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문인들 '동아시아 평화와 문학' 토론
"일본 극우세력이 왜곡하는 핵심 사안 문학으로 규명"
"오키나와에서는 국가 권력의 폭력 때문에 많은 피해자가 생겼습니다. 여기 와서 한국 위안부와 중국 남경 대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아팠고, 오키나와 사람들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는 사실이 뼈아프게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과거를 평가하고 현재와 미래에 맞서야할지 생각하는 이런 시간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학과 언어의 힘, 연대의 힘이야말로 평화를 만드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낀 자리였습니다."
일본 소설가 오시로 사다토시(大城貞俊)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장이었던 오키나와에서 14만여 명의 희생자가 나왔던 '강제 집단사'의 실상에 대해 발표하면서 자신들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한국과 중국에 대한 가해자였다고 말했다.
8일 중국 상하이 하이톤 호텔 회의실에서 '동아시아 평화와 문학'을 주제로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국제문학포럼 제2세션에서 밝힌 소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우리가 관심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는 궁극적 목표는 여성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이 훼손되는 전쟁과 비인도적·인륜적 범죄를 근절하고 평화와 평등을 실현하는데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국과 일본 간의 문제에 가두어 두지 않고 세계의 문제로 인식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이 '피해자의 위치'에 머물지 않고, 자신들과 같은 고통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베트남 여성들이나 남아프리카 여성들에게 손을 내밀고 연대의 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역시, 그러한 이유입니다."
이어 일본군 '위안부' 길원옥의 노래 '군인이 천사가 될 때까지'를 발표한 한국 소설가 김숨은 "아직 살아 있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진정한 사과이고 용서"라면서 올 초 작고한 일본군 '위안부' 김복동이 "베트남전 당시 한국 군인들로부터 자신들과 같은 피해를 당한 베트남 여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전한 내용을 소개했다.
"서양에서 소재로 삼는 '미스 사이공'은 대개 미국 병사와 동양 여자의 로맨스를 낭만적으로 표현하는 데 그치는데 이동순 시인은 다르게 묘사했습니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한국 군인들이 같은 동포인데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은 아마도 베트남 여성들의 운명을 통해서 한국에서 비슷한 운명을 지녔던 여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같은 피해자라는 생각입니다."
쩐 반 또안 베트남 하노이사범대학 교수는 '이동순의 미스 사이공과 동아시아 전망의 창조'를 발표하면서 "통상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한 메시지는 일본이나 중국에 의해서만 던져졌는데 이 나라들은 자국을 중심에 놓고 나머지 국가나 민족들을 그들의 위성으로만 보는 경향을 보여왔다"면서 "동아시아 민족들은 모두 평등하다는 차원에서 이동순은 새로운 메시지를 던졌다"고 평가했다.
류사오리 중국 화동사범대학 교수는 일제에 의해 저질러진 '중국 근대사에서 제일 가슴 아픈' 남경 대학살의 서사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1937년 일본군이 남경을 점령한 뒤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대학살과 간음, 방화, 강도 등의 폭행을 가해 30여만 명의 사상자를 냈고, 수만 명의 여성을 능욕한 사태가 남경 대학살"이라고 소개하면서 "중국은 1945년 이후 냉전의 흐름 속에서 이 사건을 묻어두었고 1980년대에 들어서야 다시 거론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가해 당사국 작가와 한 자리에서 이 학살에 대해 이야기한 류사오리 교수는 "동아시아라는 하나의 시각으로 사태를 바라보아야 정확하게 볼 수 있다"면서 "이런 면에서 동아시아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이 지역의 평화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사회자로 참여한 김재용 원광대 국문과 교수는 "일본 극우 세력이 부정하면서 수정하려고 하는 교과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한국 위안부, 남경 대학살, 오키나와 강제집단사"라면서 "각 나라별로 왜곡에 항의는 하지만 서로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상태였는데, 이렇게 당사국 문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문학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은 의미가 매우 크다"고 이번 포럼에 의미를 부여했다.
김경식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2부 '냉전을 넘어서'에서는 '글쓰기는 소통을 위한 것'(중국 소설가 둥시), '분단체제와 문학'(한국 정도상 소설가), '타이완 문학을 통해서 본 베트남 전쟁'(베트남 판티히엔 호치민 인문사회과학대학 교수)의 발표가 이어졌다. 이후 소설가 표중식 김호운, 고명철 평론가, 이형우 시인의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6·15민족문학인협회는 2006년 남북 문학인들이 금강산에서 만나 각각 남과 북에 남측협회와 북측협회를 두기로 하면서 결성한 단체이다. 남과 북의 문학인들이 공동 조직을 구성한 것은 분단 이후 처음이었지만,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2009년 봄 이후 활동이 중단됐다.
지난 11월 20일 서울에서 국제펜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시인협회, 한국작가회의 등 5개 문인단체들이 남측협회를 재결성하고 국제문학포럼 제1세션을 개최한 데 이어, 이번에는 상하이에서 동아시아 문인들이 연대하는 차원에서 두 번째 세션을 열었다.
이날 6·15민족문학인 남측협회 대표회장 이광복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은 "북측 작가들이 이 행사에 참석하지 못해 아쉽다"면서 "이번 국제문학포럼을 시작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체제로의 이행을 위해 남북 문학이 전면적으로 만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에는 김지연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이경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 부회장을 비롯해 김응교 박두규 윤석정 안현미 김성규 원종국 황현진 서광일 최지인 등 문인 50여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9일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와 윤봉길 기념관 등 항일 유적지를 둘러본다. 한국 소설가 김숨이 기록한 '위안부' 길원옥의 말.
"하늘나라에도 군인이 있을까. 군인이 있는 데면 안 갈래."
KPI뉴스 / 상하이=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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