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남탓'하는 비주류의식 '내탓' 책임의식으로 돌려야

UPI뉴스 / 2021-05-13 11:03:51
86세대의 뿌리 깊은 비주류의식
자신들의 비도덕성엔 면죄부 줘
사회에 대한 책임지는 자세 필요
지난 4·7 재·보궐 선거에서 20대 유권자가 야당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낸 걸 두고 '90년대생'의 정체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으며, 덩달아 586 세대가 다시 소환되기도 했다. 다음과 같은 기사 제목들이 그런 관심을 잘 말해준다.

<20대가 말하는 선거 결과…"적폐 등의 낡은 레토릭 우리에겐 안 통한다">, <20대에 대한 비난의 기시감>, <"불공정·젠더 문제 민감한 20대, 대선 때도 돌풍의 핵">, <"투표도 20대 답게…내 안에 진보도 보수도 함께 있다">, <야당 지지 20대, 보수화 때문 아냐…586 내로남불 심판>.

90년대생에겐 다른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그 어떤 특성이 있는가? 1994년생인 임명묵 작가가 최근 출간한 ‹K를 생각한다: 90년대생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는 이 질문에 답해준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하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어나가면서 곧 저자의 야심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한국이 겪은 변화를 통해서 미루어 보고, 그를 통해 다시 한국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고자 한다"며, '90년대생', 'K-방역', '다문화', '586 논란', '입시와 교육'이라는 다섯 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내용이 진부하지 않아서 좋다. 날카로운 비판 의식이 번득이면서도 '한국을 시대의 급류에서 맨 앞에 서게 한 요소'로 이해하려는 총체적 안목이 돋보인다.

저자는 "90년대생은 그들이 태어난 무렵부터 가속화된 (디지털 혁명 등과 같은) 여러 변화의 결과물로 형성된 일종의 '탈가치 세대'"라며 "90년대생이 '공정'에 민감한 이유는, 그들이 느끼는 불안 속에서 유일하게 예측 가능성을 제공해주는 국가 시스템, 즉 정서적 안정의 최소한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정보를 수집하고 폭력을 독점하는 국가의 힘이 신기술과 맞물려 어떤 식으로 발휘될 수 있는지 보여준 사건이지, 민주주의와 자유의 위대함을 알려준 사건은 결코 아니었다"며 기존의 자화자찬론에 일침을 가한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한 대목은 90년대생의 고난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정치권 586 세대의 '비주류 의식'이다. 저자는 "조국 사태는 여전히 독재와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 뜨거운 심장으로 살아가는 586이 실제로는 자산 증식과 계층 세습에 골몰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스테레오 타입을 드라마보다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며 "나는, 상위 1% 기득권을 비난하면서도 그들을 동경하고 모방했던,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계층 세습에는 어떻게든 도덕적 면죄부를 주려는 상위 10%, 20%의 감수성에 질겁했다"고 말한다.

공감한다. 나 역시 수없이 절감한 사실이니까 말이다. 586을 비롯한 진보파는 '1% 대 99% 사회' 프레임을 내세우면서 개혁을 외치지만, '20 대 80의 사회'가 진실에 가깝다. 그럼에도 진보파가 '1 대 99의 사회'를 고집하는 것은 20%의 범주에 속하는 자신들 역시 기득권 세력에 속한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586의 진짜 문제는 그들이 이미 사회의 새로운 주류임에도 여전히 주류는 따로 있다고 여기는 그들 고유의 자기규정과 비주류의식에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586은 언제나 실제 생각하는 것과 대외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을 동시에 사고해야 하는 이중사고를 발전시켰다…혁명론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상류 중산층으로서의 모든 혜택을 누리고자 했던 이중생활은 자신들을 새로운 주류이자 기득권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 성찰의 부재, 그리고 과거의 급진적 면모와 현재의 대중적 면모가 혼재한 이중사고로 인해 형성된 것이었다."

앞으로 사회적 논쟁으로 발전시켜 볼 만한 좋은 의제다. 그런 점에서 김기식 더미래연구소장이 최근 한겨레 칼럼(5월 5일)에서 민주당의 '왜곡된 비주류의식'을 비판하고 나선 게 반갑다. 김 소장은 "주류의식은 패권적 사고가 아니다. 나라와 국민의 삶에 대한 책임의식이다"며 이렇게 말한다.

"비주류는 문제 제기로도 충분하지만, 주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비주류가 정치적으로 싸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주류는 이견을 포용하고 조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책적으로도 시민운동은 몰라도 정치의 영역에서 시장, 욕망, 이익은 조정의 대상이지 싸움의 대상이 아니다. 비주류에겐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지만, 주류는 거기서 머물면 안 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나는 한 걸음더 나아가 문재인 정권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 비주류의식에 있으며, 이는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는 정략과 맞물려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물론 오랜 세월 내면화한 이중사고에서 비롯된 점도 있겠지만, 이젠 그걸 넘어설 때도 되지 않았는가.

권력집단의 '비주류의식'은 '책임의식'을 죽인다는 점에서 두렵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그간 비판을 많이 받아온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과 '피해자 코스프레'도 바로 그런 비주류의식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90년대생의 지지를 회복하려면 이젠 곰팡이 냄새가 날 정도로 케케묵은 비주류의식을 '남탓'이 아닌 '내탓'을 앞세우는 책임의식으로 대체해야 하지 않을까?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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