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문재인 정권의 '피해자 코스프레'

UPI뉴스 / 2021-03-17 16:34:46
부동산 투기 누적된 적폐로 책임 전가
적폐청산 세력이 만드는 '신 적폐' 눈 감나
"정부와 당이 누적된 폐해를 청산하고 반부패 개혁을 지속적으로 해왔지만 아직도 사각지대가 있음을 느낀다."(3월 10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3기 신도시 얘기는 2018년부터 있었고, 부동산이나 아파트 투기는 이미 2∼3년 전부터 문제가 됐는데 (검찰은) 수사권이 있을 땐 뭘 했느냐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3월 11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검찰의 수사권을 가지고 이렇게 국민적 공분을 받는 구조적인 이런 LH 투기 같은 것도 하나 못 잡아내고 정치만 하다 나가지 않았는가."(3월 12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부동산 시장의 부패에 검찰의 책임이 가장 크다."(3월 14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이를 두고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고 하던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와 관련, 문재인 정권의 "전 정권 탓", "검찰 탓", "윤석열 탓" 공세가 볼 만하다. 검찰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이라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밀어붙여 오던 분들이 이제 와선 검찰이 국토부의 역할을 맡지 않았다고 비난하다니, 기가 차다.

하지만 모두 다 이른바 '정신적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하는 김어준 씨보다는 한 수 아래다. 김 씨는 이렇게 뒤집기를 시도한다. "내부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는 언제나 있어 왔다. 현 정권은 그것을 똑바로 들여다 볼 용기와 해결할 의지가 있는 최초의 정권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 정권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 이 사태로 인해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건 대중의 무지 탓이다, 뭐 이런 이야길 해보겠다는 건가? 솔직히 안쓰럽다 못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든다. 죽어도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문 정권 사람들의 '우기기 멘털리티'가 말이다.

벌써 몇 번째 이런 행태를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스스로 생각해도 똑같은 레퍼토리가 지겨울 때도 되지 않았나?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정치평론가 유창선 씨는 최근 출간한 책에서 '책임 회피를 위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그 이유로 제시한다. 그는 "한국 정치는 사실을 밝히는 영역에서 벗어나 믿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신앙의 영역으로 가버리고 말았다"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한국 정치가 신앙의 영역에 갇혀 버렸음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고 말한다.

그렇다. 정치는 신앙이 된지 오래다. 신앙의 힘은 강하다. 허먼 멜빌은 "신앙은 자칼처럼 무덤들 사이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무기력한 회의감으로부터 활기찬 희망을 끌어낸다"고 했다.

신앙은 존중의 대상이지 비판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 구역은 지켜야 한다. 절에 가서 찬송가를 부르거나 교회 앞에서 목탁을 두드리는 건 옳지 않다. 어떤 신앙이건 신앙으로 대처해선 안 되는 구역도 있다.

정치와 행정은 이성의 영역이다. 이게 마땅치 않으면 신정국가를 세우자고 운동을 하면 된다. 일단 민주주의를 하기로 한 이상 민주주의의 규칙은 따라야 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미국 정치가 제임스 풀브라이트가 갈파했듯이, "민주주의의 핵심은 자기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무오류를 전제로 하는 신앙과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이성 사이의 소통은 가능하지 않다. 우리가 소통이 매우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인들만 신앙으로 정치를 한다면 그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곧 도태될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게 그렇질 않으니 큰 일이다. 정치인들의 신앙을 떠받치는 수많은 지지자들 역시 신앙으로 무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신앙을 선의로 해석하자면 '역사의 상처'일 게다. 적폐청산을 부르짖는 것도 그런 상처를 치유해보겠다는 몸부림이 아니겠는가. 역사적으로 누적된 적폐 앞에 서면 피해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게다.

적폐청산을 외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신 적폐'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며, 그마저 적폐세력 탓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심정 이해하지만, 부디 정치는 이성으로 해야 한다고 믿는 이교도들에 대한 자비를 베풀어 주시면 고맙겠다.

▲ 강준만 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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