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박준영 카드 철회…당청관계 바뀌나

허범구 기자 / 2021-05-13 13:58:46
당청 갈등 차단, 부정 여론 감안한 불가피한 선택
송영길, 초선 요구 관철…'당 중심' 당청관계 예상
임혜숙 살리기, 김부겸 인준 위한 선제 대응 분석도
靑 "문 대통령 종합판단…임·노 청문절차 완료되길"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거취를 '자진사퇴' 형식으로 정리한 것은 당청 갈등 확산을 서둘러 차단하려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경기지사가 1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현장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 보고'에 참석해 주먹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에선 야당이 사퇴를 요구한 '임·박·노'(임혜숙·박준영·노형욱 장관 후보자) 임명을 둘러싼 불협화음이 날로 커지는 양상이었다. 당내 초선의원 모임 '더민초'는 당 지도부를 향해 "최소한 1명 이상 지명철회를 요구해야한다"고 압박했다. 그러자 강병원 최고위원과 윤건영 의원 등 친문계는 13일 앞다퉈 반격을 가했다.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는 초선들이 공개 반기를 드는 초유의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임·박·노'의 국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송부를 재요청했는데도 초선들이 '임명 반대' 의견을 모은 것에 충격을 받은 분위기다. 대통령 고유 권한인 인사권에 대놓고 '항명'한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초선들 요구를 일부라도 들어주지 않으면 '반란'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게 청와대 판단으로 보인다.

초선들은 원내지도부도 모르게 비공개 온라인 회의로 '거사'를 도모했다고 한다. 그만큼 '임·박·노' 문제에 대해선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얘기다. 5선의 이상민 의원 등 중진과 재선 그룹에서도 공감대가 퍼진 상태다.

국민 여론도 부정적이다. 에스티아이가 지난 10, 11일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장관 후보자 3명에 대해 "임명해서는 안된다"는 응답은 57.5%로 나타났다.

임기말 문 대통령으로선 이런 당 안팎의 녹록지 않은 상황을 감안하면 '임·박·노' 임명을 밀어붙이기엔 정치적 리스크가 너무 큰 셈이다. 여당 내 반발 격화로 당청관계가 악화하면 국정 부감이 가중되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더욱이 송영길 새 대표는 청와대 우위의 당청관계를 '당 중심'으로 재편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송 대표는 재선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청와대의 명령에 당이 따라가는 식은 안 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송 대표에겐 '임·박·노' 사안은 시험대라 할 수 있다. 더민초가 최소한 1명 이상 낙마를 요구했고 당 지도부는 청와대에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송 대표가 '당심'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고 문 대통령은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임기 4년 간 청문보고서 송부를 재요청한 뒤 지명철회를 한 적이 없다. 박 후보자 낙마는 형식이 자진사퇴이지만 내용은 사실상 지명철회로 여겨진다. 그런 만큼 인사권 행사에서 '고(go)'로 일관하던 문 대통령이 처음으로 후퇴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을 계기로 국정 운영 스타일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일단 여당이 그동안 '청와대 2중대'를 자처하며 국정을 뒷받침하는 수직적 당청관계는 재정립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송 대표 체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부동산 대책을 비롯해 정책 전반의 기조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송 대표는 청와대와의 힘겨루기에서 밀리지 않고 당 의견을 관철했다는 점에서 주도권을 쥘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당의 목소리를 높이고 반영하는 시도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송 대표는 이날 박 후보자 사퇴 표명 관련해 "배우자 도자기 수입 문제는 국민 눈높이에 안 맞는 부분이 일부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당 중심의 대선 준비 등 당 주도 당청 관계에 대한 의지도 재차 표명했다.

송 대표는 "코로나 시국에 축적된 연구조사 등을 바탕으로 앞으로 당이 주도하는게 가능하니 실력을 쌓자"고 말했다. 이어 "당 중심의 대선 준비도 필요하다"고 했다.

박 후보자 거취 정리에는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 셈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다음주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출국을 앞둔 상황에서 '총리 공백'은 안된다는 여권 내 기류는 강경하다.

민주당은 단독으로라도 김 후보자 인준을 강행할 태세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임·박·노'를 연계하며 김 후보자 인준에 반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박준영 카드'를 접어 김 후보자 인준을 위한 여당의 부담을 덜어준 격이다.

문 대통령이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후보자를 지키기 위해 박 후보자를 희생시켰다는 분석도 나온다. 낙마 요구의 불길이 여성인 임 후보자에게 쏠리는 걸 막기 위해 선제적 대응을 했다는 것이다. 여성 인재를 중시하는 문 대통령 스타일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없지 않다.

임 후보자는 해외 출장에 가족을 동반하고 아파트 다운계약을 하는 등 각종 의혹으로 야당의 낙마 리스트 1순위에 올라있다. 배우자 문제로 낙마한 박 후보자에 비해 임 후보자는 대부분 당사자 의혹이라 사안이 더 중하다는게 중평이다.

문 대통령 의도가 그렇다면 국정 기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박 후보자 사퇴가 '국민 눈높이'에 맞춘 읍참마속이 아니라 궁여지책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박 후보자는 청와대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자진 사퇴 결론을 내렸다"며 "국민 여론, 국회·여당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밝혔다.

한 고위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저희로선 본인이 그런 결단을 해줘서 대단히 고맙긴 하지만 마음이 짠하고, 언제 어떤 형태인지 말씀드리는 건 좀 양해해달라"고 했다.

그는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로, 이를 계기로 국회 청문절차가 신속하게 완료되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 후보자와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선 사실상 임명 수순을 밟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은 직접 지명한 3명의 장관 후보자에 대해 상당한 애정이 있다"며 "하지만 여론의 평가와 국회 청문절차를 모두 거쳐 최종 판단하겠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KPI뉴스 / 허범구 기자 hbk1004@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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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범구 /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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