토론회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이다. 지난 대선 때 '제가 MB 아바타 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져 토론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의 전형으로 남았다. 유권자들이 후보를 잘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 것이다.
이번에 출마한 유력정당 후보 두 명은 의회정치를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심지어 윤석열 후보는 정치에 입문한지 6개월도 되지 않는다. 유권자들에게는 생소한 후보들인 게 맞다. 언론에서 이번 대선을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고 얘기하는 이유가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이 후보로 나온데다 선거라는 특성상 네거티브가 성행하기 때문에 비호감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토론을 통해 후보가 유권자에게 자기를 드러내는 과정이 더 필요하다. 국회의원처럼 작은 단위 선거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대통령선거는 결과를 만들 수 없다. 규모가 크기 때문인데 후보가 자기를 드러내 유권자들에게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토론은 피하는 사람이 구차해진다. '확정적 중범죄자'라는 논리보다 '자신 없으니까 피하는 거 아니야?' 라는 감성적 분석이 사람들에게 더 와닿는다. 정책 좀 모르고 실수 좀 하면 어떤가. 모르면 공부하면 되고, 진솔하게 얘기하다 보면 유권자들이 다 감안해 줄 텐데.
●이종우는
애널리스트로 명성을 쌓은 증권 전문가다. 리서치센터장만 16년을 했다. 장밋빛 전망이 쏟아질 때 그는 거품 붕괴를 경고하곤 했다. 2000년 IT(정보기술) 버블 때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용감하게 외쳤고, 경고는 적중했다.경제비관론자를 상징하는 별명 '닥터 둠'이 따라붙은 계기다.
그의 전망이 비관 일색인 것은 아니다. 거꾸로 비관론이 쏟아질 때 낙관적 전망을 내놓은 경우도 적잖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 결정 직후 비관론이 시장을 지배할 때 정작 그는 "하루 이틀이면 진정될 것"이라고 낙관했고, 이런 예상 역시 적중했다.
△ 1962년 서울 출생 △ 1989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 1992년 대우경제연구소 입사 △ 2001년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 △ 2007년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 △ 2011년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 △ 2015년 아이엠증권 리서치센터장 △ 2018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 저서 <기본에 충실한 주식투자의 원칙> 등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