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사랑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깨닫는 것"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1-05-24 11:04:07
재미작가 장은아 장편소설 '성북동 아버지'
가정의 달에 출간된 최루성 가족 이야기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니"

재미작가 장은아가 펴낸 '성북동 아버지'(문이당)는 가정의 달에 걸맞은 따스한 소설이다. 주인공 '수혜'의 삶이 기구해서 눈물짓다가 끝내 그녀가 깨달은 사람과 사랑에 대한 성찰 때문에 가슴이 더워지는 이야기다. 신산스러운 삶의 여로를 거쳐온 장년 세대에게 더 강하게 소구될 만하다.

 

한국의 모든 인연을 잊고 미국으로 건너가 살던 '수혜'가 어느 날 고모로부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는다. 고모는 '핏줄'인데 와서 마지막 모습을 지켜봐야 하지 않느냐고 울먹인다. 수혜에게 아버지는 성장기부터 멀리 있는 낯선 존재일 뿐이었다. 단지 '핏줄'이기에 그를 다시 찾아가 임종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건 억울한 일이었다. 자식을 지켜주지 못하고 버리는 부모도 핏줄이기에 용서를 받아야 하는가.

▲1990년 미국으로 건너가 글쓰기를 해온 재미작가 장은아. 그는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서러운 인생도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문이당 제공]

 

수혜는 먼저 엄마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여섯 살 어린 나이에 낯선 집 대문 앞에 버려졌다. 그 집은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의 누나, 고모의 집이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아버지 '수창'이는 같은 집에 더부살이하던 엄마 '애란'을 범해 자신을 배태시켰다. 아이를 지우려는 집에서 도피해 엄마는 홀로 자신을 낳았다. 이후 숨어 살면서 딸을 키우다 끝내 도망나온 집 앞에 수혜를 버렸던 것이다.

 

아버지 '수창'은 그를 좋다고 따라다닌 양가집 여자와 결혼해 '성북동'에서 잘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뜻밖에 나타난 수혜를 딸로 받아들이지만, 새엄마는 배신감에 고통받아 가정이 붕괴될 지경에 이르자 하릴없이 다시 고모 집으로 돌려보내진다. '매번 나와 마주칠 적마다 소스라치듯 놀라는 성북동 어머니의 눈빛도 싫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슬프고 미안한 눈빛은 더 싫었다. 아버지의 그런 눈빛이야 말로 나를 더 슬프고 초라하게 만든다는 걸 아버지는 알지 못했다. 내 존재 자체가 모두에게 상처가 된다는 사실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엄마에 이어 아버지로부터도 버려진 양상이다. 고모 집에서 어렵사리 성장해 대학에 다니면서 자취하며 만난 연인에게 말한다.

 

'너를 만나고 나서, 마침내 너를 만나고 나서 나는 기도하지 않았어. 더는 신에게 빌지 않기로 했거든. 어쩌면 신에게조차 너를 비밀로 하고 싶었는지도 몰라. 그래야만 너를 잃어버리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그래야 온전히 내 몫이 될 것 같았으니까.'

 

이 연인마저 수혜에게서 떠났을 때 간신히 그녀를 붙잡아준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와 함께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지금까지 모든 것을 기억의 무덤 속에 묻어둔 채 살아온 터였다. 그녀가 위독한 아버지를 만나러 다시 한국 땅을 밟으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모두에게 상처가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살아갈 힘을 유지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살아간다고 해도 가슴에 깊이 새겨진 내상은 두고두고 힘들게 할 터이다. 그런 마당에 자신이 버려진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사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세상에 두 번 태어나게 만드는 마법일 터이다. 

 

이 장편에 발문을 붙인 원로 문학평론가 김주연은 "억울할 수 있는 세상의 지탄과 불명예를 평생 소리 없이 감내하면서, 은밀하게 사랑을 실천해 나간 '성북동 아버지'는 사랑 없는 이 시대의 영웅"이라면서 "그에게 감동과 감사를 보낸다"고 썼다. 그는 "사랑은 주어짐이 아니라 깨달음"이라고 부기했다. 어린 엄마를 범하고 자신을 버렸다고 여긴 아버지가 왜 '영웅'인지는 독자들을 위해 함구하지만, 이 소설의 고갱이 한 대목만 소개하자면 이러하다.

 

'그랬구나. 모두가 너를 끔찍하게 사랑해 주신 분들이구나. 사람이 사랑이지.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니. 사람이야말로 사랑이고말고.' 

 

1990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저지에 살며 미주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고 국제펜클럽 재외동포 문학상도 수상한 장은아는 "하나의 사건 속에는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진실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으며 어쩌면 이 세상에는 진실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이 소설을 쓰면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크게 들리는 것보다 들리지 않는 미세한 소리에 집중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그가 덧붙이는 말.

 

"서럽지 않은 인생이 과연 있을까. 세상을 살면서 내 앞에 던져지는 눈물겹고 힘에 겨운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생각과 관점에 따라 인생의 정의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세상에 버려진 모든 '수혜'들에게 당신은 버려지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