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양당의 적대적 공생…'중도'의 설 땅은 어디?

UPI뉴스 / 2021-03-11 21:45:35
중도의 세력화가 양 진영 파괴적 정치 막아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가 최근 출간한 <정의보다 더 소중한 것>이란 책을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었다. 가장 내 눈길을 끈 건 서문에 쓴 '중도'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영역과 대상에 따라 좌우를 진자(振子) 운동하는 자유부동적 인간이다. 어떤 정권에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치는 이타적 유형이 아니다. 다만 진자운동하는 그 폭이 중도를 기점으로 좌우 얼마쯤에 걸쳐 있을 뿐이다. 중도파라 불러주면 고맙다. 좌파정권이 집권하면 중도우파로, 우파정권이면 중도좌파로 변신을 거듭했다."

송 교수가 문재인 정부 초기 보건복지부 장관직 제의를 비롯해 여러 차례 그런 유혹을 뿌리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게다. 맹종(盲從)의 기질이 없는 사람은 장관 해먹기 어려운 바, 현명한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를 '적극적 중도파'로 부르고 싶다. 10여 년 전 김진석 인하대 교수가 말한 것처럼 "중도가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의미로 확보되려면, 오른쪽과 왼쪽 양편의 극단과 부딪치는 일이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렇다면 '소극적 중도파'는 누구인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도파를 생각하면 되겠다. 한국리서치와 한국갤럽의 최근 2년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런 중도의 비율이 전체 유권자의 40~45%에 이른다. 보수(25% 내외)나 진보(30% 내외) 비율보다 훨씬 더 많다. 이렇듯 중도의 수요는 높지만 정치권의 공급은 형편없다. 중도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괴리야말로 한국 정치의 근본 문제인지도 모른다.

정치권에선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중도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회 영역에선 중도는 정치적 양극화가 극에 이를 때마다 소환되곤 한다. '중도의 세력화'가 이루어져야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의 파괴적 정치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그래서 중도파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거나 중도파의 단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긴하지만, 이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전문가들은 중도를 정책이념 중심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참여성향이나 기질이기 때문이다.

"나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그 중간쯤 된다"거나 "보수나 진보라는 단어로 편을 가르지 말아 달라"는 말을 하는 중도파는 우선적으로 편가르기와 이에 따라붙는 뜨거운 열정 자체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 목소리를 내거나 단합을 하는 데에 꼭 필요한 열정이 없거나 약하다는 이야기다. 우리보다 중도 논쟁이 앞선 서양에서 중도를 가리켜 '열정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식의 담론이 많은 것도 그걸 잘 말해준다.

하지만 투표 행위에 그런 열정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정당들이 단합된 조직력을 기반으로 목소리를 크게 내는 일부 강경파에 휘둘렸다가 선거를 망치는 사례들이 자주 나오듯이, 중도는 '선거의 보이지 않는 실세'로서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 여론조사를 통해 자신의 뜻을 표출할 수도 있다.

문제는 중도가 선거나 여론조사 이외엔 거대 양당 체제 자체를 바꿀 수 있는 파괴력을 평소 실력의 형식으론 보여주기 어렵다는 데에 있다. 정치는 상당 부분 이익 투쟁이건만, 중도는 이익 투쟁의 밖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익 투쟁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이익을 쟁취할 확률이 낮아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어렵다는 점도 있다.

어느 지식인이 사석에서 했다는 다음 말에 그 이유가 잘 담겨 있다. "중도는 설 땅이 없죠. 좋든 싫든 한 진영을 선택해야 발언과 영향력, 자리와 계급을 보장받거든요."(조선일보 어수웅 칼럼)

어디 그뿐인가. 이철승 서강대 교수의 <불평등의 세대>에 잘 표현되었듯이, "친구가, 친구의 친구가 권력을 잡았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권력도 증대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그만큼 거대 양당 체제가 영향을 미치는 자장(磁場)의 범위와 강도가 넓고 강하며, 따라서 중도파의 정치세력화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게다가 거대 양당이 자신들의 '적대적 공생'을 위해 중도의 성장을 방해하는 공세를 펴는 것도 문제다. 중도의 설 땅을 넓혀 나가기 위해선 일단 적극적 중도파가 많아지도록 하는 게 출발점일지도 모르겠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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