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리더, 부모, 운동, 청소, 통찰 등 13개 키워드 분류
"관 속에 들어갈 때 가지고 갈 독서노트 만들어가는 삶"
"힘든 운동과 독서에 매일 집중하니 내 삶이 쉬워졌다"
'독서로 경쟁하자는 거 아니잖아요. 남을 이기고, 남보다 많이 소유하고, 남보다 높은 지위 갖고, 남 위에서 군림하자는 거 아니잖아요. 사람들한테 책 읽어라 하면 하나같이 바쁘다, 시간 없다, 그런단 말이죠. 맛있는 거 먹고, 재미난 거 보고, 편안하게 잘 시간은 있으면서 책 볼 시간은 없다고 한단 말이죠. 사실 저도 운동하고 독서, 매일같이 이 둘에 집중하는 삶이 진짜 쉽지만은 않거든요. 그런데 이 힘든 걸 계속하다보니까요, 내 삶이 쉬워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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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해서 여러번 읽고 독서노트에 새긴 뒤 미련 없이 책을 버리는 삶을 이어온 손웅정 감독.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운동과 독서, 얼핏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이 둘을 잘 조화시키는 드문 사람이 축구 지도자 손웅정 감독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의 부친으로 더 알려진 그가 자신의 독서노트를 바탕으로 나눈 대화집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난다)를 펴냈다.
손 감독이 2010년부터 작성해온 7권에 이르는 독서노트를 바탕으로 김민정 시인과 지난해 3월부터 1년 여에 걸쳐 진행한 수차례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200자원고지 2만장 분량을 줄이고 줄여서 13가지 키워드로 압축해냈다. 기본, 가정, 노후, 품격, 리더, 코치, 부모, 청소, 운동, 독서, 사색, 통찰, 행복이 그것이다. 책 출간을 계기로 기자들과 만난 손 감독은 "제가 쓰는 독서노트야말로 관 속에 들어갈 때 가지고 갈 한 권의 책"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언제 시간이 나서 책을 읽는가.
"습관인 것 같다. 학교 공부는 아주 안하다시피 할 정도였다. 선생님들이 자꾸 틀에 넣으려고 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학교 공부가 더 싫어졌던 것 같다. 학교 공부는 싫지만 세상을 지식이 아니라 지혜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공부의 기본은 독서라고 생각했다. 좋은 습관은 나를 세워주고 성장시키고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데 나쁜 습관은 사실 시간을 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24시간이라는 공평한 시간을 내 시간으로 만들어서 내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이 독서라는 확신으로 살아왔다."
-대부분 자신이 읽은 책들은 잘 보관하는 애서가들이 많은데, 왜 읽은 책은 다 버리는가.
"사람마다 상황이나 생각이 다를 수 있는데, 저는 청소를 하게 되면 물건을 들고 밑까지 먼지를 다 제거를 하기 때문에 그 수많은 책들을 보관하게 되면 그 안에 낀 먼지를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 책들을 읽었다고 자랑하는 것 같은 게 너무 싫었다. 책을 충분히 세 번씩 읽고 독서노트까지 쓰고 숙지가 된 상태에서 과감하게 버리는 습관을 지니게 됐다."

편집자로도 호가 높은 김민정 시인은 지난해 3월 손 감독의 독서노트를 처음 접하고 "책을 만들고 쓰는 사람이다 보니 그 노트를 훔쳐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혼자만 보는 게 아니라 집집마다 노트의 목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생각이 단초가 되어 "손을 쓰는 시인과 발을 주로 쓰는 축구 감독이 박자를 맞춰 만들어낸 책"이라고 시인은 덧붙였다.
-어떤 책들을 주로 읽는가.
"음식도 잡식성이고 독서도 그렇다. 어떤 책이든 한 구절 나에게 도움이 안 되거나 나를 성장시킬 수 없는 책은 없다. 책에 대한 편견은 없다. 흥민이와 독일과 영국에 갔을 때는 그 나라의 역사서를 섭렵했다. 20대 후반부터는 자기 계발서, 이후에는 리더에게 필요한 책, 나이 먹으면서는 노후에 관한 책들로 점진적인 관심이 이어졌다."
-하루하루 그냥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장자가 백구과극(白駒過隙)이라고,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우리 인간의 삶이 얼마나 짧은지 흰 말을 타고 달려가는 모습을 조금 열린 문 틈 사이로 보는 것처럼 짧다는 표현을 썼다. 명심보감 보면 자신의 어린 자식 똥오줌은 더러운지 모르면서 부모가 흘린 눈물과 콧물이 어찌 더럽다고 하느냐, 네 몸은 아버지의 정기와 엄마의 피로 이루어졌다, 너 키우느라고 아버지 엄마가 너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뼈와 살이 닳았다는 대목이 있다. 그렇게 소중하게 주어진 삶을 허비하지 말고, 세상에 나왔으면 정말 내 가족한테라도 긍정적인 역할은 하고 살아야 되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다."
-지금까지 읽은 책을 추산한다면 몇 권이나 될까.
"사람이 세상 살면서 다섯 수레 정도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권수가 중요한 건 아니다. 송나라 사람 구양수가 독서는 마상(馬上), 침상(寢床), 측상(廁上)이면 충분하다는 삼상(三上)을 얘기했다. 먹고 살기 바빠 죽겠는데 책은 언제 읽느냐고들 하는데 말을 타고 가면서도 읽을 수 있고 화장실에서도, 잠자리에서 베개를 베고서도 읽을 수 있듯이, 읽으려고만 하면 어디서든 어떻게 못읽겠나. 저는 50년 넘게 축구판에만 있었다. 아는 게 뭐가 있고 배운 게 뭐가 있겠나.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책을 만들게 된 것인데,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것은 다 책의 지혜이고 힘이라고 생각한다."
-손흥민 선수가 최근 대표팀에서 힘든 시절도 겪었는데, 어떤 메시지가 담긴 책을 소개해주고 싶은가.
"그냥 책보다는 딱 한 단어, 겸손을 말하고 싶다. 진시황 무덤을 지키는 병마용에는 얼굴이나 갑옷 형태와 키도 다 다른 병용들이 있는데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가운데 상하지 않은 것은 무릎 꿇은 병용 하나밖에 없듯이, 낮추고 숙이는 게 세상 사는 가장 최고의 큰 지혜가 아닌가 생각한다."
-지나치게 겸손하면 사람들이 얕잡아볼 수도 있다. 겸손과 당당함의 상관 관계는?
"누군가 선을 넘으면 저는 싸운다. 습관적으로 비방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은 댓글에서도 습관적이다. 그런 사람들을 달래면서 갈 필요는 없다. 내 선을 넘으면 그건 가차없이 응징해야 한다. 대신 남의 선을 넘지는 않는다. 겸손과 자존감을 지키는 것은 엄격하게 구분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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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웅정 감독은 "내 독서노트는 노트가 아니라 내 몸에 글씨를 쓰는 일"이라고 말한다. [난다 제공] |
손 감독은 여러 매체에서 손흥민은 아직 '월클'(월드클래스)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여전히' 아들은 월클이 아닌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전설적인 네덜란드 축구 감독 요한 크루이프가 "수많은 축구 선수들을 만났는데 월드클래스는 인품에서도 월드클래스"라고 했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공만 잘 찬다고 월드클래스가 아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손 선수가 인품도 훌륭하지 않느냐는 이어진 질문에는 "인품뿐 아니라 공 차는 것도 아직 더 잘 해야 한다"며 웃었다.
책에서 김 시인이 손흥민의 결혼에 관한 아버지의 생각을 묻자 '(아들이) 결혼을 꼭 해야 하냐고 물었을 때 그건 네가 알아서 할 문제'라면서 '결혼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데 나라면 굳이 안할 것도 같다'고 답했다고 손 감독은 전한다. 그는 '선수로 아쉬움이 많기 때문인데 다시 태어난다면 진짜 축구 딱 하나에만 미쳐서 살다 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손 감독은 '읽은 것을 기억할 수는 있지만 그 기억이 아주 정확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면서 '독서노트는 내가 읽고 쓴 것을 내 몸이 이해하는 과정인데, 이것은 노트가 아니라 내 몸에 글씨를 쓰는 일'이라고 책에서 언급했다. 시인이 '아무래도 감독님이 출판계에 투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거들자, 돌아온 말이 '타격감' 있다.
'이게 다 책을 위한 얘기겠어요? 사람을 위하자는 얘기였지!'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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