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소설 '벗', 미국에서 '2020 세계문학 베스트 북' 선정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0-12-04 10:40:28
미국 '라이브러리 저널' 세계문학 '베스트 북'
"전체주의 체제 일상생활 엿볼 수 있는 드문 기회"
북한 사회 이혼 소재 백남룡 장편, 드라마도 방영
"서로 다른 문화의 기준으로 평가해야 온당"

북한 작가 백남룡(71)의 소설 '벗'이 미국 '라이브러리 저널'이 선정한 올해 최고의 세계 문학 중 하나로 뽑혔다. 라이브러리 저널은 지난달 30일 웹사이트를 통해 백남룡 소설 '벗'의 영문판 '프렌드(Friend)'를 '2020년 최고의 세계 문학' 작품 10개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라이브러리 저널은 소설 '벗'이 "전체주의 체제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영문판 소설 '벗'은 북한에서 1988년 발표됐고, 올해 4월 임마누엘 김 조지워싱턴대학교 교수가 영문판으로 번역해 미국에서 출간했다. 2011년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돼 가장 많이 읽히는 코리아 문학으로도 각광받았다.

▲ 2020 올해의 '베스트 북' 중 하나로 북한 작가 백남룡의 '벗'을 선정한 미국 '라이브러리 저널' 홈페이지.


'벗'은 당정체성을 확보하는 북한식 리얼리즘 소설 한계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인간들의 보편적 감정의 문제를 상대적으로 세밀하게 드러냄으로써 북한 사회에서 베스트셀러를 구가한 작품이다. 북한의 한 예술단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이 남편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서 본인과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해당 소송을 맡은 판사 자신의 결혼 생활을 돌아보는 과정을 그렸다. 조선중앙텔레비전에서 '가정'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방영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한때 국방부에서 불온서적으로 규정하기도 했지만, 2018년 아시아출판사에서 '아시아문학선' 중 하나로 복간했다. 장안기계 공장 선반공 35세 리석춘은 같은 선반공 채순희를 만나 결혼해서 7살 난 아들 하나를 두었다. 그는 새로운 기계를 만들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며 고독하게 분투한다. 공장에서는 노래를 잘 부르는 순희의 음악적 재능을 아껴 도 예술단에 추천했고, 1년이 못 되어 산간 도시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중음가수'가 되었다. 나름대로 '발전'하고 세련된 문화적 소양을 쌓아가는 순희가 보기에 석춘은 발전에 대한 욕심이라곤 없는 고지식하고 답답한 일꾼이다. 어느 사회나 그렇듯 불만이 쌓이면 부부는 서로 단점만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의 갈등은 쌓여만 갔고 마침내 순희는 재판소를 찾아가 울면서 '리혼'시켜줄 것을 청한다. 

 

이들을 보는 주위 평가는 입장에 따라 다르다. 석춘에게 선반 기술을 가르친 설비관리원인 옛 '기능공 아바이'는 순희의 허영심을 질타한다. 

 

"선반공으로 부부생활을 시작했는데… 십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자기는 재능 있는 가수로 자라 뭇사람들의 절찬을 받구, 거리에 나서두 사람들이 알아보구… '발전'을 했는데 남편이란 사람은 그때나 오늘이나 기름때가 묻은 옷을 입은 선반공이란 거지요. 아낙네가 우월감에 꾹 찼으니 남편이 눈에 곯아보였지요." 

 

 

이쪽저쪽을 두루 만난 뒤 둘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노력하는 판사 정진우는 석춘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지적하며 다독인다. 

 

"동무는 시대에 떨어진 목가적 사랑을 붙들고 앉아서 안해와 불집을 일으키고 있소. …시대를 관망하지 못하는 근시안적 눈으로 안해의 화려한 차림새나 생활방식과 공장대학 문제를 보니 허영이나 우월감으로밖에 더 생각되겠소. …법률적 언어로 착오지 사회 술어로는 일종의 보수성이요. 그 보수성이 안해의 우월감을 나쁘게만 꼬집는단 말이요."  


남한사회 가정법원 판사와는 전혀 다르게 정진우 판사는 이혼 판결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당사자들 주변으로 내려가 세밀하게 사정을 파악한다. 이 과정에서 판사 정진우는 자신의 결혼생활도 되돌아보고, 관료적인 태도가 공동체에 얼마나 폐해를 끼칠 수 있는지도 깨닫고 비판한다.

 

'동무'라는 순우리말은 북한에서 일상의 호칭으로 사용돼 이데올로기적인 혐의가 입혀진 단어가 됐고, 이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남한에서는 '친구'라는 말을 더 많이 써왔다. 단어마저 분단의 질곡에 오염된 셈인데, 이에 비하면 '벗'은 비교적 중립적인 친근한 이미지를 내포한 '겨레말'이다. 진정한 벗이 누구인지 묻는 이번 작품에는 '사품치는'(계속 부딪쳐 세차게 흐르는), '바재이던'(마음이 놓이지 않아 머뭇거리던), '설분'(분한 마음을 풂) 같은 낯선 어휘들이 자주 등장하거니와 사실 이는 북한 말이라기보다 사전에 이미 등재돼 있는, 남한에서는 사어(死語)가 된 겨레말들이라는 지적이다. 

▲ 2001년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 백남룡(왼쪽)의 '벗'을 원작으로 방영한 10부작 드라마 '가정'.


북한에 여러 번 다녀오면서 그곳 작가들과도 접촉한 6·15민족문학인 남측협회 집행위원장 소설가 정도상은 "북에서도 인기 있는 작가들은 연애, 이혼 같은 생활밀착형 작품을 쓰는 이들"이라며 "향후 교류하는 과정에서 북한문학에 대해 활발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고 아시아문학선 '벗' 출간을 계기로 말한 바 있다. 그는 "백남룡의 '벗'은 서구문학은 물론 남한문학의 잣대로 봐도 낯선 점이 많지만 북한 문학의 특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서로 다른 문화에서 작품을 써왔기 때문에 함부로 우리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덧붙였다. 

 

백남룡은 북한 대표 소설가로 1980년대 후반부터 최고지도자 일가의 활동을 작품화하는 4·15문학창작단에서 활동 중이다. 지난 10월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업적을 다룬 장편소설 '부흥'을 발표하기도 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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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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